[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2년 차,
농사가 짓고 싶어서 시골로 내려온 다정 씨를 만나다.
로미, 제리
[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2년 차, 농사가 짓고 싶어서 시골로 내려온 다정 씨를 만나다.
로미, 제리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여덟 번째 주인공으로 퍼머컬쳐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다정 씨를 만났다.
길을 잘못 들어 식은땀 나는 후진을 몇 번을 하고 나서야 다정 씨의 집 앞에 도착했다.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준 다정 씨, 옆엔 진돗개 빈둥이가 너무도 얌전히 앉아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다정 씨에게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마치 하늘에서 우릴 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들어와야 할 경로를 바로 설명해주었다. 집에 올라와 보니 이제야 알겠다. 동네가 한눈에 시원하게 보이는 꼭대기 집이다. 이 집의 이름은 '담정원'. 검을 담, 꼭대기 정, 집 원 자를 써서 검은색 꼭대기 집이라는 뜻이란다. 한글 이름은 덕산마을의 꼭대기 집이라는 뜻의 '덕꼭지'이다. 집에 이름을 2개나 지어준 다정 씨의 이야기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에 곡성에 내려와서 이제 시골에 산 지 2년 차 된 김다정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서울에 쭉 살다가 농사를 짓고 싶어서 시골로 내려왔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요.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있나요?
농사로 돈을 벌고 있지는 않고 제가 농사를 짓는 방식이 그에 적합하지 않기도 해요. 돈벌이로는 삼기초등학교에서 텃밭 수업을 하고 있고 때때로 아르바이트도 해요.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몇 년 전부터 귀농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후 위기 시대에서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순환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흙에서 나온 것을 흙에 묻으면 다시 흙이 되듯이, 제 삶도 그러길 바랐어요. 모든 것이 순환해서 저에게서 나오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요즘은 모든 것을 돈 주고 사야 하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도시에서의 저는 기업들이 생산한 상품을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소비자에 불과했었는데 그런 수동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주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해서 제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내가 살 집은 내가 짓고 내가 먹을 것은 농사를 지어서 음식을 만들어내고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걸 직접 자기가 만들어서 살았어요. 도시에서는 그런 삶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유로 귀농을 결심하고 마땅한 지역을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항꾸네협동조합의 청년 자자공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지원해서 곡성에 오게 됐어요.
항꾸네협동조합과 청년 자자공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예요. ‘항꾸네’는 전라도 사투리로 '함께'라는 뜻이에요. 항꾸네협동조합에서 매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청년 자자공이고, 자자공은 자연, 자립, 공생의 줄임말로 생태적으로 살고 싶고 귀농을 꿈꾸는 도시 청년들을 모집해서 자립 기술과 농사를 배우는 배움터에요. 저는 청년 자자공 3기로 활동했어요.
어떤 농사를 짓고 있나요? 농사짓고 있는 품종이 궁금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부터 말해야 할까 고민이 돼요. 지금 심겨 있는 건 정말 많은데 코스모스, 작약, 장미, 붓들레아, 장미허브, 바질, 루콜라, 대파, 무화과, 양배추, 피망, 방울토마토...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많아요(웃음). 저는 *퍼머컬쳐, 자연농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농사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경운하지 않기, 제초제나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기, 맨땅을 드러내지 않기, 그리고 최대한 다양한 품종을 심는 것을 지키면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 '영속적인'이라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꿈꾸는 농법이자 운동이며 삶의 방식
그래서 저는 최대한 다양한 작물을 심는 생태적인 농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보통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한 품종을 넓고 많이 짓는 방식을 떠올려요. 그런데 밭에 한 품종만 심겨 있으면 그 품종을 좋아하는 해충이 찾아오고 번식하면서 병이 쉽게 와 농작물의 피해가 커져요. 결국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부에게 피해가 가고 그런 단일경작이 생태계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자연에는 한 품종이 넓은 땅을 점령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들이 같이 자라요. 자연과 비슷하게 다양성을 목표로 최대한 여러 종의 식물을 심어서 자연과 가까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짓고 있는 식물은 모든 걸 수확해서 먹진 않더라도 최대한 다양하게 심고 있어요. 단순히 채소만 심겨 있는 밭이 아니라 다양한 꽃이나 허브도 사는 생태 정원에 가까워요.
지금 짓고 있는 농사 방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쉽게 말하면 섞어짓기에요. 한 구역 안에 토마토도 심고 코스모스도 심고 바질도 심고 허브도 심고 다양하게 심는 거예요. '오이 옆에 한련화를 심으면 한련화가 오이 벌레를 잡아준다'는 식의 전략을 활용한 농사 방식이기도 해요. 예를 들면, 토마토를 일렬로 쭉 심었을 때 토마토를 좋아하는 해충이 생기면 토마토가 일렬로 있으니 해충들이 토마토를 찾기 쉽고 병균이나 질병에 노출되기에도 쉬울 거예요. 섞어짓기를 하게 되면 토마토 옆에 대파도 있고 바질도 있고 허브도 있으니까 냄새가 섞여서 토마토를 좋아하는 해충이 토마토를 잘 못 찾는다고 해요. 그리고 토마토를 좋아하는 해충, 대파를 좋아하는 해충, 바질을 좋아하는 해충이 다 따로 있을 테니까 이런 해충들이 모여서 생태계 그물망 안에서 먹이사슬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잡아먹고 잡아먹히니까 한 해충이 막 번식하지는 않는 거죠. 결국 작물이 공격받는 것도, 병균이 생기는 것도 상대적으로 덜하게 돼서 자연에도 이롭고 수확할 때도 이로워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토양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다른 조건이 다 좋아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토양이 좋다는 것은 흙 안에 토양생물과 토양미생물이 많다는 걸 의미해요. 토양 생물이 많아지려면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많아야 하는데 그 먹이가 유기물이에요. 그 유기물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 식물의 뿌리인데 내가 먹는 식물의 뿌리만 남기고 잡초 같은 다른 식물의 뿌리를 다 뽑아버리면 토양 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현저히 줄어들어요.
잡초를 뽑는 게 아니라 생장점 위를 베어서 흙 위에 눕혀주는데 그것이 철이 지나면 썩어서 유기물이 되고 자연스레 흙과 섞여 토양 안에 토양 생물들이 계속 살아가면서 토양을 좋게 만들어줘요. 게다가 맨땅이 드러나면 흙에 있는 수분이 증발해서 땅이 금방 메말라져요. 그럼 땅이 딱딱해지고 토양에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맨땅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보통 비닐멀칭을 많이들 하는데 저희는 비닐 대신 풀을 베서 위에 덮어주고 있어요.
도시에서의 삶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시골에 와서 제 삶이 180도 달라졌어요. 제가 원하는 삶인 순환하는 삶, 자급하는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게 매우 큰 변화예요. 농사를 짓다 보니 대부분 제 손으로 음식물을 생산해내기 때문에 마트에 갈 일이 거의 없고 저에게 필요한 대부분을 직접 생산하고 자급하는 삶에 가깝게 살고 있어요.
집 옆에 생태 화장실을 짓고 있어요.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은 배설물이 전부 정화조로 흘러가는 화장실이라서 배설물이 전부 쓰레기로 처리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물이 낭비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들어요. 결국 지구환경에도 좋지 않고요. 음식물쓰레기를 흙구덩이 안에 묻어 퇴비간을 만든 것처럼 생태 화장실을 이용하면 배설물이 전부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순환구조가 늘어나게 돼요. 생태 화장실은 마을 친구들과 다 같이 짓고 있는데 시간을 맞춰서 짓느라고 좀 지지부진해요(웃음).
시골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한데 시골에 와서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하는 삶을 살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예요. 그리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전 집주인 분의 개를 키우게 됐어요. 저는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제 삶의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자발적 의지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게 됐다는 점도 시골에 와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예요.
시골에서의 삶은 농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저희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 친구들이 대부분 농사를 지어요. 같이 모여서 노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모든 행사와 일정이 농사 위주로 돌아가요. 예를 들면 내일 비가 온다고 하면 오늘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등의 대비를 하고 장마가 오기 전에 장마를 대비해요. 날씨에 민감해졌어요. 원래 비 오는 날을 정말 싫어했는데 농사를 짓고 나서는 비 오는 날이 집에서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어서 비가 오면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고요(웃음).
주변이 죄다 풀이고 나무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생산물을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되니까 식생활이 좀 더 다채로워졌어요. 도시에서 살 때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 편이어서 편식을 안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시골에 와서는 내가 싫어하는 게 너무너무 많더라고요. 여기는 지천으로 깔린 게 다 먹을 건데 옆에서 "이거 먹어볼래?" 하면 '아 그건 좀...' 싶었어요. 도시에서는 머위 같은 걸 먹을 일이 흔치 않잖아요. 시골에서는 머위, 달래, 매실 같은 걸 따먹으며 살아요. 도시에서보다 먹거리가 훨씬 다양해졌고 '내가 이런 걸 싫어했구나' 하는 걸 새롭게 알게 됐고 제 식경험이 넓어진 것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마을에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해 만든 멋진옷걸이🪵🪚
곡성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정착하기 전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다른 시골 지역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 운 좋게 집이 나왔고 시골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예요. 마을 이장님이 프로그램 스태프시고 그 옆 마을 이장님도 같은 조합원이세요. 주변 마을에도 우리 조합원분들이 한 분씩은 있어서 빈집이 나왔을 때 바로 소개받을 수 있었어요. 소개받은 집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지역으로 가서 다시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빈집 알아보는 과정을 다시 겪는 것보다는 얼굴이 익은 마을 사람들이 있는 이 마을에 있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고향인 서울에 자주 오갈 수 있는 지역을 원했는데 곡성 KTX 역이 있는 것이 정착 조건에 부합했어요.
하루라도 빨리 내 밭을 갖고 싶었어요.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으면 내가 아무리 자연에 가깝게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땅을 좋게 만들어도 임대 기간이 끝나고 그 땅에 다시 비닐멀칭을 하고 제초제와 농약을 뿌리면 소용이 없잖아요. 그리고 시골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저는 공간이 있어야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내 공간에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내 땅에서 내 농사를 짓고 싶었어요.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가끔 들어요. 서울에서 살았던 순간이 그리울 때도 있고요. 시골은 일하고 노는 경계가 불분명해요. 그러다 보니 친구인지 직장동료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도시에 있을 때는 직장동료와 친구를 한 적이 없어요. 친구는 친구, 직장동료는 직장동료로 공과 사를 명확히 했었는데 여기는 마을 친구들과 같이 농사짓고 일하는 친구들이 얽혀있다 보니 오늘 같이 놀았는데 내일 같이 일해야 할 때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휴일에 직장동료를 만나서 노는 느낌이랄까요. 그럴 때 서울에서 친구들이 오면 너무 반가워요(웃음). 서울에 있을 때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고 한 달에 여러 명의 친구를 만났어요. 시골은 확실히 또래 친구가 부족하다 보니 소수의 친구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데 거리 유지가 안 돼서 피로감이 들 때가 있어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그게 잘 안될 때 서울에 가고 싶어요(웃음).
저는 클래식 공연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클래식 공연 보고 오는데 그럴 때 너무 힘들어요. 모든 공연이 서울에 몰려있고 좋은 공연들은 전부 서울에서 열리는데 저는 기차를 타고 공연장까지 또 이동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진 빠져요. 이거 때문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기보다는 사회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여도 대중교통편이 불편한 지역이 많아요. 특히 부산이 그래요. 지도로 보면 부산까지 서울보다 곡성이 훨씬 가까운데 곡성에서 가면 직통 기차는 없고, 환승해서 최소 3시간 15분이 걸려요. 반면에 서울에서는 직통 편도 아주 많고 2시간 반이 안 걸리더라고요. 다른 지역의 가고 싶은 축제가 있어서 교통편을 알아봤더니 환승 시간 포함해서 5시간, 차로는 3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서울에서는 기차로 1시간밖에 안 걸리고요. 좀 억울했어요. 운전 시간은 2시간이 넘어가면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그 축제에 갈지 말지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시골 생활에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나요?
농사짓는 게 제일 좋아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있고 먹을거리를 손수 자급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마트 갈 일이 줄어서 돈 쓸 일이 많이 줄어든 게 좋아요. 식비뿐만 아니라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친구들 만날 땐 집이 없으니까 밥집 가고 카페 가고 술 마시러 가고 하면서 하루에 5만 원 넘게 쓰는 게 우스운 일인데 시골에서는 우리 집 아니면 친구들 집에서 만나고 외식보다는 주로 집밥을 먹으니까 돈을 거의 안 쓰게 돼요. 사실 갈 곳이 없기도 하고요(웃음). 단점이자 장점인데 여기는 사람이 워낙 없어요. 그러다 보니 운전할 때 쾌적해서 좋아요. 그리고 KTX 역 앞 주차장조차 차가 많지 않아서 주차해두고 서울에 다녀와도 돼요. 주차 경쟁이 없어요. 서울에서는 용산역에 주차해두고 어디 다녀올 수 없잖아요.
또래가 주위에 많이 없다 보니 도시에서보다 또래와 나를 비교하게 되는 일이 많이 없어졌어요. 도시에서는 올해 연봉협상을 해서 얼마큼 올렸고 차는 뭘 끌고 다니고 어디에 집 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까지 무의식적으로 비교를 했어요. 영향을 안 받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되는데 여기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고 만나면 다들 막내 취급, 어린이 취급해주시다 보니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고 내가 여기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시골 생활이 정말 좋아요.
시골 주택에 살면 어쩔 수 없이 감안하고 살아야 하는 점이지만 서재에 있는 소파에 앉다가 지네에 물린 적이 있어요. 이제껏 벌레한테 물려본 것 중에 제일 아팠어요. 도시는 흙 위에 아스팔트가 다 덮여있어서 아무래도 벌레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바퀴벌레 빼고는 다른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바퀴벌레가 안 나와서 그건 좋아요. 그래서 벌레들이 출몰하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열심히 정돈하고 있어요. 청소도 열심히 하고요.
다정 씨가 가장 애정하는 공간 💛
자주 가는 곳이 있나요?
저는 지역에 가면 돌아다니는 걸 정말 좋아해요. 작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차가 있으니 차로 여전히 잘 돌아다녀요. 이건 여담인데 차로 운전을 하다 보니 오토바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은 마을 안에서만 타고 있어요. 도시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기 때문에 번화한 곳은 도시에 갔을 때 충분히 누리고 시골에 있을 때는 주로 한적한 자연경관을 보러 다녀요.
곡성은 내륙 지역이어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물을 보기가 쉽지 않아요. 바다를 보려면 한두 시간은 가야 하는데 가까운 거리에 물을 보러 가고 싶을 때 오산면에 있는 한 저수지에 가요. 제가 이제껏 곡성에서 가본 저수지 중에 가장 저수지 같지 않고 호수 느낌이 나는 저수지인데 정말 예뻐요. 그 주변에 농가주택 카페가 있어요. 약간 제주도 주택을 연상케 하는데 사장님이 손수 음료와 빵을 만드시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찾아갔더니 사장님이랑 친해졌어요(웃음). 그리고 옥과에 성륜사도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에요. 설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절인데 그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고 절이 한적하고 아늑해요. 촘촘한 작은 절인데 약간 경사가 있고 층층이 지어져 있어서 전반적으로 산에 안겨있는 느낌의 절이에요.
즐기고 있는 취미활동이 있나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궁금해요.
밭일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기도 해요. 정신없이 몇 시간씩 하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몰입하게 된달까. 그래서 저는 농사일이 명상과 가깝다고 느껴요. 농사를 짓고 있으면 잡념이 없어져요. 그리고 집이 주택이고 땅이 있다 보니 관리하고 청소하다 보면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겨도 금방금방 없어져요.
서울에서 치던 피아노를 시골집에 들였어요. 지금 사는 집은 소음을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새벽에 피아노를 꽝꽝 치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그리고 빈둥이랑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아요. 옆에 와서 꼬리 흔들며 행복해하는 아이 옆에 있으면 저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웃게 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요. 여가에는 피아노치고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들어요. 시골에서 사는 것 자체가, 농사짓고 빈둥이랑 산책하러 가고 이런 게 다 취미활동이고 여가생활인 느낌이에요. 가끔 하는 돈벌이를 제외하고는 일과 취미, 여가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요.
앞으로 시골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올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어느 날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농사를 몇 번 지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몇 번 못 지어요. 제가 30대인데 나이가 들어 몸이 아파서 몸을 못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이제 고작해야 한 40번 정도 지을 수 있더라고요. 그마저도 오래 못 산다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거나 하면 어쩌면 10번밖에 못 지을 수도 있고요. 이런 이유로 농사를 몇 번 못 지을 수 있으니까 농사를 계속 짓고 싶어요.
저는 서울에서 재밌게 잘 살았어요. 문화생활도 잘하고 여기저기 잘 다니면서 잘 놀았는데 시골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도시의 문화생활은 큰 기업들이 주도하잖아요. 영화관에서 틀어주는 대로 영화를 볼 뿐이고 공연이나 콘서트들도 큰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들의 음악을 듣기만 해요. 저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음악회와 영화제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집 위쪽에 콘크리트를 타설해놓은 6평 정도 되는 공간이 있어요. 그 공간에 저와 같이 생태적인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제 손으로 직접 짓고 싶고, 장기적인 목표로 곡성에 있는 청년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우리 마을에 있는 청년들만 잘 알지 곡성에 있는 청년들은 잘 모르거든요. 곡성 내 다양한 청년들과 인연을 맺고 술도 마시고 같이 놀고 싶어요.
귀여운 빈둥이와 함께 🫶
릴레이 인터뷰의 묘미, 다음 인터뷰이 추천 부탁드려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를 추천하고 싶어요. 작년에 청년 자자공 프로그램 3기로 함께 활동하며 곡성에 정착한 친구인데 저와는 또 다른 삶을 사는 친구예요. 그 친구는 평일에 옥과면으로 나가서 일하고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고 있대요. 같은 지역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시골에 정착했는데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인터뷰 끝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어보니 집과 밭을 보여주고 싶다며 우리를 집 안과 밖 이곳저곳으로 안내했다. 마을에 굴러다니던 나뭇가지를 잘라 직접 다듬고 사포질과 기름칠을 해서 손수 만들었다는 나무 사다리를 보여주며 다정 씨는 "별거 아니지만,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순간이 꼭 오늘 인터뷰의 축소판 같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듯하면서 그 안에 신중, 소신, 자신감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참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삶이라고 느껴졌다. 생태 화장실 공사가 얼른 마무리되어 그녀가 원하는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기를, 그녀의 집 앞마당에서 열리는 음악회 초대장을 기다리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