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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18년+9개월 차,

돌아온 곡성 청년 혜리 씨를 만나다.

로미, 제리

[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18년 + 9개월 차, 돌아온 곡성 청년 혜리 씨를 만나다.

로미, 제리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8년 만에 고향인 곡성으로 돌아와 인생 2회차를 사는 류혜리 씨를 만났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전에 있는 마을에 혜리 씨의 집이 있다. 마을 입구에 내려 혜리 씨 집까지 걸어가는데 한쪽에는 오밀조밀한 돌담과 시간의 흐름이 엿보이는 대문, 반대쪽에는 색바랜 담벼락과 푸릇푸릇한 텃밭들이 보인다. 바닥은 아스팔트가 평평하게 깔려있는데 카트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님들이 생각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걸어 다니기 좋은 동네라고 느껴졌다.


혜리 씨의 집 대문으로 들어서니 혜리 씨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인터뷰 겸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오늘의 메뉴는 삼겹살이다. 새로 만난 동네 친구의 집에서 삼겹살까지,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고기가 구워지는 지글지글 소리를 BGM 삼아 혜리 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곡성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쭉 곡성에서 살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도시로 가서 8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고 올해 다시 곡성으로 돌아온 청년이에요. 지금은 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삼겹살과 함께하는 인터뷰 🥓 

곡성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도시에서 보냈던 시간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8년 동안 공장과 고객센터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았어요. 직장생활 자체도 힘들었고 일하는 이유와 목표가 없었던 것도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였어요. '내가 이렇게 일해서 뭘 해야 하나', '왜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사는 게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도시에 있을 때 살려는 생각을 안 했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다 싶더라고요. 엄마 품이 그리웠어요. 

성인도 되기 전에 평생 살던 지역을 떠나 홀로 타지 생활을 시작했으니 더더욱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골에 다시 내려오니까 어때요? 시골에 내려와서 무얼 하며 지냈나요?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푹 쉬었어요. 빨래도 엄마가 다 해주시고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는데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이 들고 경제적인 면도 신경이 쓰여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곡성읍에 일하잡센터라는 취업 지원센터를 통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알게 됐고 기업 탐방을 하러 갔는데 이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입사 지원했고 마침내 취업해서 오늘부로 입사한 지 딱 1개월이 되었어요.


기업 탐방을 했을 때 도시에서 다녔던 회사들과는 어떤 다른 점이 느껴졌나요? 시골로 돌아오게 된 이유인 힘든 직장생활이 시골에서 일하고 싶은 회사를 발견한 뒤로는 설레는 직장생활로 바뀐 것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쌀에 관해 연구, 생산, 판매하는 업체이다 보니 식당과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기업 탐방하러 갔을 때 회사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상품 소개를 부탁드렸는데 담당하고 계시던 직원분이 너무도 자신감 있고 긍지 있게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그 모습에 감명받았고 저도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품고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나요?

저는 혁신사업팀에서 온라인 마케터로서 회사의 SNS와 홈페이지 관리를 해요. 그 밖에 우리 회사는 주 업무 외의 일을 번갈아 가며 하고 있어서 일손이 부족한 팀에 투입되어 지원 업무를 하기도 해요.

도시에서의 직장생활과 지역에서의 직장생활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데 어떤 점이 다른가요?

공기와 풍경이 다르고 사람도 달라요. 시골에는 생각지 못한 힐링 장소가 많아요. 최근에 현장답사를 하러 오지리에 있는 침실습지에 다녀왔어요. 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 물소리를 들으면서 하늘을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구름 사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데 하늘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어요. 오늘 하루 견뎌내느라고 고생 많았다고요. 이런 걸 어디 가서 느끼겠어요. 그렇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멍을 하다가 왔어요.


회사 행사로 장선리에 있는 장선습지도 다녀왔는데 이번엔 물 흐르는 모습이 또 그렇게 좋더라고요. 돌아오는 길에 꽃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꽃 이름은 낮 달맞이꽃이었어요. 이전에는 꽃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어요. 저는 제가 꽃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던 거더라고요. 시골에 와서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꼈어요. 이제야 여유를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일을 배우는 데 적응하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과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분들의 둥글둥글한 의사소통도 도시에서의 직장생활과 다른 점이에요.


아쉬운 점도 있는데 배달 앱을 못 쓴다는 점이에요. 제가 사는 마을도 배달이 되긴 하지만 메뉴가 너무 한정적이에요. 치킨밖에 안 되고 전화로 주문해야 해요. 그리고 버스 배차간격이 넓은 것도 불편해요. 이 두 개 말고는 딱히 아쉬운 점은 더 없어요. 문화생활은 도시에 있을 때도 그다지 하지 않아서 그런지 문화부족 부분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크게 못 느끼고 있어요. 

혜리 씨가 직접 담은 '장선습지' 풍경 📸

자 그럼 이제 회사 얘기는 이쯤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뭐 하세요?

집 근처에 죽곡농민 열린도서관이라는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동네에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에요. 도서관이지만 책을 읽는 용도로만 쓰이기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들러서 쉴 수 있는 쉼터가 목표인 곳이라서 항상 열려있어요. 싱크대도 있어서 취식도 가능하고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해도 돼요. 인문학 강의 같은 행사도 종종 열려요. 어제도 다녀왔는데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로 회사 과제와 블로그 활동을 했어요. 없는 거 빼곤 다 있고, 할 수 없는 거 빼곤 다 할 수 있는 도서관이에요.


죽곡농민 열린도서관은 원래는 책방이었어요. 책방을 허물고 도서관을 새로 지은 건데 책방에 있던 수많은 책을 다 빼고 도서관에 옮기는 작업도 했어요. 그게 중학생도 되기 전이었네요. 도서관이 생기고 나서 여러 행사가 자주 생겼고 여름마다 했던 인문학 강의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게 너무 좋아서 밤마다 가서 강의도 듣고 행사 준비도 하면서 타지로 가기 전까지 활동했어요. 어릴 때 도서관에서 보냈던 기억이 좋다 보니 지금도 여전히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취미로 그림을 그려요. 배운 적은 없는데 잘 그리는 편이에요(웃음).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그려주고 저 자신도 그려요. 도구도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물감 대신 먹다 남은 커피를 쓰기도 하고 붓 대신 면봉을 이용하기도 해요.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그림 그리는 걸 제일 좋아해요. 그림은 그릴 때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편하고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지역에서는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도시보다 부족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영향을 많이 안 받으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지역마다 웬만한 작은 도서관 하나쯤은 있는 편이고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붓이나 물감, 종이 같은 것들은 인터넷으로 배송시키면 되니까요. 분명 저와 비슷한 성향이 있고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저는 고향이라서 곡성으로 다시 온 거지만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와도 되는 곳이 곡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봐줬으면 하는 지역이 곡성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곡성에는 청년들을 위해 활동하는 운동가들이 많아요. 귀촌 청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연구하시면서 청년들을 위한 집을 지으려고 하는 분도 계시고, 제가 자주 가는 도서관의 관장님도 청년들을 위한 교육을 도맡아 하고 계시고요. 시골에 있는 많은 기업에 청년이 필요해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최근에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오신 분의 SNS에서 밭농사 짓는 사진과 집의 텃밭 사진을 보게 됐는데 그걸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성의 뛰어난 농업과 환경으로 위로받고 삶의 여유를 누렸으면 좋겠어요. 곡성에 오시면 제가 친구가 되어드릴 수 있어요(웃음).


농사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혜리 씨는 농사를 지으시나요? 농사에 관한 생각이 궁금해요.

저희 집 앞마당과 뒷마당, 그리고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밭이 있는데 거기에 농사를 지어요. 제가 하는 건 아니고 어머니께서 지으시는데 고추와 고사리는 판매도 하시고 그 외에는 우리 가족이 먹을 정도로만 지어요. 농업이 생명의 시작이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다, 싫다는 선호도의 문제보다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무게감이 있어요. 엄마께서 농사지으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엄마처럼 잘할 수 있을까, 부지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에게는 농사는 아직 고민이 필요한 일이에요.

시골에 내려와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나요? 아니면 앞으로 시골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은요?

사실 시골에 돌아오고 나서 막연하게 간호조무사를 준비했었어요. 근데 지금 전혀 다른 직장에 취업했고 이곳에서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 직장에서 어떤 성과를 내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온라인 마케터라는 직업이 홍보를 이용해 판매로 이어지게 만드는 역할인데 그런 성과를 꼭 내보고 싶어요. 아직 입사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서 사내에서 여러 가지 일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데 상사분이 제 노력을 알아주시고 이미 잘하고 있다며 인정의 말을 아끼지 않으세요. 회사에서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배울 수 있게 도와주시기도 하고 근무 시간도 아주 만족스럽다 보니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고 직장에서의 성장이 요즘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에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다음 릴레이 인터뷰이를 추천해주세요.

올해 지방선거 때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언니가 있어요. 작년에 서울에서 곡성으로 혼자 귀촌해서 전업 농부로 살고 계신 분인데 전통적인 농사 방식이 아닌 퍼머컬쳐(영속농업, 지속가능한 농업)라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계신다고 해요. 요즘 청년의 농사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고 싶고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 혜리 씨 어머니께서는 또 놀러 오라며 양팔로 우리를 안아주시고 배웅해주셨다. 아주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때가 생각났다. 시골에 살면 늘 너그러운 마음을 품고 살 것 같지만 되려 도시보다도 더 경계심을 품고 다닐 때가 많다.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경계하는 삶을 놓을 수 없는데 오늘은 그 경계가 잠시나마 스르륵 풀어졌던 순간이었다. 이런 엄마의 품이 그리웠을 도시에서의 혜리 씨가 공감되었다.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다는 예쁜 마음을 말하던 혜리 씨의 반짝이던 눈이 떠오른다. 그 마음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라며 그녀의 두 번째 곡성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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