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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20년 차, 사랑으로 작은 시골마을을 가득 채워가는 상희 씨를 만나다.

신지원,제리

[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10년 차, 사랑으로 작은 시골마을을 가득 채워가는 상희 씨를 만나다.

신지원, 제리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동글동글 귀엽고 따뜻한 호호 아줌마를 연상케 하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고상희 씨를 만났다.

 

눈은 진실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아무리 유창한 언변가라도 눈빛은 속일 수 없는 것. 

상희 씨를 만나고 눈을 바라봤을 때, 그 눈에서 사랑과 진심을 단박에 읽을 수 있었다. 연신 ‘너무 좋아요!’, ‘정말 좋아요!’를 외치는 그녀를 보고 나도 이 마을이 두 배 더 좋아졌다. 상희 씨를 홀딱 빠지게 만든 시골 마을의 매력은 무엇일까? 보기만 해도 행복 바이러스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상희 씨의 매력에 빠져본다. ‘고치리’ 마을에 정착한 이야기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야기까지,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 속으로 숨 참고 LOVE DIVE!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원래 곡성 사람이에요. 원래 곡성에서 쭉 살다가 대학교 때 3년을 광주에서 학교 다니고, 계속 또 시골에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 순천에서 한 7~8년 살다가 이쪽으로 왔어요. 제 원래 고향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하죽’이란 곳이에요.

저는 동생네 식구랑 순천에서 살다가 여기에 이사해서, 집을 지어서 들어왔어요. ‘하죽’은 제 친정 동네인데 엄마가 거기에 사세요. 여기서 10분 거리예요. 조카들도 저희 옆집에 살아요. 가족끼리 이렇게 모여 사니까 장점도 많고 단점도 있네요.


8월호에 인터뷰했던 풀잎 씨의 이모이신데, 이모 자랑이 엄청났어요.

자랑할 일이 없는데 무슨 자랑을 했을까? (웃음) 제가 아이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조카들을 더 가까이했죠. 결혼하고부터 풀잎이 하고 풀잎이 남동생, 조카들을 끼고 살았고 잘해 주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조카들한테도 사랑을 많이 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첫 조카다 보니 풀잎이를 엄청 예뻐했죠. 제일 잘 따르기도 하고. 풀잎이가 마음이 여려서.


마을이 참 예쁜데, 소개 부탁드려요.

'고치리'라는 마을이고요. 여기 정말 좋아요. 큰 동네에서 살면 솔직히 어른들의 터치가 많잖아요. 여기는 작은 마을이라 그게 없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보통 우리 젊은 사람들은 늦잠을 자기도 하고 내 집에서 편하게, 좀 게으르게 할 때도 있잖아요. 근데 엄마네 근처에 살 때는, ‘아이고 누 집 딸내미가 늦잠을 자네!’ ‘다들 일하고 있는데 저 집 딸은 늦잠 자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그랬는데 그게 없으니까 그건 좋은 것 같아요.


시골이다 보니까 쇼핑할 때가 조금 불편했는데, 지금은 인터넷 쇼핑이 잘 돼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는 교회를 순천으로 다녀요.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드라이브하듯이 순천에 가서 장을 보고 오니까 기분전환도 되고 좋아요. 장점이 참 많은 동네예요. 공기도 좋고, 텃밭이랑 마당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솔직히 순천에서 살아보고 광주에도 살아봤지만 도시는 조금 삭막하잖아요.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이렇게 오니까 마당이 있고 탁 트인 게 좋아요. 한 가지 힘든 점은 마당이 있다 보니까, 풀을 계속 뽑아야 한다는 거? 그래도 풀 뽑는 것 때문에 시골 생활을 안 한다고 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도시 생활은 어떠셨어요?

순천에서는 결혼하고 시어머니, 시아버지랑 같이 2년을 살았어요. 결혼하고 처음에는 내 편이 없는 느낌이었어요. 시부모님들하고 같이 살다 보니 어머님, 아버님이 아무리 내 편을 들어 주셔도, 왠지 제 느낌에 아들 편을 드시는 것 같다 서운해했죠.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죠. 지금은 시부모님이 정말 좋아요. 저를 계속 편하게 대해주셨거든요. 이제는 신랑이 좋아서 결혼했다기보다 어머님, 아버님이 좋아요. 순천에서 생활할 때에는 어린이집에서 근무했어요. 여기 와서도 한동안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다가 순천까지 날마다 다니는 게 기름값도 많이 들고 몸도 너무 지쳐서 지금은 지역아동센터로 옮겼죠.


지역아동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행복나눔센터’라는 곳에 있어요. 개인과 군이 힘을 합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아동센터는 소외된 아동들을 돕는 곳인데요, 소외된 아동이라 하면 장애 아동, 조부모 가정 아이들, 그런 친구들을 위주로 돌보는데 사실 여기 마을에는 그런 아이들이 별로 없어요. 의외로 양가 부모님들이 다 계시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고학년 위주로 모든 아이를 다 받고 있어요. 그래도 장애가 있거나 조부모님과 사는 친구들이 우선으로 센터로 올 수 있죠.


센터에 오면 기초 학습도 하고 체육 활동도 하고 간식도 먹고 저녁까지 다 먹여요. 학교 끝나고 방과 후 1시 반부터 운영하고 있어요. 오후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는 거죠. 우리 센터는 야간도 운영하거든요. 야간 선생님이 있어서 더 늦게까지 하고 싶다고 하면 늦게까지 함께 있다 가요.

근무하시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여기 센터에 2018년도 7월부터 했으니까 이번 달까지 하면 근무한 지 딱 만 4년인가 봐요.

근무하면서 제일 어이없고, 부모님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 게 뭐냐면, 처음에 근무했을 때 어떤 애가 딱 그러는 거예요. 제가 선물을 하나 줬는데 “선생님 나, 이런 선물 필요 없어요.” 딱 이래요. 그래서 물었더니,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나는 필요 없고 다른 애들 주세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줄도 아는 거야.” 그랬더니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나 안 다니면 월급도 못 받잖아요. 나 때문에 월급 받잖아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황당해서 “아닌데? 너 없어도 월급 받고 너희들이 다 안 나온다고 해도 나는 여기 관두고 다른 어린이집을 구하면 돼. 나는 월급 때문에 너희와 함께하는 게 아니고 너희를 사랑해서 온 거야. 여기 아동센터는 너희들을 사랑해 주기 위해서 온 거지, 돈 벌기 위해서 왔다고 그러면 야, 딴 데 가면 월급 더 받아.”이랬죠. 실제로 여기 아동센터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저임금 받고 내가 뭐하러 여기 있냐? 내가 다른 데 가서 차라리 돈 더 받지, 편하게. 근데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이 좋아서 온 건데?” 그랬더니 “거짓말하네. 우리가 있어야 선생님 월급 받는다면서요.” 딱 그러는 거예요.


'아이들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이렇게 말을 하는구나.' 정말 서운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앞으로 너는 안 와도 돼. 너는 센터 안 와도 되니까 센터 굳이 다니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편하게 놀아. 선생님이 싫어서 안 온다고 그러면 선생님 반대 안 해. 그런데도 선생님이 월급을 받는지 안 받는지는 너희가 그때 가서 봐. 안 와도 돼.”

저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이들한테 항상 솔직하게 말을 해요. 저런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아이가 지금은 최고로 말을 잘 듣는 친구예요.

아이들이 선생님의 진심을 느꼈나 봐요. 아이들이 성장하기에 시골은 어떤 곳인가요?

그럼요. 함께 보낸 시간이 늘수록 정도 점점 쌓여요. 여기 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오래 근무를 안 하고 1년, 2년 있다가 다 바뀌었대요. 어느 날에는 한 아이가 딱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관둘 거예요?” 그건 관두지 말란 소리거든요.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선생님도 관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이 맨날 1년, 2년 있다가 가니까 우리한테 정을 안 주잖아요. 그냥 있다가 가는 것 같아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희가 선생님이 싫어서, 센터장님한테 나 싫다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을 건데?” 제가 그랬어요. 그랬더니 “진짜죠? 진짜 안 관둘 거죠?” 재차 묻더라고요. 그때 2년 차였거든요. 보통 2년쯤 되면 관두는데, 제가 계속 있으니까 아이들이 불안했나 봐요. 또 관둘까 봐. 관둘 마음이 없다고 설명해도 아이들이 계속 그런 의심을 하더니, 결석도 한두 번씩 하던 아이들도 제가 계속 있으니까 결석을 안 해요. 이제는 밥해주는 조리사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전체 19명, 아동센터 아이들이 모두 오니까 "옛날에는 9명, 10명만 와도 많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19명이 다 있으니까 힘들어요." 이러세요.


지금은 장난으로 “야! 결석 좀 해.” 그러면 “아니 선생님은 왜 결석한다고 하면, 못하게 해야지 결석을 하라 그래요.” 하고 웃어요.


조카들에게도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전해졌나 봐요.

제가 아이가 없다 보니 조카들한테 사랑을 다 쏟는 것 같아요. 조카들한테 제 마음을 알아주라고 한 건 아니지만, 알아주니까 더 고맙더라고요. 우리 풀잎이가 지난번에 서울 갔다 오면서도 그냥 이모 생각났다고 볼펜을 사다 주었어요. 굳이 크고 좋은 게 아니어도 이모 생각났어, 그러면서 머리핀 하나 사다 주고, 머리 끈 하나 사다 주고 이런 식으로 이모 생각났다고 잘 사 와요. 큰 선물보다 사소한 거라도 이모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이쁘잖아요.


이제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이들 돌보는 것 말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토요일에 쉬니까, 친정 엄마 아빠를 모시고 드라이브로 순천에 한 번씩 갔다 와요. 사실 아빠가 치매가 살짝 있어요. 요즘 가끔 “나 데고 놀러 안 가냐?” 이 소리를 한 번씩 하셔요. 그래서 한 번씩 제 병원도 갈 겸, 엄마 아빠 모시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고 그래요. 그렇지 않은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텃밭에 풀을 뽑아요. 한꺼번에 안 하고 오늘 하루는 이쪽만, 내일 아침에는 여기 한 칸씩,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까 힘든지 모르고 그냥 재미로 하는 것 같아요. 고추도 열 개쯤 심어놓고, 가지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요. 먹을 만큼만 조금씩 심어요.

텃밭을 특별히 가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뭘 특별히 해봐야겠다기보다, 제가 시골에만 살다가 순천에 가서 살면서 채소 하나를 사 먹으려고 해도, 시골에서는 집에서 키워서 먹었던 것들인데 돈 주고 사 먹으려니까 너무 아까운 거예요. 시골 생활을 아예 안 해봤으면 몰랐겠지만요. 그래서 여기 이사를 오면 텃밭을 만들어 내가 키워 먹어야겠다 생각했죠. 마당을 다 자갈로 깔려다가 “여기만 남겨줘. 나 텃밭 만들래.” 해서 텃밭을 만들고, 거기다 부추를 심었어요. 이사 올 때 심어놓은 부추가 지금도 자라요. 부추는 한 번 심어놓으면 잘 자라거든요. 그 다음에 고추, 토마토, 가지, 상추, 열무, 호박, 이런 거를 심어서 나눠 먹기도 해요. 조금씩 하는데도 저희는 먹어봤자 얼마 안 되니까. 조카들은 또 채소를 별로 많이 안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맨날 이 집, 저 집 다 나눠줘요. 그게 시골 생활의 재미인 것 같아요. 순천에 병원 갈 때에도 상추를 좀 뜯어다가 의사 선생님께 갖다줬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저보고 장사는 절대 하지 말래요. 장사한다고 가게 차려놓고 다 나눠주는 게 일일 것 같다고요.


시골생활에 또 하나의 재미를 찾으셨네요.

저는 그게 재미인 것 같아요. 날 때부터 시골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지, 친정엄마도 그러고 시어머니도 그러고 나눠주는 게 일상이에요. 어릴 때부터 친정엄마가 나눠주는 거를 보고 컸으니까. 결혼하고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데 어머님이 김치를 담아도 너무 많이 담는 거예요. 여기저기 나눠주신다고요. 제가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았으면 아까워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 좀 더 드려요, 그랬더니 어머님이 “너는 주지 말아라, 그래야지. 너는 더 주라고 그러냐.” 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시골 생활의 큰 매력이네요! 또 어떤 매력이 있나요?

'여유로움'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도시에서 어린이집 생활을 해왔지만, 너무 힘들거든요. 솔직히 차도 많고, 출근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는 게 바쁘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10시까지 출근이긴 해도 차가 안 막히잖아요. 씽하고 달려갈 수 있고 여유롭게 천천히 다녀도 누가 뭐라고 빵빵거릴 사람도 없고. 그런 여유로움이 좋아요. 도시 생활이면 상상도 못 할 것들이 있어요.


혹시 시골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시골로 오면 확실히 여유로움이 있다는 거. 그 다음에 공기 좋고, 탁 트인 게 너무 좋다는 거! 

안 좋은 점은 아프면 병원 가기가 힘들어요. 내 차가 있지 않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우리 마을도 버스를 타려면 ‘북소’라는 마을까지 걸어가야 해요. 그래서 차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시골 생활하려면 운전면허가 필수인 것 같아요.


그것만 빼면 살기 힘들다고 생각 안 해요. 내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충분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이 집 짓고 대출받았던 것들이 이제 거의 다 끝나가요. 우리 집은 진짜 최저임금 생활이거든요. 신랑도 최저임금, 저도 최저임금. 그래도 시골 와서 조금씩 모아서 갚다 보니까 끝나가네요.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으면, 여기서는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요.

용기가 생기네요! 시골 생활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원래는 장애아라든지 부모님의 이혼 문제로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그런 아이들을 저의 집에서 케어하며 살고 싶었어요.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싶어서 문의했더니 아동센터 같은 곳에서 2년 이상 근무를 해봤던 경험이 조건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동센터에 들어갔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 무섭고 불안하기도 해요. 그 아이들이 힘들어서 나한테 온 건데 내가 그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우리 집에 왔는데 더 불행해졌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 마음은 또 다르니까 보호시설에 가봤거든요. 한 곳은 부모님이 두 분 다 장애가 있어서 부모님의 케어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어요. 또 다른 곳은 부모의 학대로 인해서 너무 힘들어하다가 부모와 떨어져 보호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 케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밝고 그 선생님을 엄마, 엄마 하면서 제2의 엄마라고 했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선생님, 선생님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분이라고 하면서 엄마, 엄마 하는 게 감동이었어요. 제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열심히 해보려고요.

정말 따뜻하게 잘 해내실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원래 시골 사람이지만 귀촌, 귀농 참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도 순천 친구들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정말 좋다고 하거든요. 맨날 놀러 와, 내가 집 알아봐 줄게 말해요.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정말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여기가 친정이기도 하니까, 친정 식구들 모이기도 쉽고, 동생들이 다 모이면 우리 집으로 모여요. 엄마 아빠도 같이 이쪽으로 오시고요. 솔직히 이 집 가격 가지고 아파트에서 살면 조그만 아파트밖에 못 살잖아요. 그때 당시 저희가 이사하려고 했을 때, 이 집 짓는 돈 가지고 24평밖에 못 구하더라고요. 24평도 대출받아서 겨우 살 수 있었는데, 이 돈이면 차라리 시골에다 집을 짓자 한 거거든요. 여기가 30평인데, 시골에서 30평이면 도시에서는 한 48평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조건으로 훨씬 좋은 환경에 사는 거죠. 저는 시골 생활이 참 좋습니다. 누구든 귀농, 귀촌 환영해요!

다음 릴레이 인터뷰 타자도 추천 부탁드려요!

제 고향, ‘하죽’에 20대 친구가 산다고 들었어요. 그 친구를 추천합니다. 도시에 살다가 ‘하죽’으로 돌아왔다고 하던데, 성격이 아주 밝아서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줄 거예요. 젊은 친구가 경험도 많고 생각도 분명하더라고요. 마을에 대한 애정도 가득하고요.


아이들과의 일화를 듣고 있자면 몽글몽글한 동화 한 편을 듣는 기분이다. 학교마저 너무나 바쁘고 경쟁에 지쳐, 선생님과 정보다는 화면 속 AI 대하듯 스쳐 가는 것이 익숙한 요즘이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라는 말의 울림이 마음에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그런 큰 사랑을 받은 아이들에게도 분명, 살면서 두고두고 꺼내 볼 따뜻함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인터뷰를 마치며, 즐겁고 따뜻한 동화책 한 권을 다 읽은 것만 같다. 부디 상희 씨의 진심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길 바라본다.

nongdam@farm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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