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선생님의 진심을 느꼈나 봐요. 아이들이 성장하기에 시골은 어떤 곳인가요?
그럼요. 함께 보낸 시간이 늘수록 정도 점점 쌓여요. 여기 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오래 근무를 안 하고 1년, 2년 있다가 다 바뀌었대요. 어느 날에는 한 아이가 “선생님 관둘 거예요?” 그러는 거예요. 그건 관두지 말란 소리거든요.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선생님도 관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이 맨날 1년, 2년 있다가 가니까 우리한테 정을 안 주잖아요. 그냥 있다가 가는 것 같아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희가 선생님이 싫어서, 센터장님한테 나 싫다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을 건데?” 제가 그랬어요. 그랬더니 “진짜죠? 진짜 안 관둘 거죠?” 재차 묻더라고요. 그때 2년 차였거든요. 보통 2년쯤 되면 관두는데, 제가 계속 있으니까 아이들이 불안했나 봐요. 또 관둘까 봐. 관둘 마음이 없다고 설명해도 아이들이 계속 그런 의심을 하더니, 결석도 한두 번씩 하던 아이들도 제가 계속 있으니까 결석을 안 해요. 이제는 밥해주는 조리사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전체 19명, 아동센터 아이들이 모두 오니까 "옛날에는 9명, 10명만 와도 많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19명이 다 있으니까 힘들어요." 이러세요. 지금은 장난으로 “야! 결석 좀 해.” 그러면 “아니 선생님은 왜 결석한다고 하면, 못하게 해야지 결석을 하라 그래요.” 하고 웃어요.
조카들에게도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전해졌나 봐요.
제가 아이가 없다 보니 조카들한테 사랑을 다 쏟는 것 같아요. 조카들한테 제 마음을 알아주라고 한 건 아니지만, 알아주니까 더 고맙더라고요. 우리 풀잎이가 지난번에 서울 갔다 오면서도 그냥 이모 생각났다고 볼펜을 사다 주었어요. 굳이 크고 좋은 게 아니어도 이모 생각났어, 그러면서 머리핀 하나 사다 주고, 머리 끈 하나 사다 주고 이런 식으로 이모 생각났다고 잘 사 와요. 큰 선물보다 사소한 거라도 이모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이쁘잖아요.
이제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이들 돌보는 것 말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토요일에 쉬니까, 친정 엄마 아빠를 모시고 드라이브로 순천에 한 번씩 갔다 와요. 사실 아빠가 치매가 살짝 있어요. 그래서 한 번씩 제 병원도 갈 겸, 엄마 아빠 모시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고 그래요. 그렇지 않은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텃밭에 풀을 뽑아요. 한꺼번에 안 하고 오늘 하루는 이쪽만, 내일 아침에는 여기 한 칸씩,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까 힘든지 모르고 그냥 재미로 하는 것 같아요. 고추도 열 개쯤 심어놓고, 가지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요. 먹을 만큼만 조금씩 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