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10개월 차,
술 덕분에 인생이 술술 풀리는 태희 씨를 만나다.
나이사,루피
[relay interview]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찐 시골 생활 10개월 차, 술 덕분에 인생이 술술 풀리는 태희 씨를 만나다.
나이사, 루피
우리들의 시골살이 이야기 세 번째 주인공으로 시골 마을에서 취미로 술을 빚는 서울 청년 박태희 씨를 만났다.
술 빚는 청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을 깊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술을 빚는 청년, 있을 법하면서도 낯선 조합에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셰어하우스 냉장고 가득 태희 씨가 직접 담근 술들이 각자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고, 차를 가져와 맛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그의 이야기로 채워 나갔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올해 곡성에 온 지 10개월 된 청년이고요. 그전에는 서울에서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화양마을을 알게 되어 곡성에 왔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곡성에서 제일 곡성답고 별이 잘 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마음에 들어서 살고 있어요.
곡성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살고 있었나요?
고향은 용인이고, 곡성에 오기 직전에는 경기도 안양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전에는 1년 정도 호주에서 살았는데 그때까지 저보다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는데 못하는 게 아쉬워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호주에 갈 때 평생 호주에서 살 생각으로 한국 집을 다 정리하고 가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가 격리할 곳도 없었죠. 그래서 격리도 친구 집에서 했어요. 그 친구가 없었으면 길바닥에서 살 뻔했어요(웃음).
원래 시골에 관심이 있었나요? 시골살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리틀 포레스트나 삼시세끼를 보면 좋아 보였어요. 물론 좋은 부분만 나오는 거지만요. 저는 술 빚는 게 취미인데 저런 곳에서 술 빚으면 좋겠다 하는 수준의 로망과 호기심은 있었어요.
그러다 인스타그램에서 청촌*을 소개하는 영상 하나 보고 바로 왔어요. 되게 영상 색감이 알록달록하고 예뻐 보이고 평화로워 보였어요. 내가 처한 상황과는 안 맞지만,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고 싶으면 가자, 가서 살아보면 되지 싶어서 바로 왔어요. 내려오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해요. 아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고가 없는 청년이 지역에 더욱 쉽고 안정적으로 지역(곡성)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떤 게 가장 걱정되었나요?
물, 전기 끊기는 건 상관없는데, 병원 인프라가 없어서 비상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어요. 전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호흡이 와서 응급실에 가고 그 뒤로 공황장애가 생겼거든요. 여기에 있다가 혼자 아프면 어떻게 될지는 좀 걱정됐어요. 지금도 특별한 해결책은 없지만 아프면 광주에 있는 병원에 다녀와요. 남들이 걱정하는 교통 문제나 문화시설이 부족해서 심심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안 했어요.
태희씨가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
기대됐던 건요?
농업 관련된 일을 많이 할 줄 알았어요. 일자리가 안 구해지면 농장에 가서 일도 배워보고 싶었어요. 벼도 만져보고 낫도 만져보고, 농촌에 왔지만, 생각보다 농업 접할 기회가 적더라고요. 그리고 이 동네에 청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와서 커뮤니티가 궁금했어요. 이곳에 살아보고 싶어서 온,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없어서 아쉬워요.
도시에서 살던 때와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필요하고 불필요한 거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저에게 뭐가 더 필요한지 확실해졌어요. 도시에 있으면 뭐든 편리해서 시간을 할애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온전히 혼자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은 내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기지 않고, 저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동네 분들과 교류가 있나요?
작년 겨울에는 윗집에 장작 나무가 너무 멋지게 쌓여 있더라고요. 그걸 구경하다가 주인 분과 마주쳐서 길에서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집에 초대해주셔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오가면서 인사드리다 보면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시기도 하세요. 아! 여름에 마당에 풀 관리를 안 하면 가끔 혼나기도 하고, 제가 없을 때 저희 집 마당에 고추를 말리러 오시기도 해요.
요즘은 제가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데 그 시간이면 다 주무시고 계셔서 자주 못 뵙네요. 그리고 최근에 서울에 일이 있어서 자주 갔더니, 어느새 어르신들이 저를 서울 사람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웃음).
저는 곡성에 올 때부터 한가지 욕심이 있었어요. 원래 우리나라는 가양주 문화가 있어서 거의 모든 집에서 술을 만들어 마셨어요.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런 문화를 살려서 지금 제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술도 빚고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었는데 요즘 바빠서 실천이 쉽지 않네요.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새로 생긴 친구도 있나요?
네, 최근에 죽곡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을 알게 됐어요. 우연히 청년 커뮤니티 자리에서 알게 됐는데, 연락하고 술도 같이 마시다 보니 어느새 친해졌어요.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같이 러닝하기로 했어요. 서로 곡성 이야기도 하고 우리 나이대 고민도 같이 나누면서 지내요.
현재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지금 일하는 곳은 곡성 읍 쪽에 있는 미실란 이라는 곳인데, 농업 단지에서 여러 가지 쌀을 연구하고 생산한 쌀로 상품도 만들고 식당과 카페도 운영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되게 재밌는 곳이에요. 직장에서 직접 술을 빚는 건 아니지만 늘 포장된 쌀로 술을 빚어 왔는데 직접 생산한 쌀을 만져보니 새롭더라고요. 대표님도 제가 술을 빚는걸 아셔서, 미실란에서 개발하는 다양한 제품으로 술을 만들어보는 걸 제안하시거나 이런 부분의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미실란은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추구하는데 이런 요소가 재밌게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공부도 하게 돼요. 매주 금요일에는 쌀이나 술과 관련된 스터디도 하고 있어요. 문화 행사도 많이 열어요. 주기적으로 전시회도 열고, 북토크도 하고 매년 음악 행사도 하고 있어요.
미실란에서 농업을 접하고 있네요. 태희 씨도 농사지을 계획이 있나요?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저는 귀농이 아니라 귀촌했다고 답을 해요. 근데 저는 하고 싶어요. 바쁜 틈에 끼워 넣고 싶은데, 바빠서 못했어요. 지금 집 뒷마당에 잡초만 무성한데 거기에 술 담글 때 사용할 허브나 꽃을 심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집과 직장이 거리가 있는데 출퇴근 일정이 궁금해요.
출근은 감사하게도 회사 동료분이 태워다 주시고 퇴근은 버스를 이용해요. 전에는 출근도 버스로 했는데, 그때는 7시 10분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해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났어요.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산에 걸친 해를 보면서 기분 전환 하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비타민과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나갈 준비를 해요. 7시 50분쯤에 읍내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정류장에서 직장으로 가는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요. 그 버스는 8시 30분에 와서, 그 사이에 커피 한잔 마시고 출근합니다.
일이 끝나고 6시에 퇴근하면 회사 앞에서 6시 15분에 읍내 정류장에 가는 버스 타고 다시 정류장에서 화양마을로 가는 버스를 7시 20분에 타요. 화양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저희 집까지 2km 정도인데, 길이 이뻐서 좋아요. 하늘에 떠 있는 별도 이쁘고, 평소에는 (차에 치일까 봐ㅎㅎ) 핸드폰으로 불을 켜고 걷는데 월광 밝은 날은 불빛이 없이도 다닐 수 있어요. 곡성에 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딧불도 봤죠.
퇴근 후나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시골 생활이 심심하지는 않나요?
퇴근 후에는 주로 술을 빚거나 영화를 봐요. 사실 술을 빚고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다 보면 오히려 바빠서 심심할 틈이 없어요. 이게 억지로 긍정적이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진짜 좋아요. 오히려 도시에 가면 감사함을 느껴요. 도시에 살 때는 내가 아무렇게 않게 느꼈던 것들이 이제 소중하게 느껴져서 좋아요. 최근에 빽다방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밤에 친구들이랑 놀면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니 싶어요. 오히려 도시 생활이 새롭게 느껴지는 게 좋아요.
주말에는 술을 빚거나 온종일 술에 절어 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맥주로 시작해서 영화를 보면서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보내요. 정신을 차리면 아주 기분 좋게 주말이 끝나고 있어요. 안주는 간단하게 샐러드나 치즈를 먹고, 떡볶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막걸리랑 떡볶이를 먹는 걸 좋아해서 이 조합을 자주 먹어요. 제가 만드는 술이 생주라서 관리 차원에서 한 잔씩 먹어보고 맛있는 게 있으면 "오늘은 너다!" 하고 먹어요(웃음).
술은 언제부터 빚기 시작하셨나요?
처음부터 전통주를 좋아하던 건 아니고 남들처럼 소주, 맥주를 좋아했는데, 알고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군대에서 공부를 했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다른 술들이 뭐가 있을지 더 궁금해져서 바텐더 학과를 가서 공부했고 중간에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어요. 제가 이렇게 뭔가 만드는걸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서 전통주를 추천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진짜 전통주를 먹어보고 페트병에 들어있던 막걸리랑 너무 달라서 신세계였어요. 그 뒤로 관심이 생겨서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기도 하고 전통주 공방에서 일도 했어요.
젊은 친구들과 전통주를 가지고 놀아보고 싶어서 모임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실험도 했어요. 전통주의 올드한 이미지를 조금 더 가볍게 즐겨보고 싶어서 전통주로 코하쿠토도 만들고, 철판 아이술크림도 만들어 먹고, 새로운 재료로 치즈 막걸리도 만들어보고 술빚기 대회도 나가서 입상도 했었어요. 그러다 제가 곡성에 내려오면서 모임이 무산되었죠. 다시 술 커뮤니티에서 전남 청년 모임 꾸려 보려고요. 미실란에서도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활용해서 술을 만드는 모임을 만들어 지역주민과 나누는 행사를 하면서 지역에 이런 청년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을지로 빈티지 샵에서 다크사이드라는 주제로 인센스 만드시는 분과 인센스 홀더를 만드는 분이 상품을 판매하는데, 저도 그 분위기에 맞는 술을 빚어서 함께 이벤트를 참여했어요.
태희씨의 집에는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술은 어떻게 만드나요? 집에서도 만들 수 있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나중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술에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고 싶은데 그중 하나가 1인 가구의 영원한 숙제인 남은 식자재 등을 활용해서 간단하게 밥통으로 술을 빚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 놓고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쌀을 한 번 더 헹구고, 물기를 빼서 밥을 찜기에 찌고 찐 밥을 널어서 식혀요. 다 식으면 물과 누룩, 쌀을 한 시간 정도 치대요. 치댄 재료를 통에 넣고 술 종류에 따라 하루에서 삼일 정도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해줘요. 한겨울에도 제 이불과 전기장판을 양보하죠. 3일 후에는 또 차게 식혀줘야 해요. 이때는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 수 없어요. 이렇게 만들어두면 한 달 정도 뒤에 맛볼 수 있어요. 한 달의 텀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매주 빚고 있죠. 그러면 매주 새로운 술이 나옵니다. 재밌는 게 발효 중인 술을 보고 있으면 생명체라고 느낄 정도로 변화가 느껴져요. 반려 술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처음으로 술을 빚는데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 찐 밥을 널었더니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리더라고요. 다급하게 창문을 열고 수증기를 내보냈죠. 스프링클러가 터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웃음). 그다음부터는 책상을 창가에 배치해서 널고 바로 창문을 열어요.
주로 어떤 술을 만드나요?
동동주를 좋아해서 동동주를 베이스로 한 술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소금 막걸리도 만들고 의외로 민트나 화한 재료들이 동동주랑 잘 어울려서 자주 만들어요. 그 외에도 미실란에서 다루는 품종들을 활용해서 여러 가지 시험해보고 있어요. 최근에 막걸리에 은단을 넣어서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러니한 금연 막걸리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에 규모 있는 주조대회가 4~5개 정도 있는데, 여기에 나가기 위한 술을 만들기도 해요. 올해는 이런 대회에서 두세 개 정도 입상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만든 술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술이 궁금해요.
만약 제가 제품으로 만든다 하면 하나는 동동주에 산미나리 씨, 고수씨를 넣은 술을 시그니처로 하고 싶어요. 고수씨가 잎이랑 다른 색다른 향이 있거든요. 또 다른 건 목련꽃으로 만드는 술도 맛있어요.
이미 태희 씨가 빚은 술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던데, 앞으로 직접 만든 술을 판매할 계획도 있나요?
이게 조금 어려워요. 술은 법적인 부분이 예민해서 주류 제조 면허가 있어야 해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만들어가고 싶어요. 아직은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제 인생은 술로 술술 풀리고 있거든요. 나중에는 저만의 주조장이나 술집을 차려보고 싶어요.
시골에서만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 있나요?
자연 보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게 뚜렷하게 느껴져서 더 보게 돼요. 그리고 별 보는 거. 전에는 별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별이 보이니까 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또, 지금 생활 환경이 제가 원래 해오던 술 빚기에 아주 적합해서 더 잘하고 있어요.
한동안 이행시도 많이 썼는데 그 중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살다 보면 생각보다 좋은 날들이 많은 거 같다’ 이게 지금 상황인 거 같아요.
시골에서만 가능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나요?
저는 지금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도시에서는 많이 받았어요. 몇 년 전만 해도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바빠지려고 했던 거 같아요. 지금도 남들은 제가 바빠 보인다고 하는데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아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허겁지겁 먹는 느낌이랄까요.
시골에 와서 달라진 게 있나요?
시골에 오고 살도 많이 빠졌어요. 많이 걷고 부지런을 떨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더라고요.
곡성에 와서 아직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났어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에서는 옆집 사람들 마주치면 쑥스럽고 불편했는데, 여기에서는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지나가다 상추도 뜯어주시고, 퇴근 잘했냐 질문도 해주시고, 사람 사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 진짜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구나 싶어요. 서울에서는 그냥 거주지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정말 마을에 사는 느낌이에요. 여기에 오니 도시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한 명의 사람일 수 있는데, 진심으로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좋아요. 술 빚는 게 흔한 건 아니지만, 여기에 있으니 더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재밌게 사는 것 같아요.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들과 이야기 나눈 게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께 제 나이 때 꿈이 무엇이셨는지 여쭤봤는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내시는 걸 보니, 꿈에 관한 내용도 인상 깊었지만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고 계시는 게, 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산책하다 마주친 할머니만 아시는 스팟에서 밤을 딴 거요. 다른 곳은 밤이 열리기도 전에 할머니가 알려주신 곳에만 밤이 다 익어서 떨어져 있더라고요. 할머니가 ‘나랑 다니면 재밌는 일이 많아’라고 하셨는데 진짜 그럴 거 같았어요. 이런 소소한 것들이 다 기억에 남아요.
할머님들이 자주 모여계시는 죽곡 핫플 버스정류장!🚎
시골 생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시골 생활 추천은 안 해요. 저는 좋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안 맞을 것 같아요. 제가 특이해서 맞는 거랄까. 매력을 꼭 집어서 말하기보다 매력을 느끼고 싶으면 그 지역에 대해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자연이 좋아서 온 게 아니라, 어떤 매력이 있을지 스스로 찾아보는 걸 추천해요.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퇴근길에 집과 2km 떨어진 정류장에서부터 걸으면서 별도 보고 노래도 맘껏 부를 수 있는 것도 다 매력으로 느껴요.
반대로 이건 정말 불편하다 싶은 건 무엇인가요?
불편하지 않은데 뭐가 불편하냐 묻는 지금이요(웃음). 굳이 꼽자면, 읍내에서 화양마을로 오는 버스가 저녁 7시 20분이면 끊겨요. 읍내에서 놀고 싶은데 버스 시간 때문에 먼저 돌아와야 해요. 화양 심야 버스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게 너무 불편해요.
찐 시골살이 10개월 차, 앞으로 어떤 시골 생활을 하고 싶은가요?
지금까지는 곡성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외지인, 곡성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동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네 분들과 같이 뭔가를 하고 싶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제 욕망 같은 건데요. 분명 저처럼 이곳에 살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왔다가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게 아쉽더라고요. 돌아가더라도 진득하고 깊게 살아보고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괜찮다는걸. 군청이 아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양조장을 차리거나 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도 여기서 힙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는 곳이 잘되는 게 저도 좋으니까요.
뒤돌아보니 처음 청촌에 들어올 때 작성했던 신청서에 적었던 것들을 많이 이루지 못했더라고요. 사람들과 같이 술도 빚고, 주변 사람들의 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나가고 싶어요. 또, 저 스스로 술에 대해 더 잘 알고 싶기도 하고요. 술도 오프라인으로 만나면서 소통을해야 더 깊게 이해가 되는데 술이나, 전통주 행사가 대부분 서울에서 있어요. 서울에 살면 퇴근하고도 갈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하루를 통째로 사용해야 하잖아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릴레이 인터뷰의 묘미, 다음 인터뷰이 추천 부탁드려요.
죽곡초 송예준 선생님이요. 곡성에서 생활하신 지 9년 정도 되셔서 청년 외지인 중에서 여기를 가장 잘 것 같아요. 최근 친해졌고, 사실 아는 분이 그분밖에 없어요(웃음). 시골 생활을 교육자의 시각으로 보면 또 새로울 것 같아서 추천해 드립니다.
태희 씨의 시골 생활은 인스타그램 속 짧은 마을 영상 하나에 시작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화양 마을과 그도 첫눈에 반한 게 아닐까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오랜 시간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떠올랐다. 비록 그는 아직 외지인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만, 이미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마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