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즐겁게 사는 건
사실 어려워
기획 연재: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7
에디터 제소윤
기획 연재: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7
어떻게든 즐겁게 사는 건
사실 어려워
에디터 제소윤
매달 아슬아슬하게 마감의 위기를 넘기던 에디터 Z는 10호에 이르러 정말로 위기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것은 바로··· 소재 고갈 아이템 부족 마감 임박(주여···.) 이번 달 주제를 ‘공간’으로 대충 정하긴 했는데, 범위가 넓고 추상적이라 도통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게 곡성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가 있느냐 있다면 어디냐 묻기도 하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곡성가볼만한곳’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가 곡성역에 난생처음 도착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보지만, 오리무중이다.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다 침실습지를 가보기로 했다. 다녀온 많은 사람이 추천한 곳이기도 하고, 유명한 관광지라 블로그에 검색하면 게시글도 꽤 나온다. 일단 간다. 왜냐하면 난 2020년 8월 X일자로 전남지방경찰청장이 공인한 2종보통 운전면허 소지자가 되었으니까. 문제없지. 일출이 아름답다는 침실습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음날 일출 시간을 검색해보고(아침 7시 8분) 야무지게 알람을 맞춘 뒤 잠들었다.
내 안의 고요를 찾아
7시 30분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꺅). 동행하기로 한 포토그래퍼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고, 저 멀리 산에 안개가 살짝 낀 풍경을 감상하며 혼자 침실습지로 향했다. 간만에 일찍 일어나니 괜히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도 꽤 나이스. 30분 정도 달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다리 하나를 건너니,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강줄기를 따라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습지 생물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고요히 기지개를 켜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걸맞게 나뭇잎은 제각기 개성을 담은 색으로 물들었다. 노랗고도 붉게, 붉고도 어둡게, 어두우면서도 푸르게 잎을 낸 나무들은 멀리서 보면 꼭 완벽하게 색을 조합한 아이섀도 팔레트 같다. 언뜻 보면 게임 속 세계관에 들어온 것처럼, 너무 완벽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잠시 감탄하기 위해 멈췄다가 구멍이 무수히 나 있어서 ‘뿅뿅다리’라 불리는 다리까지 걷는다. 강 한가운데 서서 소리를 듣는다. 저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안개가 부드럽게 깔려 있고, 어딘가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소리. 사방에 아무도, 아무도 없이 그 소리만이 가득 시공간을 채운다. 잠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천천히 걸어보기도 한다—
라고 아름답고 희망차게 쓴다면 좋았겠지만, 침실습지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메모리카드를 잃어버리고 나는 거센 ‘현타’를 맞았다. 예쁜 그림 좀 건져서 웹진에 멋지게 실어보겠다며 카메라를 두 대나 챙겨 놓고, 메모리카드는 하나만 챙긴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데 잠은 덜 깼고, 회사에서 빌린 스펙 좋은 카메라에는 하필 메모리카드가 안 꽂혀 있고. 그래서 내 카메라에서 카드를 뽑으려다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작고 가벼운 주제에 내가 찍은 모든 곡성의 기억을 든든하게 간직하고 있던, 샌디스크 64기가짜리 메모리카드는 그렇게 허망하게 자연으로 돌아갔다(자연에 미안합니다). 내장메모리를 지원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와 노쇠한 아이폰6s로 겨우 사진 몇 장을 건지고 나는 출근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이른 아침부터 침실습지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에디터의 기쁨과 슬픔 -
그러고 나니 다시 쓸 말이 없어졌다. 급하게 예전 일기장과 개인 블로그를 뒤지고 각색해 봐도 진도가 잘 안 나갔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컨셉 회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만 것이다.
2020년 11월 XX일 PM5:00 회의실
참석자: 에디터 Z, 디자이너 J
Z: 에··· 그러니까 이번 호 컨셉은 ‘공간’인데요, 곡성에 대해서 크게 살 수 있는 공간, 자연과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가볼 만한 장소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장소’라는 건 말이죠, 우리가 흔히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겠습니까? 공간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삼차원, 에, 그러니까 점, 선, 면, 이 개념이라면 이 공간이 장소가 되려면 그 추억이 있어야 하고 일정한 맥락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맥락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를 텐데, 그 기억에 따라 장소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른 이유가 그거고, 에, 어쩌고저쩌고 미주알고주알······.
J: 네? (뭐라는겨)
큰일 났다.
<농담>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충실한 독자 중 한 명이자 각종 뉴스레터와 콘텐츠 습득량이 엄청난 디자이너 J는,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나의 상황을 정확히 짚어냈다. 동시에 나의 오랜 친구이자 지금 이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동료이자 옆집 사는 이웃 주민이기도 한 J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10호를 맞이하여 뭔가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고 싶은 마음을 잠깐 내려두니 쉽게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실, 곡성 사는 거 그렇게 즐겁지 않았어.
사실 그렇게 즐겁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뽀송뽀송한 추억이 가득한 여행지겠지만 곡성은 내게 눅눅하고 습한 20대 후반의 기억이 깃든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일어나자마자 머리 싸매는 아침, 점심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지는 지루하고 긴긴 오후, 심심하고 단조로운 저녁 시간을 견디며 내일은 과연 오늘과 다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 아닐까. 창문만 열면 산이 보이고, 논밭이 계절마다 색을 바꾸지만 그것도 매일 보면 지겹고 감탄사는 고갈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에 애정을 주며 살고 싶은데, 사랑이 잘 안 된다. 막상 남들이 물어보면 ‘여기가 좋대’, ‘저기 가서 밥 먹어봐’라며 선뜻 추천할 만큼 데이터가 쌓였는데도, 정작 나의 내면에는 쌓인 게 없는 것 같다.
아이고,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과 있으면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예컨대 코로나 때문에 시외버스 노선이 단축된 줄 모르고 갔다가 삼사십 분을 기다려야 할 때, 일요일 저녁에 문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워 한참 돌아야 할 때······ “이 모든 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거라서 X빡쳐 열받아!” 빽 소리 한번 지르고 함께 웃어넘기는 것이다. 마음 주며 사는 게 힘들다 싶다가도, 돌이켜보면 추억이라 부를 만한 게 많다는 것. 이걸 애증이라 불러도 될까.
폐업한 식당을 리모델링한 사무실에 오후 4시가 넘어가면 노란 볕이 들고, 초록색 벽에 근사한 그림자를 남기는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 사무실로 사용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종종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기 사무실이에요’라고 말하던 걸 떠올릴까. 사무실 뒤편 주택에 사는 할머니가 마음껏 쓰라며 내어주신 평상에, 점심 먹고 앉아 볕바라기를 하며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날 좋은 오후를 어떻게 기억할까. 퇴근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떠올릴까. 처음 혼자서 운전해 본 도로가 바로 그 고개라는 걸 기억하게 될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문턱이 닳도록 지나다닌 카페에, 또 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날이 올까.
죽곡에서 읍내로 처음 출근하던 길은 어땠나. 대황강을 따라 달리는 2차선 도로, 지금은 어느 세월에 도착하나 싶을 만큼 길고 지겨운 그 도로를 처음 본 날에는 아침 햇빛에 비친 물결에 감탄하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었는데. 벚꽃이 만개한 봄에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빌려 섬진강 변을 달리기도 하고, 홍수가 나서 그 길이 끊어진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한 적이 있었는데. 옥과에 베트남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쌀국수집이 있다는 걸 알고는 일주일에 세 번씩은 드나들었지. 세탁기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회원권을 끊고, 건조기에서 갓 나온 수건의 촉감에 맛 들여 세탁기를 수리하고도 한 달쯤은 더 다니던 코인 빨래방이 바로 그 옆에 있다.
하나둘씩 떠올려보니 평범하고 지긋지긋하고 조용하고 지루하고 평화롭고 따분한 나의 일상이 곡성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누군가에게 소개할 만큼 근사하지 않아도, 나의 스물 X번째 365일이 이곳에 있다.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그래도 올 한 해 <농담>을 만들면서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직장인1보다는 한 뼘 더 길게 팔다리를 늘려 봤다. 곡성에서 터를 잡고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 덕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파스타 가게의 부엌에서, 디저트 가게의 오븐 앞에서, 마카롱 가게 매대 뒤에서, 논밭 한가운데 컨테이너에 앉아서, 체온을 가뿐히 넘기는 딸기 농장 하우스 안에서, 아직 모내기하기 전의 밭두렁에 서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전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던 장소, 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즐거웠다.
<농담>을 처음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기록하는 일'은 즐겁다.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다는 것이 놀라웠고, 저마다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일상을 꾸려나간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고, 파워 내향인인 내가 낯선 사람과 1시간은 넘게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녹음한 파일을 들으며 녹취를 푸는 것도, 그걸 다시 정리해서 보기 좋은 글로 만드는 일도 즐거웠다. 그 일을 하며 나는 다른 사람의 삶으로 잠깐이나마 놀러 간 기분을 느꼈다.
반면 ‘어떻게든 즐겁게’는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글, 그 곤란함과 어려움과 치부를 모두 드러내는 수치심의 엑기스가 바로 이 글이라는 사실을 지금쯤 누군가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즐겁게’라는 말에는 도시에 비하면 지역의 생활이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흔한 통념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러나 그 말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은, 말이든 언어든 사진이든 손짓발짓을 모두 동원해서 나의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모든 것이 좋고 재밌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그 푸념은 네 일기장에나 쓰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머리 쥐어뜯는 밤이 월말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면서 사랑과 평화는 무사히 지켰느냐?
모르겠다. 당신이 사는 그 시공간처럼 이곳도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에는 만만치 않은 곳. 순간의 사랑과 찰나의 평화를 느끼며,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번 글이 자꾸 의문문과 자기 성찰로 끝나는 것이 수상하다면, 맞다. 올해의 <농담>은 여기까지,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의 연재도 여기까지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좀 더 일상적이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농담>은 당분간 쉬어가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움직임은 지긋지긋한 일상과 매번 싸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얼렁뚱땅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사랑과 평화를 지키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려운 거니까.
매달 아슬아슬하게 마감의 위기를 넘기던 에디터 Z는 10호에 이르러 정말로 위기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것은 바로··· 소재 고갈 아이템 부족 마감 임박(주여···.) 이번 달 주제를 ‘공간’으로 대충 정하긴 했는데, 범위가 넓고 추상적이라 도통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게 곡성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가 있느냐 있다면 어디냐 묻기도 하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곡성가볼만한곳’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가 곡성역에 난생처음 도착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보지만, 오리무중이다.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다 침실습지를 가보기로 했다. 다녀온 많은 사람이 추천한 곳이기도 하고, 유명한 관광지라 블로그에 검색하면 게시글도 꽤 나온다. 일단 간다. 왜냐하면 난 2020년 8월 X일자로 전남지방경찰청장이 공인한 2종보통 운전면허 소지자가 되었으니까. 문제없지. 일출이 아름답다는 침실습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음날 일출 시간을 검색해보고(아침 7시 8분) 야무지게 알람을 맞춘 뒤 잠들었다.
내 안의 고요를 찾아
7시 30분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꺅). 동행하기로 한 포토그래퍼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고, 저 멀리 산에 안개가 살짝 낀 풍경을 감상하며 혼자 침실습지로 향했다. 간만에 일찍 일어나니 괜히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도 꽤 나이스. 30분 정도 달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다리 하나를 건너니,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강줄기를 따라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습지 생물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고요히 기지개를 켜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걸맞게 나뭇잎은 제각기 개성을 담은 색으로 물들었다. 노랗고도 붉게, 붉고도 어둡게, 어두우면서도 푸르게 잎을 낸 나무들은 멀리서 보면 꼭 완벽하게 색을 조합한 아이섀도 팔레트 같다. 언뜻 보면 게임 속 세계관에 들어온 것처럼, 너무 완벽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잠시 감탄하기 위해 멈췄다가 구멍이 무수히 나 있어서 ‘뿅뿅다리’라 불리는 다리까지 걷는다. 강 한가운데 서서 소리를 듣는다. 저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안개가 부드럽게 깔려 있고, 어딘가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소리. 사방에 아무도, 아무도 없이 그 소리만이 가득 시공간을 채운다. 잠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천천히 걸어보기도 한다—
라고 아름답고 희망차게 쓴다면 좋았겠지만, 침실습지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메모리카드를 잃어버리고 나는 거센 ‘현타’를 맞았다. 예쁜 그림 좀 건져서 웹진에 멋지게 실어보겠다며 카메라를 두 대나 챙겨 놓고, 메모리카드는 하나만 챙긴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데 잠은 덜 깼고, 회사에서 빌린 스펙 좋은 카메라에는 하필 메모리카드가 안 꽂혀 있고. 그래서 내 카메라에서 카드를 뽑으려다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작고 가벼운 주제에 내가 찍은 모든 곡성의 기억을 든든하게 간직하고 있던, 샌디스크 64기가짜리 메모리카드는 그렇게 허망하게 자연으로 돌아갔다(자연에 미안합니다). 내장메모리를 지원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와 노쇠한 아이폰6s로 겨우 사진 몇 장을 건지고 나는 출근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이른 아침부터 침실습지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에디터의 기쁨과 슬픔 -
그러고 나니 다시 쓸 말이 없어졌다. 급하게 예전 일기장과 개인 블로그를 뒤지고 각색해 봐도 진도가 잘 안 나갔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컨셉 회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만 것이다.
2020년 11월 XX일 PM5:00 회의실
참석자: 에디터 Z, 디자이너 J
Z: 에··· 그러니까 이번 호 컨셉은 ‘공간’인데요, 곡성에 대해서 크게 살 수 있는 공간, 자연과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가볼 만한 장소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장소’라는 건 말이죠, 우리가 흔히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겠습니까? 공간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삼차원, 에, 그러니까 점, 선, 면, 이 개념이라면 이 공간이 장소가 되려면 그 추억이 있어야 하고 일정한 맥락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맥락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를 텐데, 그 기억에 따라 장소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른 이유가 그거고, 에, 어쩌고저쩌고 미주알고주알······.
J: 네? (뭐라는겨)
큰일 났다.
<농담>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충실한 독자 중 한 명이자 각종 뉴스레터와 콘텐츠 습득량이 엄청난 디자이너 J는,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나의 상황을 정확히 짚어냈다. 동시에 나의 오랜 친구이자 지금 이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동료이자 옆집 사는 이웃 주민이기도 한 J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10호를 맞이하여 뭔가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고 싶은 마음을 잠깐 내려두니 쉽게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실, 곡성 사는 거 그렇게 즐겁지 않았어.
사실 그렇게 즐겁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뽀송뽀송한 추억이 가득한 여행지겠지만 곡성은 내게 눅눅하고 습한 20대 후반의 기억이 깃든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일어나자마자 머리 싸매는 아침, 점심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지는 지루하고 긴긴 오후, 심심하고 단조로운 저녁 시간을 견디며 내일은 과연 오늘과 다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 아닐까. 창문만 열면 산이 보이고, 논밭이 계절마다 색을 바꾸지만 그것도 매일 보면 지겹고 감탄사는 고갈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에 애정을 주며 살고 싶은데, 사랑이 잘 안 된다. 막상 남들이 물어보면 ‘여기가 좋대’, ‘저기 가서 밥 먹어봐’라며 선뜻 추천할 만큼 데이터가 쌓였는데도, 정작 나의 내면에는 쌓인 게 없는 것 같다.
아이고,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과 있으면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예컨대 코로나 때문에 시외버스 노선이 단축된 줄 모르고 갔다가 삼사십 분을 기다려야 할 때, 일요일 저녁에 문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워 한참 돌아야 할 때······ “이 모든 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거라서 X빡쳐 열받아!” 빽 소리 한번 지르고 함께 웃어넘기는 것이다. 마음 주며 사는 게 힘들다 싶다가도, 돌이켜보면 추억이라 부를 만한 게 많다는 것. 이걸 애증이라 불러도 될까.
폐업한 식당을 리모델링한 사무실에 오후 4시가 넘어가면 노란 볕이 들고, 초록색 벽에 근사한 그림자를 남기는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 사무실로 사용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종종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기 사무실이에요’라고 말하던 걸 떠올릴까. 사무실 뒤편 주택에 사는 할머니가 마음껏 쓰라며 내어주신 평상에, 점심 먹고 앉아 볕바라기를 하며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날 좋은 오후를 어떻게 기억할까. 퇴근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떠올릴까. 처음 혼자서 운전해 본 도로가 바로 그 고개라는 걸 기억하게 될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문턱이 닳도록 지나다닌 카페에, 또 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날이 올까.
죽곡에서 읍내로 처음 출근하던 길은 어땠나. 대황강을 따라 달리는 2차선 도로, 지금은 어느 세월에 도착하나 싶을 만큼 길고 지겨운 그 도로를 처음 본 날에는 아침 햇빛에 비친 물결에 감탄하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었는데. 벚꽃이 만개한 봄에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빌려 섬진강 변을 달리기도 하고, 홍수가 나서 그 길이 끊어진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한 적이 있었는데. 옥과에 베트남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쌀국수집이 있다는 걸 알고는 일주일에 세 번씩은 드나들었지. 세탁기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회원권을 끊고, 건조기에서 갓 나온 수건의 촉감에 맛 들여 세탁기를 수리하고도 한 달쯤은 더 다니던 코인 빨래방이 바로 그 옆에 있다.
하나둘씩 떠올려보니 평범하고 지긋지긋하고 조용하고 지루하고 평화롭고 따분한 나의 일상이 곡성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누군가에게 소개할 만큼 근사하지 않아도, 나의 스물 X번째 365일이 이곳에 있다.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그래도 올 한 해 <농담>을 만들면서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직장인1보다는 한 뼘 더 길게 팔다리를 늘려 봤다. 곡성에서 터를 잡고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 덕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파스타 가게의 부엌에서, 디저트 가게의 오븐 앞에서, 마카롱 가게 매대 뒤에서, 논밭 한가운데 컨테이너에 앉아서, 체온을 가뿐히 넘기는 딸기 농장 하우스 안에서, 아직 모내기하기 전의 밭두렁에 서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전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던 장소, 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즐거웠다.
<농담>을 처음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기록하는 일'은 즐겁다.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다는 것이 놀라웠고, 저마다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일상을 꾸려나간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고, 파워 내향인인 내가 낯선 사람과 1시간은 넘게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녹음한 파일을 들으며 녹취를 푸는 것도, 그걸 다시 정리해서 보기 좋은 글로 만드는 일도 즐거웠다. 그 일을 하며 나는 다른 사람의 삶으로 잠깐이나마 놀러 간 기분을 느꼈다.
반면 ‘어떻게든 즐겁게’는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글, 그 곤란함과 어려움과 치부를 모두 드러내는 수치심의 엑기스가 바로 이 글이라는 사실을 지금쯤 누군가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즐겁게’라는 말에는 도시에 비하면 지역의 생활이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흔한 통념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러나 그 말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은, 말이든 언어든 사진이든 손짓발짓을 모두 동원해서 나의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모든 것이 좋고 재밌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그 푸념은 네 일기장에나 쓰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머리 쥐어뜯는 밤이 월말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로컬 청년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면서 사랑과 평화는 무사히 지켰느냐?
모르겠다. 당신이 사는 그 시공간처럼 이곳도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에는 만만치 않은 곳. 순간의 사랑과 찰나의 평화를 느끼며,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번 글이 자꾸 의문문과 자기 성찰로 끝나는 것이 수상하다면, 맞다. 올해의 <농담>은 여기까지,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의 연재도 여기까지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좀 더 일상적이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농담>은 당분간 쉬어가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가려는 움직임은 지긋지긋한 일상과 매번 싸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얼렁뚱땅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사랑과 평화를 지키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려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