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읽기 좋은 농담 ✉️ 뉴스레터 ✉️

농담 뉴스레터

시인할매를 만나다

: 영화 <시인할매>와 시집 한 권

에세이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제소윤

에세이

시인할매를 만나다

: 영화 <시인할매>와 시집 한 권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제소윤



"늙은께 삐따구가 다 아픈지
한 발짝이라도 덜 걸어올라고
왈칵 밤이 내려와 앉는갑다.

도귀례, 산 중의 밤」 "


회사 뒤편 골목길을 걷는데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타고 내리던 지하철 개찰구 7-3번 스크린도어에 쓰인 시가 어느 날 불현듯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는 것처럼. <산 중의 밤>이라는 시다. ‘삐다구’가 다 아프다는, 이 정감 있고 적나라한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은 누굴까. ‘시집살이 실린 시’가 뭘까 궁금해서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책 한 권이 나온다. ‘여시고개 지나 사랑재 넘어 심심산골 사는 곡성 할머니들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시집살이 詩집살이(2016)>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산 중의 밤>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곡성 어디선가 글을 쓰는 할머니란 말씀이지. 흥미가 생겨서 책을 찾아봤다. 검색해 보니 글을 쓴 할머니들과 이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할매(2018)>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달력 찢어갖고 이렇게 쓰고, 접어갖고 저짝에도 쓰고
곡성 할머니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은 입면 서봉마을 ‘길작은 도서관’. 이곳으로 이사 온 김선자 씨가 밤낮없이 일하는 할머니들, 돌봐주는 이 없이 맴도는 아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 정리를 도와주러 오신 할머니들에게 책이 거꾸로 꽂혔다고 하니, 바로 꽂혀 있는 책을 빼서 다시 거꾸로 꽂아 넣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드리면 어떨까 싶어 한글 학습반이 시작됐다고.

2009년에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 아홉 분은 2016년 첫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출간하고, 이듬해에는 동화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의 글과 그림을 그려 책을 냈다. 영화 <시인할매>는 할머니들이 동화책의 삽화를 그리는 과정부터 동화책이 세상에 나와 출간기념회를 진행하던 날까지를 담으면서, 할머니들의 일상을 사이사이에 함께 전한다.

카페에 개인 노트북을 들고 모여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대신 할머니들은 집에서 부친 부추전과 비닐 팩에 연필을 담은 필통, 달력 뒷면을 활용한 이면지를 들고 도서관으로 모인다. 할머니들은 일하다가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며 안내문 뒷면에 시를 쓰기도 하고,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려 오기도 하신단다. 관장님이 A4 용지 드릴까 물어도, 달력 많이 있으니 괜찮다며 거절한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달력 사랑에 웃음이 절로 난다. (새마을금고나 농협에서 나눠주는 달력이 펜도 쭉쭉 잘 미끄러지고, 잘 번지지도 않고, 어른들이 좋다는 건 어쨌든 여러모로 좋다)

모두가 글을 쓰고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좀 고리타분한 것 같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먹먹한 데가 있다. 왜 할머니들은 띄어쓰기나 받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입말을 그대로 살리는 재치가 있을까나. 그래서 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날까나. 애써 웃기려 하거나 울리지 않아도 문득 지나가는 문장 하나가, 농사일에 굳고 단단해진 손가락을 신중하게 움직여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는 모습이 마음에 닿았다.

섬진강 시를 쓰라고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네
할머니들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글을 쓴다. 다큐멘터리에서, 할머니들은 선생님과 함께 섬진강 변으로 소풍을 떠나는 장면이 재밌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하러 가듯, 다 같이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보따리에 싸 온 간식을 나눠 먹는 장면이 있다. 정자에 앉아 각자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시를 써 보기로 하는데 섬진강에 얽힌 에피소드를 쓰는 할머니도 있고, “이제는 옛날 추억이 다 어디 갔을까? 다시 그 추억 돌아온다면 좋겠다”고 쓰는 할머니도 있다. 그중 단연 1등은, “섬진강 시를 쓰라고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촌철살인(?)의 짧은 한 줄에 선생님이 배꼽 잡고 넘어간다

이토록 개성 넘치는 글을 쓰는 시인들이지만 할머니들은 참 비슷한 구석도 많다. 정직하게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쓴 글씨체만큼, 써낸 내용에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열심히 글을 배워놓고는 왜 단 하나의 독자, 단 하나의 이야기만 생각하며 글을 쓰는 고집스런 작가가 될까? ‘엄마는’으로 시작해서 ‘사랑한다’로 끝나는 문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그 편지를 읽은 다 큰 자식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어릴 적 아들이 숙제를 도와 달라는데 알려주지 못해 울며불며 떼쓰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던 그 옛날의 엄마는, 이제 거침없이 글을 읽고 시를 쓰는 작가가 됐다.


추석1 / 양양금

셋째가 그날까지 근무하고 늦게 왔다
‘저녁판에 내려갈게요’ 한다 
대전인가, 목포인가 
갈쳐줘도 모르겠다 

안 온께 
또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올 때가 되면 
맥없이 우째서 이렇게 안 온가 하고 
달도 마을 밖을 내다본다. 


‘나이 많은 사람’을 ‘나만 사람’이라 발음하는 내 외조모는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고스톱 점수를 다른 사람 것까지 모두 틀림없이 계산하고, 손주 손녀들이 어디에서 뭘 하는지를 또렷이 기억해주신다. 나는 가끔 내 외할머니를 보며, 내가 저 나이가 돼도 저만큼 건강하고 맑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다. 서봉마을 할머니들을 보는 김선자 관장님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나도 저 나이대가 되면 저렇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눈앞의 일들에 아등바등하는데 저렇게 쭉 인생을 살다 보면 할머니들이 그러잖아요. ‘벌로(그냥) 살았어, 벌로 살았어’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냥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할머니들이 시인이 될 수 있는 건, 살아온 세월만큼 쌓아온 지혜도 있겠지만 언제든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산뜻한 삶의 태도도 있지 않았을까.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일
<시집살이 詩집살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영광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고생스런 삶도 살만한 게 되려면, 말은 하게 해야 하고, 고단한 몸은 쉬게 해야 한다”라고. 우리의 삶이 살만한 것이 되려면, 일단 말하게 해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말과 글은 나의 ‘힘’이 된다.


눈 / 김점순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할머니들 책 이름에 ‘시집살이'가 들어가는 건 할머니들이 써낸 시가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얼굴도 모르고 시집온 이야기, 눈도 사뿐사뿐 걸을 만큼 무서운 시아버지 시어머니, 전쟁통에 남편을 보낸 이야기··· 힘들었던 일을 일기장에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좋았던 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자랑하는 일도 그때 당시 할머니들은 아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상황과 감정을 새기는 일이 얼마나 한 개인에게 큰 힘이 되는지, 할매들의 시를 읽으며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주변과의 관계로만 나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 관계의 처음이자 끝인 나에 대해 나의 힘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로지 글의 힘이다. 글을 쓰며, 나는 쓴 만큼 다시 내가 될 수 있다.

글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마침 날이 좋은 주말이라 서봉마을을 방문했다. 저녁 무렵 저무는 해가 따뜻하게 비춰오고, 도서관에 들어서니 협동조합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생겨 방문객을 맞아 주었다. 일요일에는 무료로 커피를 내려주신다고 하길래 감사히 얻어 마시며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던 당시 할머니들이 직접 담벼락에 그린 그림이 보이고, 곳곳에 시집에 실린 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요즘에도 할머니들은 길작은 도서관에 모여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신다고 한다. 언젠가 이곳에서 또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할 날이 오겠구나 싶다.


“늙은께 삐따구가 다 아픈지 
한 발짝이라도 덜 걸어올라고
왈칵 밤이 내려와 앉는갑다

도귀례, 산 중의 밤」



회사 뒤편 골목길을 걷는데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타고 내리던 지하철 개찰구 7-3번 스크린도어에 쓰인 시가 어느 날 불현듯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는 것처럼. <산 중의 밤>이라는 시다. ‘삐다구’가 다 아프다는, 이 정감 있고 적나라한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은 누굴까. ‘시집살이 실린 시’가 뭘까 궁금해서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책 한 권이 나온다. ‘여시고개 지나 사랑재 넘어 심심산골 사는 곡성 할머니들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시집살이 詩집살이(2016)>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산 중의 밤>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곡성 어디선가 글을 쓰는 할머니란 말씀이지. 흥미가 생겨서 책을 찾아봤다. 검색해 보니 글을 쓴 할머니들과 이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할매(2018)>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달력 찢어갖고 이렇게 쓰고, 접어갖고 저짝에도 쓰고
곡성 할머니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은 입면 서봉마을 ‘길작은 도서관’. 이곳으로 이사 온 김선자 씨가 밤낮없이 일하는 할머니들, 돌봐주는 이 없이 맴도는 아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 정리를 도와주러 오신 할머니들에게 책이 거꾸로 꽂혔다고 하니, 바로 꽂혀 있는 책을 빼서 다시 거꾸로 꽂아 넣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드리면 어떨까 싶어 한글 학습반이 시작됐다고.

2009년에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 아홉 분은 2016년 첫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출간하고, 이듬해에는 동화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의 글과 그림을 그려 책을 냈다. 영화 <시인할매>는 할머니들이 동화책의 삽화를 그리는 과정부터 동화책이 세상에 나와 출간기념회를 진행하던 날까지를 담으면서, 할머니들의 일상을 사이사이에 함께 전한다.

카페에 개인 노트북을 들고 모여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대신 할머니들은 집에서 부친 부추전과 비닐 팩에 연필을 담은 필통, 달력 뒷면을 활용한 이면지를 들고 도서관으로 모인다. 할머니들은 일하다가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며 안내문 뒷면에 시를 쓰기도 하고,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려 오기도 하신단다. 관장님이 A4 용지 드릴까 물어도, 달력 많이 있으니 괜찮다며 거절한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달력 사랑에 웃음이 절로 난다. (새마을금고나 농협에서 나눠주는 달력이 펜도 쭉쭉 잘 미끄러지고, 잘 번지지도 않고, 어른들이 좋다는 건 어쨌든 여러모로 좋다)

모두가 글을 쓰고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좀 고리타분한 것 같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먹먹한 데가 있다. 왜 할머니들은 띄어쓰기나 받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입말을 그대로 살리는 재치가 있을까나. 그래서 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날까나. 애써 웃기려 하거나 울리지 않아도 문득 지나가는 문장 하나가, 농사일에 굳고 단단해진 손가락을 신중하게 움직여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는 모습이 마음에 닿았다. 

섬진강 시를 쓰라고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네
할머니들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글을 쓴다. 다큐멘터리에서, 할머니들은 선생님과 함께 섬진강 변으로 소풍을 떠나는 장면이 재밌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하러 가듯, 다 같이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보따리에 싸 온 간식을 나눠 먹는 장면이 있다. 정자에 앉아 각자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시를 써 보기로 하는데 섬진강에 얽힌 에피소드를 쓰는 할머니도 있고, “이제는 옛날 추억이 다 어디 갔을까? 다시 그 추억 돌아온다면 좋겠다”고 쓰는 할머니도 있다. 그중 단연 1등은, “섬진강 시를 쓰라고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촌철살인(?)의 짧은 한 줄에 선생님이 배꼽 잡고 넘어간다.

이토록 개성 넘치는 글을 쓰는 시인들이지만 할머니들은 참 비슷한 구석도 많다. 정직하게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쓴 글씨체만큼, 써낸 내용에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열심히 글을 배워놓고는 왜 단 하나의 독자, 단 하나의 이야기만 생각하며 글을 쓰는 고집스런 작가가 될까? ‘엄마는’으로 시작해서 ‘사랑한다’로 끝나는 문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그 편지를 읽은 다 큰 자식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어릴 적 아들이 숙제를 도와 달라는데 알려주지 못해 울며불며 떼쓰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던 그 옛날의 엄마는, 이제 거침없이 글을 읽고 시를 쓰는 작가가 됐다. 


추석1 / 양양금

셋째가 그날까지 근무하고 늦게 왔다
‘저녁판에 내려갈게요’ 한다 
대전인가, 목포인가 
갈쳐줘도 모르겠다 

안 온께 
또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올 때가 되면 
맥없이 우째서 이렇게 안 온가 하고 
달도 마을 밖을 내다본다. 


‘나이 많은 사람’을 ‘나만 사람’이라 발음하는 내 외조모는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고스톱 점수를 다른 사람 것까지 모두 틀림없이 계산하고, 손주 손녀들이 어디에서 뭘 하는지를 또렷이 기억해주신다. 나는 가끔 내 외할머니를 보며, 내가 저 나이가 돼도 저만큼 건강하고 맑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다. 서봉마을 할머니들을 보는 김선자 관장님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나도 저 나이대가 되면 저렇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눈앞의 일들에 아등바등하는데 저렇게 쭉 인생을 살다 보면 할머니들이 그러잖아요. ‘벌로(그냥) 살았어, 벌로 살았어’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냥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할머니들이 시인이 될 수 있는 건, 살아온 세월만큼 쌓아온 지혜도 있겠지만 언제든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산뜻한 삶의 태도도 있지 않았을까.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일
<시집살이 詩집살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영광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고생스런 삶도 살만한 게 되려면, 말은 하게 해야 하고, 고단한 몸은 쉬게 해야 한다”라고. 우리의 삶이 살만한 것이 되려면, 일단 말하게 해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말과 글은 나의 ‘힘’이 된다.


눈 / 김점순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할머니들 책 이름에 ‘시집살이'가 들어가는 건 할머니들이 써낸 시가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얼굴도 모르고 시집온 이야기, 눈도 사뿐사뿐 걸을 만큼 무서운 시아버지 시어머니, 전쟁통에 남편을 보낸 이야기··· 힘들었던 일을 일기장에 쓰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좋았던 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자랑하는 일도 그때 당시 할머니들은 아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상황과 감정을 새기는 일이 얼마나 한 개인에게 큰 힘이 되는지, 할매들의 시를 읽으며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주변과의 관계로만 나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 관계의 처음이자 끝인 나에 대해 나의 힘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로지 글의 힘이다. 글을 쓰며, 나는 쓴 만큼 다시 내가 될 수 있다. 

글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마침 날이 좋은 주말이라 서봉마을을 방문했다. 저녁 무렵 저무는 해가 따뜻하게 비춰오고, 도서관에 들어서니 협동조합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생겨 방문객을 맞아 주었다. 일요일에는 무료로 커피를 내려주신다고 하길래 감사히 얻어 마시며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던 당시 할머니들이 직접 담벼락에 그린 그림이 보이고, 곳곳에 시집에 실린 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요즘에도 할머니들은 길작은 도서관에 모여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신다고 한다. 언젠가 이곳에서 또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할 날이 오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