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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인터뷰 #9

우리의 '불시착'을 이야기하기
: 농담 제작 고군분투기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조소은


마감 여덟 번을 거쳐 아홉 번째에 다다르니, 봄과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의 초입에 서 있다. 더 나은 <농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요즘,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농담>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동안은 <농담>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지 독자와 나눌 창구가 많지 않아 늘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호 [청년 인터뷰]에서는 기획부터 발행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에디터 Z의 이야기를 전한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글을 심으며’ 사는 사람의 속사정을 드러내 보겠다. 진짜 나, 여기서 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매거진 <농담>은 어떤 매체인가? 
쉽게 설명하면 곡성군에 거주하는 청년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지자체에서는 매년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는데, 이를 한눈에 알아보거나 정리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농담>이다. 웹으로 옮기면서, 비단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관심 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귀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곡성군의 이야기, 또 곡성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재밌게 전달하는 걸 목표로 한다.

'농담’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농담>이 웹으로 오기 전, 귀촌 체험 프로그램인 ‘청춘작당’을 통해 프로토타입 개념의 매거진을 만들었다. 그때 팀원이 낸 아이디어로 팀 이름을 ‘농담’이라 짓고 시작했는데, 그게 그대로 매거진 이름이 됐다. 농촌의 이야기라는 뜻도 있고, 농담처럼 가볍게 읽히면 좋겠다는 의미도 있다.

매달 3개의 기사를 내고 있다. 각각 어떤 내용인가? 
[2020 청년곡성]은 올해 곡성군에서 실시하는 청년 지원정책을 주제별로 안내하는 코너다. 금융, 농업, 창업 등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어떤 사업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청년 인터뷰]는 곡성군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찾아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다. 2030세대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거주지가 필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주로 지원사업을 받아 창업을 시작한 사례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에디터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쓴다. 나 자신도 곡성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보니 우여곡절을 겪을 때가 많다. 어떤 고민이 있거나, 새로운 변화가 생긴 걸 보여줄 땐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묶는다.

에디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한 달에 한 번씩 3개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업로드하고, 새 콘텐츠가 올라왔다는 걸 알리려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이를 위해 매달 초, 이달의 주제를 정하고, 컨셉을 잡고, 취재하고, 원고를 작성하고,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와 커뮤니케이션하며 하나의 이슈를 완성한다. 마지막 주에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

어쩌다 농촌에 ‘불시착’하여, 에디터라는 일을 시작했는가? 
정말 ‘어쩌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 돼서 일을 시작했다.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말로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 일을 시작했고, 그래서 농촌이라는 지역보다는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에 좀 더 집중한 선택이었다.

농촌에서 터를 잡고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왔다. 인터뷰라는 방식을 선택한 데 이유가 있는가? 
애초에 ‘곡성에는 청년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를 보여주는 매거진을 기획했기 때문에 인터뷰 코너는 꼭 필요했다. 나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곡성이라는 지역에 좀 더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창업했거나 농가를 경영하는 분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어떤 일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얼마나 책임지면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6호에서 ‘가랑드’를 인터뷰할 때다. 곡성에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내가 살아가는 지역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홍보할 수 있을 만한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궁금해서, 로컬푸드를 가지고 관광상품을 개발한 분께 ‘곡성을 아끼고, 남들에게 자꾸 소개하고 싶은 원동력이 무엇일까요?’라 물었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있었다는 대답이 흥미로웠다. 공간에 대한 애착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소하고도 결정적인 기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인 것 같다.

곡성에서 사는 것은 어떻길래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나? 
‘여기서 내가 얼마나 지낼 수 있을까? 정주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서울은 일자리도 인프라도 잘 갖춰진 곳이지만, 그 편리함을 모두 누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값을 치러야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서울에 버티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고,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가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뛰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그 간극에서 계속 고민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뛰던 트랙에서 나만 이탈한다는 느낌을 선뜻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photo by 송광호

그런 개인적인 고민이 에세이에 담기는 것 같다.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시리즈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갑자기 ‘사랑과 평화’ 타령이라 좀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귀촌이라는 사건은 100%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우연과 당시의 환경이 만들어낸 취사선택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얻는 것보다 무언가를 잃는 것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귀촌이라고 하면 흔히 ‘리틀 포레스트’ 부류의 힐링을 떠올리기 쉬운데,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힐링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의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글을 쓰기로 한 게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이하 사랑과 평화)]다.

그래서 사랑과 평화는 안녕한가. 
글쎄······. [사랑과 평화] 시리즈를 쓰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어디에서 살든 그곳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전까지 나는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환경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환경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고,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환경이 나의 문제를 절대 해결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정반대 조건인 곡성으로 와도 내 인생의 문제는 그대로다. 결국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과 평화를 쟁취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귀촌을 해도 도시에서 겪던 문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로 읽힌다. 
맞다. <농담>을 만들면서도 가장 경계하는 것은 시골 생활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힐링의 장소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도시는 모든 삶의 복잡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고, 시골로 가면 그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나도 그 판타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내려오긴 했지만.

그렇다면 <농담>에서 도시와 지역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비교하는 관점을 지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둘은 정말 차이점이 없는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시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의 대립항으로 시골이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의미다. 물론 누군가는 도시에서 시골로 귀촌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무수한 조건들이지 단순히 공간을 옮겼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무수한 조건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도시와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이 왜 차이 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담>은 그런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나 한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귀촌을 꿈꾸는 사람이 가지는 막연함, 판타지가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리틀 포레스트를 찾는 건 사실 어려워'라는 글을 쓴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영화는 결코 힐링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만의 삶을 찾아 고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농담>도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로컬 콘텐츠를 만들 때의 고민이나 어려운 점이 있는가?
귀촌을 생각하는 또래가 겪는 보편적인 상황이나 고민을 충분히 다루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나 한 사람이 처한 환경과 조건은 너무나 특수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 또, 요즘은 귀농귀촌을 하면서 브이로그나 블로그를 만드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분들이 만드는 콘텐츠에 비해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명확하다. 사실 난 직장인이고, 사무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보니 경험의 폭이 넓지 않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 노력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늘 아쉬움을 느낀다.

우리 또래에게 <곡성>이라고 하면 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역을 알리는 글을 쓸 때 어려움은 없었는가?
매거진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영화의 존재가 늘 걸림돌이 됐다. 네이밍 회의를 할 때마다 막히면 ‘뭣이 중헌디~’가 절로 튀어나왔다. 영화가 어둡고 난해해서 도통 긍정적으로 써먹을 구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같은 곳 아니고, 실제로는 평화로워~’라는 대답도 하다 보니 좀 질리고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6호에서 ‘그 곡성은 곡성에 없지만 그 곡성이 그 곡성이냐 묻는다면 그 곡성이 바로 이 곡성이라 답하는 것은’이라는 다소 장황한 제목의 글을 썼다. 읽는 중에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든다면 그 글 자체가 나의 어려움이라고 봐주신다면 좋겠다.

곡성을 배경으로 한 에세이 말고 다른 글을 쓸 수 있다면? 
여름에 혼자 집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런 영화를 곡성에서 찍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짧은 로맨스를 담은 이야긴데, 고요한 숲이나 한적한 골목 같은 배경이 로맨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시골 풍경은 다큐멘터리 아니면 스릴러인데, 로맨스도 하나 찍어보면 어떨까. 곡성으로 놀러 온 주인공이 상대방 위치가 자꾸 50킬로 밖으로 넘어서는 데이트 앱을 스와이프하다가 우연히 누군가와 매칭되어 일어나는 로맨틱 코미디도 재밌을 것 같다. 디테일은 언젠가 내가 써먹어야 하니까 비밀이다.

앞으로 매거진 <농담>이 어떤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또 읽을 수 있도록 바꿔가고 싶은 마음은 있다. 여기저기 다녀오면 어딘가에서 누가 뭘 하더라, 이런 서비스가 있더라 하는 식의 정보를 궁금해하신다. 그것들이 <농담>이라는 공간에 모이고, 또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추수가 끝난 논에 책걸상을 가져다 놓고 광고에 쓸 사진을 촬영했다. 이번 광고의 컨셉은 논밭에 불시착한(?) 에디터. 매거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홍보하는 것까지 에디터의 몫이다. 디자이너, 포토그래퍼와 함께 이른 오전부터 부지런히 소품을 설치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배경으로 흰 천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스탠드를 세웠는데 이날 따라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아이고 다 날아가네~ 소윤아~”)

누구든지, 언제든지, 우연의 바람이 부는 대로 걸어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걷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길이 나올 것이고, 선택하고 도전해야 할 순간도 나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글로 녹여내는 것이 <농담> 에디터의 보람이다. 누군가 글을 읽고 재밌다고 느낀다면,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마감 여덟 번을 거쳐 아홉 번째에 다다르니, 봄과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의 초입에 서 있다. 더 나은 <농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요즘,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농담>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동안은 <농담>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지 독자와 나눌 창구가 많지 않아 늘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호 [청년 인터뷰]에서는 기획부터 발행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에디터 Z의 이야기를 전한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글을 심으며’ 사는 사람의 속사정을 드러내 보겠다. 진짜 나, 여기서 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매거진 <농담>은 어떤 매체인가? 
쉽게 설명하면 곡성군에 거주하는 청년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지자체에서는 매년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는데, 이를 한눈에 알아보거나 정리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농담>이다. 웹으로 옮기면서, 비단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관심 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귀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곡성군의 이야기, 또 곡성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재밌게 전달하는 걸 목표로 한다.

‘농담’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농담>이 웹으로 오기 전, 귀촌 체험 프로그램인 ‘청춘작당’을 통해 프로토타입 개념의 매거진을 만들었다. 그때 팀원이 낸 아이디어로 팀 이름을 ‘농담’이라 짓고 시작했는데, 그게 그대로 매거진 이름이 됐다. 농촌의 이야기라는 뜻도 있고, 농담처럼 가볍게 읽히면 좋겠다는 의미도 있다.

매달 3개의 기사를 내고 있다. 각각 어떤 내용인가? 
[2020 청년곡성]은 올해 곡성군에서 실시하는 청년 지원정책을 주제별로 안내하는 코너다. 금융, 농업, 창업 등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어떤 사업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청년 인터뷰]는 곡성군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찾아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다. 2030세대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거주지가 필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주로 지원사업을 받아 창업을 시작한 사례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에디터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쓴다. 나 자신도 곡성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보니 우여곡절을 겪을 때가 많다. 어떤 고민이 있거나, 새로운 변화가 생긴 걸 보여줄 땐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묶는다.

에디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한 달에 한 번씩 3개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업로드하고, 새 콘텐츠가 올라왔다는 걸 알리려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이를 위해 매달 초, 이달의 주제를 정하고, 컨셉을 잡고, 취재하고, 원고를 작성하고,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와 커뮤니케이션하며 하나의 이슈를 완성한다. 마지막 주에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

어쩌다 농촌에 ‘불시착’하여, 에디터라는 일을 시작했는가? 
정말 ‘어쩌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 돼서 일을 시작했다.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말로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 일을 시작했고, 그래서 농촌이라는 지역보다는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에 좀 더 집중한 선택이었다.

농촌에서 터를 잡고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왔다. 인터뷰라는 방식을 선택한 데 이유가 있는가? 
애초에 ‘곡성에는 청년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를 보여주는 매거진을 기획했기 때문에 인터뷰 코너는 꼭 필요했다. 나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곡성이라는 지역에 좀 더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창업했거나 농가를 경영하는 분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어떤 일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얼마나 책임지면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6호에서 ‘가랑드’를 인터뷰할 때다. 곡성에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내가 살아가는 지역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홍보할 수 있을 만한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궁금해서, 로컬푸드를 가지고 관광상품을 개발한 분께 ‘곡성을 아끼고, 남들에게 자꾸 소개하고 싶은 원동력이 무엇일까요?’라 물었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있었다는 대답이 흥미로웠다. 공간에 대한 애착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소하고도 결정적인 기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인 것 같다.

곡성에서 사는 것은 어떻길래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나? 
‘여기서 내가 얼마나 지낼 수 있을까? 정주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서울은 일자리도 인프라도 잘 갖춰진 곳이지만, 그 편리함을 모두 누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값을 치러야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서울에 버티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고,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가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뛰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그 간극에서 계속 고민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뛰던 트랙에서 나만 이탈한다는 느낌을 선뜻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photo by 송광호

그런 개인적인 고민이 에세이에 담기는 것 같다.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시리즈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갑자기 ‘사랑과 평화’ 타령이라 좀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귀촌이라는 사건은 100%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우연과 당시의 환경이 만들어낸 취사선택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얻는 것보다 무언가를 잃는 것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귀촌이라고 하면 흔히 ‘리틀 포레스트’ 부류의 힐링을 떠올리기 쉬운데,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힐링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의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글을 쓰기로 한 게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이하 사랑과 평화)]다.

그래서 사랑과 평화는 안녕한가. 
글쎄……. [사랑과 평화] 시리즈를 쓰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어디에서 살든 그곳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전까지 나는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환경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환경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고,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환경이 나의 문제를 절대 해결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정반대 조건인 곡성으로 와도 내 인생의 문제는 그대로다. 결국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과 평화를 쟁취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귀촌을 해도 도시에서 겪던 문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로 읽힌다. 
맞다. <농담>을 만들면서도 가장 경계하는 것은 시골 생활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힐링의 장소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도시는 모든 삶의 복잡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고, 시골로 가면 그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나도 그 판타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내려오긴 했지만.

그렇다면 <농담>에서 도시와 지역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비교하는 관점을 지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둘은 정말 차이점이 없는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시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의 대립항으로 시골이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의미다. 물론 누군가는 도시에서 시골로 귀촌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무수한 조건들이지 단순히 공간을 옮겼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무수한 조건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도시와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이 왜 차이 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담>은 그런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나 한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귀촌을 꿈꾸는 사람이 가지는 막연함, 판타지가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리틀 포레스트를 찾는 건 사실 어려워'라는 글을 쓴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영화는 결코 힐링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만의 삶을 찾아 고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농담>도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로컬 콘텐츠를 만들 때의 고민이나 어려운 점이 있는가?
귀촌을 생각하는 또래가 겪는 보편적인 상황이나 고민을 충분히 다루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나 한 사람이 처한 환경과 조건은 너무나 특수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 또, 요즘은 귀농귀촌을 하면서 브이로그나 블로그를 만드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분들이 만드는 콘텐츠에 비해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명확하다. 사실 난 직장인이고, 사무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보니 경험의 폭이 넓지 않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 노력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늘 아쉬움을 느낀다.

우리 또래에게 <곡성>이라고 하면 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역을 알리는 글을 쓸 때 어려움은 없었는가?
매거진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영화의 존재가 늘 걸림돌이 됐다. 네이밍 회의를 할 때마다 막히면 ‘뭣이 중헌디~’가 절로 튀어나왔다. 영화가 어둡고 난해해서 도통 긍정적으로 써먹을 구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같은 곳 아니고, 실제로는 평화로워~’라는 대답도 하다 보니 좀 질리고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6호에서 ‘그 곡성은 곡성에 없지만 그 곡성이 그 곡성이냐 묻는다면 그 곡성이 바로 이 곡성이라 답하는 것은’이라는 다소 장황한 제목의 글을 썼다. 읽는 중에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든다면 그 글 자체가 나의 어려움이라고 봐주신다면 좋겠다.

곡성을 배경으로 한 에세이 말고 다른 글을 쓸 수 있다면? 
여름에 혼자 집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런 영화를 곡성에서 찍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짧은 로맨스를 담은 이야긴데, 고요한 숲이나 한적한 골목 같은 배경이 로맨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시골 풍경은 다큐멘터리 아니면 스릴러인데, 로맨스도 하나 찍어보면 어떨까. 곡성으로 놀러 온 주인공이 상대방 위치가 자꾸 50킬로 밖으로 넘어서는 데이트 앱을 스와이프하다가 우연히 누군가와 매칭되어 일어나는 로맨틱 코미디도 재밌을 것 같다. 디테일은 언젠가 내가 써먹어야 하니까 비밀이다.

앞으로 매거진 <농담>이 어떤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또 읽을 수 있도록 바꿔가고 싶은 마음은 있다. 여기저기 다녀오면 어딘가에서 누가 뭘 하더라, 이런 서비스가 있더라 하는 식의 정보를 궁금해하신다. 그것들이 <농담>이라는 공간에 모이고, 또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추수가 끝난 논에 책걸상을 가져다 놓고 광고에 쓸 사진을 촬영했다. 이번 광고의 컨셉은 논밭에 불시착한(?) 에디터. 매거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홍보하는 것까지 에디터의 몫이다. 디자이너, 포토그래퍼와 함께 이른 오전부터 부지런히 소품을 설치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배경으로 흰 천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스탠드를 세웠는데 이날 따라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아이고 다 날아가네~ 소윤아~”) 

누구든지, 언제든지, 우연의 바람이 부는 대로 걸어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걷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길이 나올 것이고, 선택하고 도전해야 할 순간도 나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글로 녹여내는 것이 <농담> 에디터의 보람이다. 누군가 글을 읽고 재밌다고 느낀다면,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