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사적인

#곡성맛집 이야기

에세이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조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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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사적인

#곡성맛집 이야기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조소은



"맛집이란 무엇인가?"


맛집이란 무엇인가? 한때 SNS상에서 유행한 칼럼 제목처럼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물어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그램에 검색하고, 새로운 곳에 갈 때면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며, 내가 소개한 집이 다른 이의 입맛에도 맛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그 집 사장도 아니고 요리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지는, 그 맛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맛집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후기를 남기는 열혈 블로거는 아니지만, 외식하는 날이면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 검색을 시작하는 정도의 정성을 지닌 축에는 속한다. 지난 몇 년 간의 데이터로 축적된 나의 맛집 검색 노하우는 바로 지도 앱(노란색을 선호하는 편). 도심 지역이라면 별점 4점 이상의 가게, 여행지라면 3.5점이 넘는 데를 고르면 대체로 실패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일단 맛집에 대해 1차로 정의한다면 ‘지도 앱 기준 별점 4점 이상의 가게’가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곡성은 맛집이 넘쳐나는 곳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어디가 맛집인지도 모르고 회사 동료들을 따라다녔는데 나중에 지도 앱을 검색하니 모두 4점은 그냥 넘기더라는 말씀. 곡성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역인 남원, 순천, 여수 등을 다녀 봐도 맛있는 가게들이 참 많다. 경상도에서 나고자라 인생의 반절이 넘는 시간을 경상도에서 보낸 나는 이제야 ‘남도 음식’의 매력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갑자기 식욕이 늘거나 맛있는 음식에 열중하게 되는 시기를 가리켜 흔히 ‘입이 터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곡성에 와서 ‘입이 터져 버렸다’. 어딜 가나 맛집이고 뭘 먹어도 맛있어서 열과 성을 다했더니 몸무게가 든든하게 늘었다. (이전에도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전라남도에 탓을 돌린 전적이 있다. 매거진 <농담> 2호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사실 어려워’ 편을 참고하시오.) 

그렇지만 진짜 맛집으로 기억되는 건 좀 다른 이야기 같다. 이를테면 한번 가고 두 번 가도 자꾸만 가고 싶은 곳,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는데 맛까지 있는 곳, 또는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익숙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나면 그때의 공기와 마주 앉은 사람을 떠올리고 그때의 대화까지 적절히 비벼 먹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맛집 아닐까나. 그러니까 맛집을 만드는 건 맛은 기본이고, 그 맛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만한 이야기가 맛깔나게 얽혀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나의 곡성 라이프와 긴밀하게 얽혀있는 맛집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꼬막은 그대가 다 먹어도 생선은 사이좋게 한 마리씩 나누기로 해
기차마을을 지나 오지리 쪽으로 달리면 인스타그래머블한 식당이 등장한다. 올해 초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여 깔끔한 노란색 대문으로 단장을 마친 백반집이다. 점심에는 무조건 8,000원짜리 식사로 통일, 들어가자마자 메뉴 대신 ‘4명이요!’를 외치면 된다. 갈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반찬들이 있어 집밥이 그리울 때 간다. 대부분의 점심 식사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선 질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이다. 백반집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한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반찬이든 다 맛있으니 일단 입에 넣고 보자.

일단 입에 넣고 보자를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은 우리 회사 디자이너 까치다. 입이 짧은 대신 손이 부지런한 까치는 해산물을 좋아하여, 꼬막무침이 나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그쪽으로 돌진한다. 밥이 나오기도 전에 꼬막무침 한 접시를 거의 다 비우고야 마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 지, 까치를 놀릴 때마다 써먹는 레퍼토리다.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의 심정을 너희는 모른다며 항변하는 까치, 식당의 인심은 넉넉하여 빈 그릇을 들고 가 한 접시 또 받아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다. 다행히 나는 해산물을 잘 먹지 않으니 그 접시를 까치가 또 비워도 상관없다. 한 사람의 취향과 습관과 역사가 백반집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게 참 재밌다.

우리 회사 또 다른 디자이너인 바다는 입사 첫날의 점심 식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신입사원을 데리고 무난하게 갈 수 있는 식당은 또 백반집만 한 게 없어, 전 직원 열 명이 모여 다 함께 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한구석에 앉아 상이 차려질 때까지 서먹한 공기를 견디던 순간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백반집을 택하길 잘한 것 같은데, 육해공을 넘나드는(?) 반찬이 있어야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때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과 가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던 것 같다. 바다에게 그날이 기억나는지 물으니 갈비탕이 맛있었고 어색해서 체할 것 같았단다. 음··· 꼬막무침이 환상적이고, 입사 첫날이라 체할 것 같은 와중에도 갈비탕이 맛있는 집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린 아름답고 찹쌀떡 사이야 
크림치즈 찹쌀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땐 곡성을 조금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찹쌀떡에 팥 대신 새콤달콤한 크림치즈 넣을 생각을 어떻게 했지?) 한쪽 벽에 가로로 길게 트인 창이 있고, 그 너머로 산의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그 생각은 좀 더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건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의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곡성에 처음 온 날의 이야기다. 그날부터 그 해가 다 끝날 때까지, 자주 산이 보이는 명당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나에게 물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경상남도 저 끝자락에 살던 내가 전라남도 곡성군에 당도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그 모든 인연은 정말 크림치즈찹쌀떡만큼이나 의외의 조합이었고, 그래서 흑임자 케이크만큼 달콤했고, 가끔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쌉쌀했다.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올랐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라니. 그냥 길이 거기 있으니까 왔더니 여기라는 그런 이야기. 아니,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도 가는 게 정답 아녔어?

운명이 있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우연의 영역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카페에 앉아 배웠다. 삼시 세끼 내가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하는 일은 그 우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눈앞의 우연이 주는 기회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함부로 뻗어 나가는 조급한 생각과 불안한 기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카페까지 걸어가는 길엔 벼가 익어가는 논밭이 고요히 펼쳐져 있고, 저무는 해가 한참을 지평선 끝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평온에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고는 했다. 감자빵 익는 냄새가 반겨줄 때까지 걸었다.

삼겹살은 제대로 익혀 먹어야 하고 추억은 좀 무르익어야지
처음 마음이 영원할 수는 없을까.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이 나올 때도 그대로일 순 없을까. 그럴 수 없으니까 ‘초심’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테다. 이곳 생활을 시작한 지도 일 년쯤 되어가니, 처음 마음은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지금의 힘듦과 외로움과 정처 없음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다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봐도 돌아오는 뾰족한 수는 없고, 몇 번 뗐다 붙인 포스트잇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요란하게 펄럭이는 이 마음. 고기 앞으로 가야 할 때다.

주어진 일에만 코 박고 열중하다가 오랜만에 회식 자리를 가졌다. 두툼한 삼겹살과 가득 찬 술잔이 식탁에 올랐다. 며칠간 쉼 없이 달려서 다들 지쳤는지 맛있게 먹고 마셨다. 미처 풀지 못한 마음은 술잔을 부딪치고, 소화되지 못한 말들은 맛있는 고기와 쌈 싸 먹으니 사르르 녹았다. 마주 보며 대화할 시간도 없이 일만 반복하다가 사람들 얼굴도 좀 들여다보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하니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보니 회식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갈등과 고민은 사실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마치 마무리 냉면에 고기 한 점 올려 먹듯 감칠맛 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이런 모임 자리를 통해 알게 된다. 

무르익는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삼겹살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를 기다리며 불판을 데우듯,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무르익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사람과 장소 사이도 마찬가지). 나를 배 불리고 살찌운 모든 맛집 구석구석에 나의 시간 한 점을 내어놓고 왔다. 맛집이 맛집이 되는 건 다름 아닌 그 시간이 무르익어 알맞은 온도가 될 때일 거라 믿는다. 나의 가장 사적인 곡성맛집 이야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곡성 맛집과 거기에 얽힌 추억에 대해 기록해보겠다.


“맛집이란 무엇인가?"



맛집이란 무엇인가? 한때 SNS상에서 유행한 칼럼 제목처럼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물어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그램에 검색하고, 새로운 곳에 갈 때면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며, 내가 소개한 집이 다른 이의 입맛에도 맛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그 집 사장도 아니고 요리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지는, 그 맛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맛집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후기를 남기는 열혈 블로거는 아니지만, 외식하는 날이면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 검색을 시작하는 정도의 정성을 지닌 축에는 속한다. 지난 몇 년 간의 데이터로 축적된 나의 맛집 검색 노하우는 바로 지도 앱(노란색을 선호하는 편). 도심 지역이라면 별점 4점 이상의 가게, 여행지라면 3.5점이 넘는 데를 고르면 대체로 실패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일단 맛집에 대해 1차로 정의한다면 ‘지도 앱 기준 별점 4점 이상의 가게’가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곡성은 맛집이 넘쳐나는 곳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어디가 맛집인지도 모르고 회사 동료들을 따라다녔는데 나중에 지도 앱을 검색하니 모두 4점은 그냥 넘기더라는 말씀. 곡성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역인 남원, 순천, 여수 등을 다녀 봐도 맛있는 가게들이 참 많다. 경상도에서 나고자라 인생의 반절이 넘는 시간을 경상도에서 보낸 나는 이제야 ‘남도 음식’의 매력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갑자기 식욕이 늘거나 맛있는 음식에 열중하게 되는 시기를 가리켜 흔히 ‘입이 터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곡성에 와서 ‘입이 터져 버렸다’. 어딜 가나 맛집이고 뭘 먹어도 맛있어서 열과 성을 다했더니 몸무게가 든든하게 늘었다. (이전에도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전라남도에 탓을 돌린 전적이 있다. 매거진 <농담> 2호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사실 어려워’ 편을 참고하시오.)


그렇지만 진짜 맛집으로 기억되는 건 좀 다른 이야기 같다. 이를테면 한번 가고 두 번 가도 자꾸만 가고 싶은 곳,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는데 맛까지 있는 곳, 또는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익숙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나면 그때의 공기와 마주 앉은 사람을 떠올리고 그때의 대화까지 적절히 비벼 먹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맛집 아닐까나. 그러니까 맛집을 만드는 건 맛은 기본이고, 그 맛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만한 이야기가 맛깔나게 얽혀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나의 곡성 라이프와 긴밀하게 얽혀있는 맛집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꼬막은 그대가 다 먹어도 생선은 사이좋게 한 마리씩 나누기로 해
기차마을을 지나 오지리 쪽으로 달리면 인스타그래머블한 식당이 등장한다. 올해 초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여 깔끔한 노란색 대문으로 단장을 마친 백반집이다. 점심에는 무조건 8,000원짜리 식사로 통일, 들어가자마자 메뉴 대신 ‘4명이요!’를 외치면 된다. 갈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반찬들이 있어 집밥이 그리울 때 간다. 대부분의 점심 식사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선 질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이다. 백반집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한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반찬이든 다 맛있으니 일단 입에 넣고 보자.

일단 입에 넣고 보자를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은 우리 회사 디자이너 까치다. 입이 짧은 대신 손이 부지런한 까치는 해산물을 좋아하여, 꼬막무침이 나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그쪽으로 돌진한다. 밥이 나오기도 전에 꼬막무침 한 접시를 거의 다 비우고야 마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 지, 까치를 놀릴 때마다 써먹는 레퍼토리다.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의 심정을 너희는 모른다며 항변하는 까치, 식당의 인심은 넉넉하여 빈 그릇을 들고 가 한 접시 또 받아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다. 다행히 나는 해산물을 잘 먹지 않으니 그 접시를 까치가 또 비워도 상관없다. 한 사람의 취향과 습관과 역사가 백반집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게 참 재밌다.

우리 회사 또 다른 디자이너인 바다는 입사 첫날의 점심 식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신입사원을 데리고 무난하게 갈 수 있는 식당은 또 백반집만 한 게 없어, 전 직원 열 명이 모여 다 함께 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한구석에 앉아 상이 차려질 때까지 서먹한 공기를 견디던 순간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백반집을 택하길 잘한 것 같은데, 육해공을 넘나드는(?) 반찬이 있어야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때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과 가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던 것 같다. 바다에게 그날이 기억나는지 물으니 갈비탕이 맛있었고 어색해서 체할 것 같았단다. 음··· 꼬막무침이 환상적이고, 입사 첫날이라 체할 것 같은 와중에도 갈비탕이 맛있는 집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린 아름답고 찹쌀떡 사이야 
크림치즈 찹쌀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땐 곡성을 조금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찹쌀떡에 팥 대신 새콤달콤한 크림치즈 넣을 생각을 어떻게 했지?) 한쪽 벽에 가로로 길게 트인 창이 있고, 그 너머로 산의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그 생각은 좀 더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건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의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곡성에 처음 온 날의 이야기다. 그날부터 그 해가 다 끝날 때까지, 자주 산이 보이는 명당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도 나에게 물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경상남도 저 끝자락에 살던 내가 전라남도 곡성군에 당도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그 모든 인연은 정말 크림치즈찹쌀떡만큼이나 의외의 조합이었고, 그래서 흑임자 케이크만큼 달콤했고, 가끔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쌉쌀했다.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올랐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라니. 그냥 길이 거기 있으니까 왔더니 여기라는 그런 이야기. 아니,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도 가는 게 정답 아녔어?


운명이 있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우연의 영역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카페에 앉아 배웠다. 삼시 세끼 내가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하는 일은 그 우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눈앞의 우연이 주는 기회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함부로 뻗어 나가는 조급한 생각과 불안한 기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카페까지 걸어가는 길엔 벼가 익어가는 논밭이 고요히 펼쳐져 있고, 저무는 해가 한참을 지평선 끝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평온에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고는 했다. 감자빵 익는 냄새가 반겨줄 때까지 걸었다. 


삼겹살은 제대로 익혀 먹어야 하고 추억은 좀 무르익어야지
처음 마음이 영원할 수는 없을까.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이 나올 때도 그대로일 순 없을까. 그럴 수 없으니까 ‘초심’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테다. 이곳 생활을 시작한 지도 일 년쯤 되어가니, 처음 마음은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지금의 힘듦과 외로움과 정처 없음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다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봐도 돌아오는 뾰족한 수는 없고, 몇 번 뗐다 붙인 포스트잇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요란하게 펄럭이는 이 마음. 고기 앞으로 가야 할 때다.

주어진 일에만 코 박고 열중하다가 오랜만에 회식 자리를 가졌다. 두툼한 삼겹살과 가득 찬 술잔이 식탁에 올랐다. 며칠간 쉼 없이 달려서 다들 지쳤는지 맛있게 먹고 마셨다. 미처 풀지 못한 마음은 술잔을 부딪치고, 소화되지 못한 말들은 맛있는 고기와 쌈 싸 먹으니 사르르 녹았다. 마주 보며 대화할 시간도 없이 일만 반복하다가 사람들 얼굴도 좀 들여다보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하니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보니 회식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갈등과 고민은 사실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마치 마무리 냉면에 고기 한 점 올려 먹듯 감칠맛 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이런 모임 자리를 통해 알게 된다.


무르익는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삼겹살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를 기다리며 불판을 데우듯,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무르익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사람과 장소 사이도 마찬가지). 나를 배 불리고 살찌운 모든 맛집 구석구석에 나의 시간 한 점을 내어놓고 왔다. 맛집이 맛집이 되는 건 다름 아닌 그 시간이 무르익어 알맞은 온도가 될 때일 거라 믿는다. 나의 가장 사적인 곡성맛집 이야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곡성 맛집과 거기에 얽힌 추억에 대해 기록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