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은
사실 어려워?
기획 연재: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5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제소윤, 조소은
기획 연재: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5
혼밥은
사실 어려워?
에디터 제소윤
포토그래퍼 제소윤, 조소은
어느새 네 번의 마감을 거쳐 다섯 번째 <농담>을 만들고 있다. 지난 넉 달의 작업물을 다시 둘러보니, 거의 매 호에서 ‘먹어가며’ 취재를 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1호에서는 셰어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비건 식사를, 2호에서는 파스타 가게에서, 4호에서는 신혼부부와 함께 근사한 집들이를···.) 어느 눈이 밝은 독자가 ‘이거 사실 네가 먹으러 다니려 만든 잡지 아니냐’ 물어도 할 말 없을 정도다. 특히 누군가의 가정에 방문할 때마다 인터뷰이이자 집주인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받았는데, 배 터지게 잘 얻어먹은 만큼 괜찮은 기사를 쓰긴 한건지. (반성한다)
어쩌면 먹는다는 행위만큼 자연스럽고, 삶 그 자체를 비춰내는 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농담>은 어쨌든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니까! 나와 내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들과 한끼 식사를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노라 변명 아닌 변명도 해본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오늘은 아예 ‘혼밥생활자’들의 밥 해 먹고 사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혼밥생활자’라는 단어는 [혼밥생활자의 책장]이라는 팟캐스트에서 빌려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취향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송이다. 진행자인 김다은 CBS PD가 방송 내용을 묶어 동명의 책도 냈는데,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이 바로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나 자신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토요일 아침, Y의 치즈케이크
Y에게 베이킹은 오래된 취미다. 5, 6년 전부터 오븐과 베이킹 도구를 하나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쿠키부터 시작해 케이크까지, 구울 줄 알게 되는 빵의 가짓수도 늘었다. 오븐은 작아도 맛있는 냄새로 금방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손으로 만지고 모양내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정확하게 계량하면 의도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아서 굽고 또 구웠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
어쩌다 보니 문을 열면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 살고 있다. 읍내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을 굽어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차 소리, 사람 소리 대신 개구리 소리가 ASMR처럼 들려온다. 자취를 시작한 지는 오래됐어도, 책상 의자부터 작은 그릇과 수납함 하나까지 맘에 들게 갖춰놓고 사는 건 처음이다. 도로명 주소만 찍으면 어디든 달려오는 택배 서비스 덕분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베이킹 재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빛이 쏟아지는 주말 아침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빵을 굽는다.
윗면을 태워서 고소한 풍미를 내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만들기로 한다. 치즈케이크도 크림치즈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카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필라델피아’ 치즈는 산미가 강하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끼리’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 오늘은 신맛도 고소한 맛도 중간쯤 된다는 ‘앵커’를 택했다. 냉장보관한 크림치즈를 꺼내 찬 기운이 가시도록 손으로 주물러주고, 계란과 생크림, 설탕을 정량대로 준비한다. 그 후에는 재료들을 잘 개어, 섞어주면 된다. 유튜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밟아가면 오케이. 예열된 오븐에 넣어 30분 정도 기다리면 맛있는 치즈케이크가 완성된다.
베이킹할 때마다, 일기 쓰는 것처럼 그날의 레시피를 쓴다. 쌓이는 기록만큼 실력도 괜찮아지고 있는 걸까? 기회가 된다면 전문 이론도 배우고 싶다. 재료가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맛을 내는지 알면 좀 다른 맛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반려 햄스터가 고요히 잠들고 Y는 혼자 일어나 빵을 굽는 아침, 어느새 고소한 냄새가 집을 채운다.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굳히기 전 따뜻한 상태에서 한 입 맛을 본다. 향긋하고도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입 안에 들어차는 이 기분,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수요일 저녁, S의 샐러드
S의 낙은 팟캐스트를 들으며 저녁을 차리는 일이다. 그는 손이 정말 느린 편이라 한번 요리를 시작하면 기본 1시간을 넘겨야 숟가락을 들 수 있다. 어차피 배고프다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끼니를 때우면 그만,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세월아 네월아 도마를 두드리며 하루의 피로를 뭉갠다.
천천히 흐르는 S의 저녁은 그 나름대로 평안과 풍미가 있었지만, 단 하나 문제라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도 S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함께 과일을 깎아 먹을 가족도, 수다를 떨거나 산책하러 나갈 이웃도 마땅히 없었기에 S는 좀 더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뭘 해도 1인분보다는 조금 더 애매하게 음식이 남았으니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했다.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틀면 꼭 입이 심심하고 허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S는 쟁여둔 과자를 한두 개씩 까먹고 침대에 누웠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면 그에 꼭 맞는 변명 거리도 함께 생각났다. 그러니까 “오늘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으니까 괜찮아” 혹은 “오늘은 컨디션이 구리니까 괜찮아” 같은.
그리하여 너무나 안 괜찮아진 S는 요즘 샐러드로 저녁 한 끼를 차린다. 속은 더부룩하고 아랫배는 두둑해진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S는 2인분 같은 1인분의 파스타 면을 삶는 대신 양상추, 시금치, 가끔은 양배추까지 먹기 좋게 썰고, 방울토마토 몇 알에 요즘 제철인 참외를 깎는다. 단백질을 보충하려 닭가슴살을 찢어 넣고, 고구마나 삶은 달걀을 곁들인다. 상 차리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간단히 먹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볍게 운동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어딘가 부어있던 느낌은 줄어들고 소화는 잘 된다. 무엇보다 간편하다. 장을 볼 때도 정해진 메뉴만 고르면 되니 간편하고, 사 온 재료는 떨어질 때까지 먹으니 괜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일도 없다. 주말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으며, 식단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조절한다. 앞으로도 이어질 혼자만의 식탁에서 좀 더 행복하기 위해 S는 당분간 지금의 식단을 유지할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자신을 데리고,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가기 위해 S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연습 중이다.
금요일 저녁, J의 샥슈캬
뭉근한 화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날이면, J는 지옥불에 뛰어드는 대신 달걀을 빠트리기로 한다. '에그 인 헬(Egg in Hell)'이라고도 부르는, 토마토소스에 계란을 넣는 중동식 요리 '샥슈카'를 해 먹겠다는 얘기다. 양배추, 호박, 양파 등 야채를 기름에 볶은 뒤 토마토소스를 부어 졸여내는데, 여기에 계란을 깨 약불에 익혀 완성하는 요리다. 토마토소스에 계란을 얹은 모양이 꼭 지옥불에 빠진 것 같다는 의미에서 '에그 인 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야채를 얼마든 넣어 먹을 수 있어 J가 부담 없이 자주 하는 요리다.
J가 샥슈카를 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친구 한두 명을 집으로 부른다. 누군가는 재료를 씻고 준비하고, 누군가는 집을 치우고 상을 차린다. 부엌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J의 몫이다. 손도 빨라서 휙휙, 턱턱 몇 번이면 금방 먹음직한 요리가 끓고 풍성한 한 상이 차려진다. 간단히 샐러드를 곁들여도 좋고, 국처럼 밥과 함께 먹어도 좋고, 빵을 구워서 발라먹어도 좋다.
20대 초반에 휴학하고 자주 집에만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J는 요리 채널을 열심히 봤다. 유명한 셰프들이 TV에 부지런히 출연하던 때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저 사람들이 만드는 건 한번 따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한두 개씩 해보게 됐다. 지금은 뭐든 레시피만 있으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러니 J가 요리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는 것이 좋다. J에게도, 혼자 먹을 걸 요리하는 것보다는 함께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게 훨씬 재밌다. 요리하는 건 사실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 그만큼 노력해서 여러 사람의 배를 불리는 일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요리를 잘한다는 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재능인지. 맛있게 그릇을 비우고, 설거지 내기 보드게임 한판이 벌어진다. 음식을 담당했으니 자연스럽게 설거지에서는 빠지는 이 여유. 일주일의 피로는 어느새 가라앉고,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이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서 혼자만의 귀촌 생활을 꾸려가다 보면 외롭다는 사실에만 몰두하게 될 때가 많다. 물론 외롭다는 것 또한 나의 일부지만, 외로움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과 함께 산다는 생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풍성하게, 행복하게 만들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야말로 내가 어떻게 사는 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기 때문이다. 당신의 식탁에는 오늘 어떤 음식이 올라왔는지? 그게 무엇이든, 당신 자신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한 끼 식사였기를 바라며.
김다은, 『혼밥생활자의 책장(2019, 나무의철학)』
어느새 네 번의 마감을 거쳐 다섯 번째 <농담>을 만들고 있다. 지난 넉 달의 작업물을 다시 둘러보니, 거의 매 호에서 ‘먹어가며’ 취재를 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1호에서는 셰어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비건 식사를, 2호에서는 파스타 가게에서, 4호에서는 신혼부부와 함께 근사한 집들이를···.) 어느 눈이 밝은 독자가 ‘이거 사실 네가 먹으러 다니려 만든 잡지 아니냐’ 물어도 할 말 없을 정도다. 특히 누군가의 가정에 방문할 때마다 인터뷰이이자 집주인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받았는데, 배 터지게 잘 얻어먹은 만큼 괜찮은 기사를 쓰긴 한건지. (반성한다)
어쩌면 먹는다는 행위만큼 자연스럽고, 삶 그 자체를 비춰내는 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농담>은 어쨌든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니까! 나와 내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들과 한끼 식사를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노라 변명 아닌 변명도 해본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오늘은 아예 ‘혼밥생활자’들의 밥 해 먹고 사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혼밥생활자’라는 단어는 [혼밥생활자의 책장]이라는 팟캐스트에서 빌려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취향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송이다. 진행자인 김다은 CBS PD가 방송 내용을 묶어 동명의 책도 냈는데,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이 바로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나 자신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토요일 아침, Y의 치즈케이크
Y에게 베이킹은 오래된 취미다. 5, 6년 전부터 오븐과 베이킹 도구를 하나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쿠키부터 시작해 케이크까지, 구울 줄 알게 되는 빵의 가짓수도 늘었다. 오븐은 작아도 맛있는 냄새로 금방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 손으로 만지고 모양내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정확하게 계량하면 의도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아서 굽고 또 구웠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
어쩌다 보니 문을 열면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 살고 있다. 읍내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을 굽어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차 소리, 사람 소리 대신 개구리 소리가 ASMR처럼 들려온다. 자취를 시작한 지는 오래됐어도, 책상 의자부터 작은 그릇과 수납함 하나까지 맘에 들게 갖춰놓고 사는 건 처음이다. 도로명 주소만 찍으면 어디든 달려오는 택배 서비스 덕분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베이킹 재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빛이 쏟아지는 주말 아침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빵을 굽는다.
윗면을 태워서 고소한 풍미를 내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만들기로 한다. 치즈케이크도 크림치즈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카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필라델피아’ 치즈는 산미가 강하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끼리’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낸다. 오늘은 신맛도 고소한 맛도 중간쯤 된다는 ‘앵커’를 택했다. 냉장보관한 크림치즈를 꺼내 찬 기운이 가시도록 손으로 주물러주고, 계란과 생크림, 설탕을 정량대로 준비한다. 그 후에는 재료들을 잘 개어, 섞어주면 된다. 유튜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밟아가면 오케이. 예열된 오븐에 넣어 30분 정도 기다리면 맛있는 치즈케이크가 완성된다.
베이킹할 때마다, 일기 쓰는 것처럼 그날의 레시피를 쓴다. 쌓이는 기록만큼 실력도 괜찮아지고 있는 걸까? 기회가 된다면 전문 이론도 배우고 싶다. 재료가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맛을 내는지 알면 좀 다른 맛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반려 햄스터가 고요히 잠들고 Y는 혼자 일어나 빵을 굽는 아침, 어느새 고소한 냄새가 집을 채운다.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굳히기 전 따뜻한 상태에서 한 입 맛을 본다. 향긋하고도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입 안에 들어차는 이 기분,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수요일 저녁, S의 샐러드
S의 낙은 팟캐스트를 들으며 저녁을 차리는 일이다. 그는 손이 정말 느린 편이라 한번 요리를 시작하면 기본 1시간을 넘겨야 숟가락을 들 수 있다. 어차피 배고프다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끼니를 때우면 그만,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세월아 네월아 도마를 두드리며 하루의 피로를 뭉갠다.
천천히 흐르는 S의 저녁은 그 나름대로 평안과 풍미가 있었지만, 단 하나 문제라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도 S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함께 과일을 깎아 먹을 가족도, 수다를 떨거나 산책하러 나갈 이웃도 마땅히 없었기에 S는 좀 더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뭘 해도 1인분보다는 조금 더 애매하게 음식이 남았으니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했다.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틀면 꼭 입이 심심하고 허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S는 쟁여둔 과자를 한두 개씩 까먹고 침대에 누웠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면 그에 꼭 맞는 변명 거리도 함께 생각났다. 그러니까 “오늘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으니까 괜찮아” 혹은 “오늘은 컨디션이 구리니까 괜찮아” 같은.
그리하여 너무나 안 괜찮아진 S는 요즘 샐러드로 저녁 한 끼를 차린다. 속은 더부룩하고 아랫배는 두둑해진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S는 2인분 같은 1인분의 파스타 면을 삶는 대신 양상추, 시금치, 가끔은 양배추까지 먹기 좋게 썰고, 방울토마토 몇 알에 요즘 제철인 참외를 깎는다. 단백질을 보충하려 닭가슴살을 찢어 넣고, 고구마나 삶은 달걀을 곁들인다. 상 차리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간단히 먹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볍게 운동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어딘가 부어있던 느낌은 줄어들고 소화는 잘 된다. 무엇보다 간편하다. 장을 볼 때도 정해진 메뉴만 고르면 되니 간편하고, 사 온 재료는 떨어질 때까지 먹으니 괜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일도 없다. 주말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으며, 식단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조절한다. 앞으로도 이어질 혼자만의 식탁에서 좀 더 행복하기 위해 S는 당분간 지금의 식단을 유지할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자신을 데리고,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가기 위해 S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연습 중이다.
금요일 저녁, J의 샥슈카
뭉근한 화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날이면, J는 지옥불에 뛰어드는 대신 달걀을 빠트리기로 한다. '에그 인 헬(Egg in Hell)'이라고도 부르는, 토마토소스에 계란을 넣는 중동식 요리 '샥슈카'를 해 먹겠다는 얘기다. 양배추, 호박, 양파 등 야채를 기름에 볶은 뒤 토마토소스를 부어 졸여내는데, 여기에 계란을 깨 약불에 익혀 완성하는 요리다. 토마토소스에 계란을 얹은 모양이 꼭 지옥불에 빠진 것 같다는 의미에서 '에그 인 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야채를 얼마든 넣어 먹을 수 있어 J가 부담 없이 자주 하는 요리다.
J가 샥슈카를 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친구 한두 명을 집으로 부른다. 누군가는 재료를 씻고 준비하고, 누군가는 집을 치우고 상을 차린다. 부엌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J의 몫이다. 손도 빨라서 휙휙, 턱턱 몇 번이면 금방 먹음직한 요리가 끓고 풍성한 한 상이 차려진다. 간단히 샐러드를 곁들여도 좋고, 국처럼 밥과 함께 먹어도 좋고, 빵을 구워서 발라먹어도 좋다.
20대 초반에 휴학하고 자주 집에만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J는 요리 채널을 열심히 봤다. 유명한 셰프들이 TV에 부지런히 출연하던 때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저 사람들이 만드는 건 한번 따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한두 개씩 해보게 됐다. 지금은 뭐든 레시피만 있으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러니 J가 요리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는 것이 좋다. J에게도, 혼자 먹을 걸 요리하는 것보다는 함께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게 훨씬 재밌다. 요리하는 건 사실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 그만큼 노력해서 여러 사람의 배를 불리는 일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요리를 잘한다는 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재능인지. 맛있게 그릇을 비우고, 설거지 내기 보드게임 한판이 벌어진다. 음식을 담당했으니 자연스럽게 설거지에서는 빠지는 이 여유. 일주일의 피로는 어느새 가라앉고,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이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서 혼자만의 귀촌 생활을 꾸려가다 보면 외롭다는 사실에만 몰두하게 될 때가 많다. 물론 외롭다는 것 또한 나의 일부지만, 외로움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과 함께 산다는 생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풍성하게, 행복하게 만들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야말로 내가 어떻게 사는 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기 때문이다. 당신의 식탁에는 오늘 어떤 음식이 올라왔는지? 그게 무엇이든, 당신 자신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한 끼 식사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