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읽기 좋은 농담 ✉️ 뉴스레터 ✉️

농담 뉴스레터

Special 02. 곡성, 오늘도 빛나고 있는

파랑 그리고 보라

#버스정류장  #KTX  #밤하늘  #새벽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파랑 그리고 보라

#버스정류장  #KTX  #밤하늘  #새벽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곡성의 파란색은 땅에서 찾고 남색과 보라색은 하늘에서 찾았다. 차가워 보이는 푸른색과 보라색에도 곡성의 따스함은 담겨있다. 파란색, 남색 그리고 보라색에서 찾은 곡성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파란빛 버스정류장

곡성의 버스정류장은 파란색 기차 모양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가 기차 모양이라니 그 얼마나 기차에 진심인 마을인가! 기차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기분은 묘하지만 나쁘지 않다. 곡성의 기차 모양 버스정류장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대도시의 편리한 대중교통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정류장에 앉아 흔들리는 풀소리,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도 잊힌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은 한가하고 여유롭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시골에서 버스를 타려면 부지런 해야 한다. 잠깐 여유를 부리다 놓쳐버린 버스는 30분 뒤에나 만날 수 있다. 버스가 떠나버린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어르신들이 천천히 걸어오신다. 30분 뒤에 도착할 버스를 미리 마중 나오신 것이다. 이렇듯 시골의 버스정류장은 기다림의 공간이다. 


버스정류장은 기다림의 공간인 동시에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장날의 버스정류장은 다른 날보다 활기가 넘친다. 마을 어르신들이 장바구니를 손에 들거나 장바구니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하나둘 정류장에 모이신다. 장날 버스정류장에 있으면 말을 걸어오는 어르신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웃에 사는 어르신의 근황을 듣기도 하고 제철 음식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곡성의 기차 모양 버스정류장 안에서는 버스만이 아닌 시골의 따스한 정이 오간다.


파란빛 KTX

빠르게 달리는 KTX를 생각하면 도시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KTX는 한국의 도시와 도시를 잇고 있다. 그리고 도시와 도시 사이, 시골에서도 KTX는 정차한다. 그중 한 역이 곡성역이다. 곡성에 KTX가 정차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곡성에 KTX가 다닌다고? 시골에 무슨 KTX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곡성역에 정차하는 KTX를 이용한다. KTX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꿀팁 하나를 알려주자면 KTX를 타고 서울에서 곡성에 올 때는 1호 차 혹은 2호 차 뒷자리에 타는 게 좋다. 열차에서 내려서 곧바로 곡성역을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서울과 곡성을 오갈 때 KTX를 탄다. 서울과 곡성 사이에서 약 두시간 반 동안 빠르게 변하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스쳐 간다. 오늘 뭘 먹을지와 같은 소소한 생각에서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와 같은 조금 묵직한 생각까지. KTX는 무수한 생각을 싣고 레일 위를 달린다.


KTX가 실어 나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정차하는 지역의 특유한 향기 또한 함께 실린다. 그렇게 KTX는 도시의 향기를 담고 곡성에 내려오고 반대로 곡성의 향기를 담고 도시로 올라간다. 도시와 시골의 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숨을 한껏 들이쉬어 본다.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은 분명 다르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다. 도시와 시골 그 사이를 달리는 KTX 안에서 나 또한 도시와 시골 사이의 삶을 살아간다.  


곡성에서 서울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서울에서 곡성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도 줄어들었기 바란다. 


쪽빛 밤하늘

언젠가 몽골이나 사막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보는 밤하늘이 정말 멋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몽골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밤하늘이었다. 왜 이렇게 밤하늘이 보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타향 생활 끝에 곡성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곡성에 내가 보고 싶던 밤하늘이 있었다. 나는 곡성의 밤하늘이 그리웠던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 밤하늘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하늘보다는 지상의 인공적인 불빛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야경을 본다며 산에 갔을 때도, 강가에 갔을 때도 도심의 불빛을 구경했다. 밤을 밝히는 인공적인 불빛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했다. 곡성의 밤에는 차분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지상이 어둠에 잠겨있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하늘로 향한다.


시골의 밤하늘은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인공적인 불빛에 가려지지 않은 밤하늘의 색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흩뿌려진 별들.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에 가득하다. 내 위로 오로지 하늘만 존재하는 듯한 감각은 잊을 수 없다. 옛사람들처럼 밤하늘을 보며 땅 위의 길을 찾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길은 찾을 수 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위로를 얻고 희망을 품어본다. 


보랏빛 새벽

밤의 검푸른 하늘과 떠오르는 태양의 붉음이 만나는 시간. 시골의 하루는 보랏빛 하늘에서 시작한다. 경운기 소리와 닭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농사짓는 어느 이웃의 소리일 것이다. 경운기 소리가 점점 멀어져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가끔 이렇게 새벽에 깨어난 날이면 창밖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곤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곡성의 새벽은 보라색 하늘빛이 낮게 깔린 안개에 부드럽게 섞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새벽이슬이 맺힌 거미줄이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창을 살짝 열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신다. 새벽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새벽은 나에겐 낯선 시간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익숙한 시간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고추 농사를 지었다. 일하기 위해 어스름한 방을 나서는 부모님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가끔 부모님을 따라 고추밭에 나가기도 했다. 고추는 열매가 열리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 많았다. 낮에 작업하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시원한 새벽과 아침에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농부의 새벽은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간다. 정성스레 돌본 농작물이 건강히 자라 수확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벽이슬로 맺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벽은 희망의 시간으로 여겨진다. 농부에게는 특히나 그런 것 같다. 한 해의 소망을 품고 부지런히 농작물을 돌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농부의 소망을 우리는 식탁에서 만난다.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든지 새벽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길 바란다.

일곱 가지 색에 다 담지 못한 다채로운 색과 이야기가 곡성 곳곳에 펼쳐져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여러분도 이 즐거움을 곡성, 그리고 각자의 일상에서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