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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02. 곡성, 오늘도 빛나고 있는

노랑 그리고 초록

#뚝방마켓  #논  #산  #섬진강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노랑 그리고 초록

#뚝방마켓  #논  #산  #섬진강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이제리

시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무엇일까? 싱그러운 자연의 색일 것이다. 산뜻한 노란색과 초록색은 농촌의 어디를 둘러봐도 쉽게 눈에 띈다. 곡성을 감싼 노란색과 초록색에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노란빛 뚝방마켓

읍내 사이로 흐르는 곡성천을 따라 노란빛 천이 흩날린다. 주중에는 산책하는 사람들과 개들만 간간이 보이지만 주말이면 완전히 달라진다. 바로 뚝방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뚝방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노란빛으로 물든 길을 따라 판매대가 늘어선다. 곡성 곳곳에서 손수 만든 물건을 팔기 위해 모여든 판매자들이 자신의 색을 담아 판매대를 꾸미기 시작한다. 뚝방마켓에서는 손으로 만든 것이면 무엇이든 팔 수 있다. 자수가 놓인 동전지갑, 손수 만든 초콜릿, 직접 기른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 떡볶이와 어묵까지 다양한 물건과 음식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이 많은 재주꾼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나오는 걸까?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그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정직하고 멋있다.

판매자들이 자리를 잡고 나면 사람들이 하나둘 뚝방마켓을 찾아온다. 주말에 나들이 나온 곡성 주민도, 근처에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기 아쉬웠던 관광객도 뚝방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북적이는 뚝방마켓은 작품을 사고파는 이들의 노란빛 활기로 가득하다. 뚝방마켓의 모든 물건과 먹거리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자그마한 판매대에는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꿈도 담겨있다. 직접 만든 캐릭터로 굿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하고 뚝방마켓에서 시작해 용기를 얻어 자신만의 가게를 차린 사람도 있다.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마음과 꿈은 작품을 더 특별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곡성은 뚝방마켓의 노란빛 활기와 따스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란빛 논

수확을 기다리는 논은 온통 노란빛이다. 수확 철의 논을 보면 가을의 풍요로움이 온몸으로 쏟아지듯 느껴진다. 이삭에 맺힌 새벽이슬은 농부의 땀방울 같기도 하다. 농부는 수확을 기다리는 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머릿속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가득할 것이다. 예상 수확량은 어느 정도인지, 올해 벼의 품질은 어떨지, 볏짚은 어떻게 처리할지와 같은 고민 말이다. 그러다 잠시 한숨 돌리며 농사를 짓느라 치열했던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지 않은 자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농부들의 한 해의 노고가 담겨 있어 벼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고개 숙인 벼에 담긴 삶의 무게가 눈 앞의 밥 한 그릇이 되었다. 어느 농부의 일 년은 이렇게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언제까지나 파릇파릇할 것 같았던 벼들이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매일매일 똑같은 모습인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완전히 달라져 있다. 한없이 푸르다가 조금씩 소리 없이 노랗게 익은 벼에서는 꽃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변하는 것 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나의 하루들도 벼처럼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걸까? 벼가 익어가듯 내 생각들도 천천히, 풍성하고 아름다운 노란빛으로 익어가면 좋겠다. 


초록빛 산

곡성(谷城)은 골짜기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곡성에서는 어딜 바라보아도 굽이치는 산이 보인다. 아마 곡성 어디에서 사진을 찍든 배경에 산이 나올 것이다. 


곡성의 산은 참 아름답다. 같은 자리에 있는 산을 매일 보면 지루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다. 계절에 따라 그에 걸맞은 색으로 갈아입고, 하루 안에서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곡성을 둘러싼 산세는 부드러우면서 수려하다. 직접 산에 올라 곡성을 둘러보면 하늘과 들판 사이 겹겹이 어우러진 능선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새벽의 안개가 내려앉은 곡성의 산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화양마을에서 곡성읍으로 가는 길에 산골짜기 사이로 내려앉은 안개를 자주 본다. 하늘의 구름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안개가 된 것 같다. 안개를 머금은 산은 신선의 땅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개 속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안개 때문에 산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에서 보는 산은 유달리 거대해 보인다. 이 거대한 산이 신기하게도 위협적이기보다는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 든든한 기분이 든다. 


곡성의 산은 침엽수가 많다. 곡성의 산은 가까이에서 보면 계절에 따라 단풍이 들기도 하고 낙엽이 지기도 하지만 멀리에서 보면  사시사철 푸르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푸른 산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산은 소리조차 푸르다. 산골짜기 아래에 서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산이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길 반복하며 귀를 간지럽힌다.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풍경이 그곳의 특성을 보여준다. 곡성은 곡성의 산을 닮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푸르다.


초록빛 섬진강

섬진강의 섬진(蟾津)은 두꺼비 나루라는 뜻이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침략했다가 수많은 두꺼비가 한꺼번에 우는 모습에 놀라서 다른 길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섬진강은 두꺼비보다는 동자개와 다슬기가 많은 강이다. 어릴 때 가족이 함께 섬진강에 와서 아빠와 동생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엄마와 나는 다슬기를 찾아다녔다. 낚시하러 간 날이면 꼭 강가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그때부터였을까? 나의 라면 사랑이 시작된 게). 갑자기 비가 내려서 파라솔을 펼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경하기도 했다. 비 오는 강가에서는 가족의 온기가 더 잘 느껴졌다. 섬진강에는 지금도 가족과의 추억이 흐르고 있다. 


곡성의 산골짜기 사이로 잔잔하게 섬진강이 굽이쳐 흐른다. 곡성의 산이 비친 섬진강은 초록빛이다. 바람에 잘게 떨리는 초록빛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초록색이 안전과 안정을 상징하는지 알게 된다. 섬진강을 바라보면 마음에 한없는 평안함이 차오른다. 물멍은 불멍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그러고 보니 곡성은 멍때리기 참 좋은 곳이다). 강물을 보며 자신을 가로막는 산을 둘러 흐르는 유연함을 생각한다. 산이 비치면 산의 색으로, 하늘이 비치면 하늘의 색으로 물드는 포용력을 생각한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물결에 흩어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긴다. 섬진강은 말없이 나의 마음을 담고 흘러간다. 

뚝방마켓과 논에서 일렁이는 노란빛과 산과 섬진강에 푹 잠긴 초록빛은 곡성에 활기와 곡성다움을 더한다.  곡성을 둘러싼 노란색과 초록색은 그 어떤 색보다 곡성을 가득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