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기다리는 논은 온통 노란빛이다. 수확 철의 논을 보면 가을의 풍요로움이 온몸으로 쏟아지듯 느껴진다. 이삭에 맺힌 새벽이슬은 농부의 땀방울 같기도 하다. 농부는 수확을 기다리는 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머릿속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가득할 것이다. 예상 수확량은 어느 정도인지, 올해 벼의 품질은 어떨지, 볏짚은 어떻게 처리할지와 같은 고민 말이다. 그러다 잠시 한숨 돌리며 농사를 짓느라 치열했던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지 않은 자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농부들의 한 해의 노고가 담겨 있어 벼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고개 숙인 벼에 담긴 삶의 무게가 눈 앞의 밥 한 그릇이 되었다. 어느 농부의 일 년은 이렇게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언제까지나 파릇파릇할 것 같았던 벼들이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매일매일 똑같은 모습인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완전히 달라져 있다. 한없이 푸르다가 조금씩 소리 없이 노랗게 익은 벼에서는 꽃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변하는 것 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나의 하루들도 벼처럼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걸까? 벼가 익어가듯 내 생각들도 천천히, 풍성하고 아름다운 노란빛으로 익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