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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02. 곡성, 오늘도 빛나고 있는

빨강 그리고 주황

#모닥불  #장미  #감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빨강 그리고 주황

#모닥불  #장미  #감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나이사

곡성의 일곱 가지 빛깔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은 빨간색과 주황색이다. 곡성의 빨간색과 주황색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색감만큼이나 따뜻한 곡성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빨간빛 모닥불

어두운 밤을 밝혀주고 따뜻함을 주는 불. 곡성에 살다 보면 모닥불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섬진강 주변 캠핑장 곳곳이 모닥불로 밝게 빛나고, 마음만 먹으면 친구 집 마당에서도 모닥불을 피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닥불이 일상적인 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간단하게 불을 켤 수 있는 가스레인지와 달리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수고로운 일이다. 우선 장소 선정부터 까다롭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둘러앉기 좋으면서 불을 피워도 안전한 곳을 찾아 불 피울 자리를 마련한다. 자리를 찾았다면, 적절한 불쏘시개를 모아 불을 붙이고 잘 타도록 도와주는 잔가지를 넣는다. 불이 커지면 두꺼운 장작을 올리기 시작한다. 장작을 쌓을 때는 공기가 잘 통할 수 있도록 모양을 잡아야 한다. 

모닥불을 피울 수 있다는 건 불을 머금을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모닥불을 피울 때면 새삼스레 곡성이 시골이라는 걸 느낀다. 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가 타는 걸 바라본다. 점점 이야기가 잦아들어 가만히 불꽃을 보고 있으면 불꽃의 경계가 희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희미한 경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생각의 경계도 희미해진다(한마디로 멍때리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타닥타닥. 리듬감 있게 타들어 가는 소리와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불빛. 모닥불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에 앉아 불멍을 즐긴다. 각자의 온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인생들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적절할까? 오늘도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다.


빨간빛 장미

시골과 장미. 실로 오묘한 조합이다. 곡성군의 군화는 철쭉과 코스모스지만, 사람들이 곡성 하면 떠올리는 꽃은 장미일 것이다. 곡성의 길거리는 온통 장미로 꾸며져 있고 섬진강 기차마을 내에 있는 장미공원에 가면 무려 1,004종의 장미를 만날 수 있다(장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걸 곡성에 와서 알았다!). 또한 장미를 테마로 곡성세계장미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곡성세계장미축제가 열리는 5월이면, 곡성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로 가득 찬다. 장미는 곡성에 색을 입히고 사람을 끌어모은 소중한 존재다. 어린 왕자의 장미가 어린 왕자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곡성의 장미도 곡성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만나는 장미는 줄기가 잘린 상태로 진열되어 누군가가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기다린다. 곡성에서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장미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곡성 땅에서 비를 맞고 햇빛을 받으며 자란 장미에는 곡성이 녹아있다. 이렇게 곡성과 장미는 상생해간다. 


어느 날 장미를 받는다면 그날은 평범한 날과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곡성 곳곳에 있는 장미를 발견할 때면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기대를 품고 하루를 보낸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기대를 가지고 관찰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곡성의 장미가 가져다준 기대감을 오늘도 마음에 담고 거리를 걸어본다. 


주황빛 감

시골의 정은 감나무에 열린다. 감이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집마다 어르신들이 감을 따서 내미신다. 다른 집에서 받은 감이 손에 있어도 그 위에 또 얹어주신다(자기 집 감은 더 맛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받은 감은 가을 내내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감나무는 마을의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집 감이 유달리 빨리 익었다는 이야기나 이 집 감은 색이 고우니 조금만 더 놔두자는 이야기가 오간다. 

감나무를 통해 오가는 정은 까치에게도 해당한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못 따는 감은 까치밥으로 놔두고, 까치에게 주자며 일부러 남겨 놓기도 한다. 까치에게도 감나무는 정이 가득 매달린 나무다. 가끔 감나무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바로 고라니와 멧돼지이다. 달큰하게 맛이 든 감은 우리의 입맛만이 아닌 고라니와 멧돼지의 입맛도 사로잡나보다. 야생동물들로 인해 감 농사를 짓는 농가는 곤란하기도 하다.


감나무에 감을 따지 않고 놔두면 가을 햇빛에 푹 익어 홍시가 된다. 감나무에 달린 주홍빛 홍시를 볼 때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치아가 약해서 부드러운 음식만 드실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말랑한 홍시는 참 좋은 간식이었다. 감나무가 없는 집에 사는 할머니를 위해 홍시가 익을 때가 되면 특별히 색이 고운 홍시를 골라서 보내드리곤 했다. 이제는 보낼 곳 없는 홍시를 보며 그리움에 잠긴다.

모닥불에 피어오르는 생각들, 장미에 담긴 특별한 기대감, 감나무에 매달린 정은 빨간빛으로 혹은 주황빛으로 곡성에 색을 덧칠한다. 빨간색과 주황색이 더해진 곡성은 한층 선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