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01. 어제, 그리고 오늘
이현씨의 어제, 그리고 오늘
#2년차 농업인 #내 삶의 주도권을 찾다
에디터 나이사, 이든
포토그래퍼 제리
곡성에서 딸기와 멜론을 키우는 이현 씨.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생활이 본인과 잘 맞는다고 하는 그녀. 주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청년 농부가 꾸려가는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넓게 펼쳐진 논 사이에 자리 잡은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딸기를 돌보고 있는 이현 씨의 모습이 보였다. 이현씨는 농대를 졸업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회사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다 자신만의 삶과 일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곡성에 왔다. 현재 로와농장을 홀로 운영하며 여름에는 멜론, 겨울에는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이현씨의 하루
*농업 특성상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일상이 바뀝니다. 지금 작성하는 하루는 10월 말~11월 초 딸기가 나오기 전 일상입니다.
AM 오전 | PM 오후 | ||
00-01:00 | 수면 | 12-13:00 | 집에서 점심식사 및 휴식 |
01-02:00 | 13-14:00 | 농작업 | |
02-03:00 | 14-15:00 | ||
03-04:00 | 15-16:00 | ||
04-05:00 | 16-17:00 | ||
05-06:00 | 17-18:00 | 일지 기록 및 퇴근 | |
06-07:00 | 18-19:00 | 저녁 식사 및 집안일 | |
07-08:00 | 기상, 세안 등 출근 준비 및 하우스 도착 | 19-20:00 | 산책 |
08-09:00 | 환경관리일지 기록, 작물 상태 확인 후 농작업 시작 | 20-21:00 | 샤워, 휴식 |
09-10:00 | 농작업 | 21-22:00 | 농장 SNS 관리, 영농일지 기록 |
10-11:00 | 22-23:00 | 휴식 | |
11-12:00 | 23-24:00 |
다양한 직업 중에서 농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남이 시키는 일보다는 내가 찾아서 하는 걸 선호해서 농업이 저와 잘 맞더라고요. 학교에서 실습수업을 하면서도 재미를 느꼈고 농업은 잘 운용하면 소득이 굉장히 높아 투자를 해서라도 제대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많은 지역 중 곡성에서 농업을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고향이 곡성이에요. 고향이다 보니 농업을 어디서 해볼까 했을 때 자연스럽게 곡성을 떠올렸어요. 두번째 이유로는 농사를 지으려면 땅이 필요하잖아요. 곡성은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인데 저평가되어 땅값이 저렴한 편이에요. 또한, 곡성은 청년들이 농업보다 축산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 딸기나 채소류 농업을 하는 청년 농부들이 많지 않아 저한테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곡성에서 농업을 종사하는데 장점이 있나요?
일단 광주랑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서 좋아요. 또, 멜론을 수확할 때는 멜론이 곡성 특산물이다 보니 일손이 필요할 때 일손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홍보하기도 좋아요. 곡성 멜론은 유명해서 SNS나 스마트 스토어로 유입되는 분들도 많거든요.
주변 농가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제가 어리다 보니 주변에서 경쟁자로 보시기보다 많이 챙겨주시더라고요. 젊은 친구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나 관심도 가져주시고 하세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는 언제인가요?
가장 바쁜 시기는 재배하고 있는 작물에 따라 달라요. 멜론은 단거리 달리기 같아서 6월에 심으면 7월~8월 초까지 정신없이 바쁘다가 8월 말부터는 조금 한가해져요. 딸기는 멜론에 비해 마라톤 같아요. 9월 중순에 심을 때 반짝 바빴다가 12월부터 5월까지 꾸준히 손이 가죠. 아무래도 딸기는 하나하나 예쁘게 포장이 필요하다보니 수확을 시작하면 계속 바빠요.
요즘 시기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나요?
이제 막 딸기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꽃을 솎아 주는 작업인 적화 작업을 해요. 꽃이 여러 개 달려 있으면 딸기가 작아지거든요.
하우스가 꽤 넓은데 혼자서 다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네. 작물을 심고 수확하고 포장까지 혼자서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수준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서 혼자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 바쁜 시기에는 주변에 손을 빌리기도 해요.
아침에 가장 먼저 하우스 CCTV를 확인하는 이유가 있나요?
하우스 관리를 스마트 팜으로 하고 있어서 세팅이 잘 못 되어 있으면 기기도 작물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있어요. 전에 부직포에 문제가 생겼는데 늦게 발견해서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고 CCTV를 설치했어요. 그때 외에는 지금까지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어요. CCTV로 하우스 내부도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온도 데이터나 다양한 환경 데이터를 확인해요.
스마트 팜으로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생산물이 좋으려면 작물 관리가 중요해요. 하우스 환경을 하나하나 저 혼자 관리하려면 이것만 관리하다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요. 스마트 팜은 하우스 내 환경을 자동으로 균일하게 유지해 줘요. 덕분에 저도 좀 여유가 생겨서 일이 없는 날은 나가서 놀기도 해요. 스마트 팜이 농부의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줬어요. 다만, 초기 투자 자금이 상당히 필요해요. 저는 곡성군에서 임대해 줘서 저렴하게 사용 중이에요.
수확한 작물은 어떤 방식으로 판매하시나요?
저는 일단 수확한 멜론은 전부 직거래로 판매했고 지금 키우고 있는 딸기도 직거래나 소매로 판매할 예정이에요. 그렇다 보니 소비자 확보가 중요해서 SNS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어요. 오늘도 딸기를 택배로 구매가 가능한지 문의가 들어왔어요. 직거래 판매도 SNS로 오는 연락이 가장 많아요. 멜론은 택배 판매가 가능한데 딸기는 택배 판매가 조금 힘들어서 가까운 곳에서 소매로 진행해 보려구요.
전반적인 곡성 생활은 어떠세요?
곡성은 조용해서 너무 좋아요. 다른 분들은 시골이 너무 한적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걸 싫어하거든요. 회사 생활을 경기도 부천에서 했었는데, 다들 너무 바빠서 삶에 여유가 없는 도시의 팍팍한 느낌이 저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곡성에 왔는데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도시와 너무 멀지도 않아서 도시 생활도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일과 삶의 균형은 잘 맞으시나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매여 있는 것들도 있긴 한데 생각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어요. 원하면 2~3일 정도는 쉬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요. 물론 작물은 제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절 불가능한 시기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농업도 자영업이라서 내가 쉬겠다고 정해놓은 기간에 쉴 수가 있어서 좋아요. 작물을 키울 때는 작물에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어떤 작물을 키울지도 제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이 제가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예요.
평소에 생활은 규칙적인가요?
그날그날 작업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데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어제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오고 흐린 날에는 오전 9시쯤에 나와서 가볍게 점검을 하고 오전 11시에 집에 돌아가기도 해요. 맑은 날, 특히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는 새벽 6시에 나와서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해요.
저녁에 산책을 하시던데 특별히 산책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하루 종일 일을 할 때 대화하는 사람 없이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사람과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농업이 몸을 움직이는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 앉아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활동량이 부족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녁에는 함께 살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합니다.
주변 농부들과 자주 교류하시나요?
아직은 곡성에 와서 친해진 농가보다 기존에 같이 학교를 다닌 지인들과 연락을 더 많이 해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창업을 한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 편이에요. 곡성에서는 같은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분들과 연락하기도 해요. 이렇게 친분이 있으면 같이 교육을 들으러 가기도 하고 농작물에 대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곡성은 과채류를 재배하는 청년 농부들이 많지는 않아서 조금 아쉬워요.
농업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농업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자본도 많이 필요하고요. 저는 군에서 임대해서 1년에 30~40만 원에 하우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땅 구매를 위해 2억 정도 대출했어요. 규모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하우스를 마련하기 위해서 몇 억씩 필요하기도 해요. 그래서 선뜻 권하기가 힘들어요. 저처럼 시설 농업이 아닌 벼농사나 토경 농업은 비교적 투자 비용이 덜 들어요. 적당한 규모로 시작해서 돈을 벌어가면서 점차 규모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현 씨의 딸기 하우스 안은 제법 쌀쌀해진 바깥과는 달리 따뜻했다. 영글고 있는 작은 딸기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자신이 키운 작물을 향한 청년 농부의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곡성의 한적하고 조용한 삶을 온전히 즐기며 하루를 알차게 꾸려가고 있는 이현 씨. 무럭무럭 자라는 딸기들처럼 매일 성장하고 있는 청년 농부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