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6. 23

서울을 떠나 곡성으로
유학 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농촌에서  배우고 있는 송이 씨

나무, 민조

 2025. 06. 23

서울을 떠나 곡성으로 유학 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농촌에서 배우고 있는 송이 씨

나무, 민조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송이 씨는 3년 전, 아이들과 함께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왔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달고 살던 아이와 씨름하던 송이 씨의 일상은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오고 나서부터 많이 달라졌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의 가방에서는 직접 기른 수박, 오이, 가지, 토마토가 나오고,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알고 지낸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학원에 가는 대신 집 근처 도서관 앞 냇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다슬기를 잡는다. 종종 들리는 여행지였던 곳에서 이제는 가족의 일상을 보내는 곳이 된 곡성에서 송이 씨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곡성에는 언제 왔나요?

2023년 8월에 왔어요. 서울에서 곡성에 온 지 3년 차에요. 첫째인 가람이는 5학년 때 와서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고, 둘째인 가온이는 1학년 때 와서 지금 3학년이에요. 처음에 왔을 때는 곡성 강빛마을에 살았고, 여기 석곡권역 농촌 유학 마을은 작년 12월 말에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서울과 곡성은 교육 환경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아이들은 서울에서 어떻게 지냈나요?

서울에서는 제가 일을 하느라 바빠서,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신경을 못 썼고 하교 후에 제가 퇴근하고 오기 전까지 비는 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했어요. 학원이랑 청소년 센터에 다녔는데 제가 6시 훨씬 넘어서 오니까 제가 오기 전에 애들은 이미 지쳐있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이 끝나면 근처에 사는 이모랑 할머니가 애들을 먼저 봐주셨어요. 저녁 밥을 먹으면 제가 데리고 오고. 그렇게 지냈었어요.


전에는 어떤 일을 했고, 곡성에 와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서울에서는 사무직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바쁜 시기에는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서는 탈핵 신문 사무국장을 1년 정도 하다가 지금은 인터뷰 기사 쓰는 일과 마을 활동가 인턴 과정, 청년 지원 활동가 멘토링 과정을 하고 있어요.


멘토링 과정을 하는 곳은 죽곡의 함께마을교육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곳이에요. 목요일에는 마을 빵집에서 같이 빵을 만들어서 팔고, 화요일에는 반찬 나눔이라고 혼자 계신 어르신들한테 반찬을 만들어서 배달하는 사업을 해요. 마을 학교 방과후수업도 하고, 조합에서 하는 일이 되게 많아요. 이번에 처음으로 시작한 성평등 사업도 담당해서 하고 있어요.

협동조합 농장에서 모종을 만들고 있는 송이 씨

협동조합에서 만든 반찬을 어르신께 배달하고 있는 송이 씨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 살다가 농촌 유학을 오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예뻐서요. (웃음) 설명을 더 하자면,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곡성에 사는 분을 알게 됐어요. 한번 놀러 오라고 하시길래 코로나 시기에 애들을 데리고 곡성 침실습지에 갔었거든요. 갔는데 너무 예쁘고, 세상에 이런 데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 뒤로는 심심할 때마다 곡성에 왔어요. 


그때 막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서울에서는 학교를 다 못 가고 있었어요. 큰 애는 전학을 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교를 1학기 내내 한 번도 못가다가 7월에 처음 간 거예요.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 마스크를 쓰고서요. 이렇게 학교를 다녀야 하나 싶었어요. 학교에 안 갈 때는 대부분은 화상 수업을 하고 EBS를 보는데 애들이 진짜 못 앉아 있어요. 집중하기도 힘들어하고요. 그런데 곡성에서는 다 학교를 간다는 거예요. 인구도 적고 감염도도 낮고 하니까. 그리고 거리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더라고요. 사람들이 하나로마트 갈 때 정도만 마스크를 쓰는 거예요. 너무 충격받아서 이럴 수도 있구나, 내려가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남편이 가자고 얘기해도 듣지도 않았는데, 농촌 유학을 가봐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첫째인 가람이를 계속 설득했는데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안 간다고 했었어요. 그러다 KBS에서 했던 <곡성 침공>이라는 농촌 유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드디어 승낙을 해줬어요. 보통 1학기에 농촌 유학을 오는데 마침 그때 저도 일을 그만뒀었고 타이밍이 맞아서 2학기에 왔어요. 남편은 서울에 있고 저희만 올 생각이었는데 남편도 그 해 가을 쯤에 내려왔어요.


곡성 생활은 잘 맞나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좋았어요. 조용하고 아름답고, 이렇게 한적한 게 좋기도 했어요. 차도 별로 없고 운전하기도 편하고, 버스 타는 것도 좋더라고요. 또 학교도 마음에 들었고요. 처음 학교를 갔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이 우주에 학교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약간 무서웠는데, 학교에 다녀온 가온이 가방에서 자꾸 뭐가 나오더라고요. 한 번은 이만한 수박을 갖고 온 거예요. 오이도 나오고, 가지도 나오고, 토마토도 나오고. 학교에서 텃밭 수업을 하거든요. 담임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학생들 모두와 선생님들이 다 아는 사이인 것도 좋았어요. 사람이 적다 보니까 한적하고,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고요. 


여기는 배스킨라빈스도 없고 그 외에도 없는 게 많은데 저는 하나도 안 불편해요. 어차피 안 사 먹고 배달 같은 것도 안 시키니까. 가게가 한 개씩만 있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죽곡면 소재지는 영화 세트장 같았어요. 여기는 약국도 한 개, 슈퍼도 한 개, 이발소, 파출소, 도서관 다 한 개씩만 있거든요. 지금도 좋긴 하지만, 요즘은 조금 무력감에 빠져 있어요. 또래가 없기도 하고, 전부터 관심 있던 환경 에너지 분야의 활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곡성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엔 막막하잖아요. 병원도 어디 가야 될지 모르고, 가스를 어디서 충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럴 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죽곡면은 마을 활동가들이 많고, 마을 프로그램도 많아서 거기 가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예상 못 했던 것 중 하나는 시골 생활은 여유롭고 한가로운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특히 젊은 사람이면 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바쁘게 지냈어요.


또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 김장을 같이 해도, 떡을 먹어도, 하나 더 주고 애들 좋아한다고 다 가져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동네에 아이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엄청 귀여움을 받아요. 이런 것도 상상 못 했던 일이에요. 서울에서랑 다르게 그냥 어린이라는 자체만으로 뭘 하지 않고 걸어가기만 해도 예뻐해 주시니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죠. 그런 분위기 덕분에 적응을 잘했던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라고, 외지에서 와서 여기서 살아보려고 한다고 격려를 많이 해주신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이삿짐 업체를 알아보는데 아무리 알아봐도 없는 거예요. 순천 같은 도시에서 와야 되는데 그건 비용도 엄청 비싸더라고요. 근데 동네에서 해 주셨어요. 트럭 3대로 동네 형님들이 가구랑 짐을 옮기고 또 여성분들이 오셔서 다 넣어주시고 정리해 주셨어요. 이런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이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없어서 그렇다, 너도 이제 그 사람들이 필요할 때 도우면 되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상과 달리 곡성 생활이 많이 바쁘다고 했는데, 어떤 일로 바쁘나요?

죽곡면 사람들은 다 바빠요. 오기 전에 자연 환경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주민 프로그램이 많다는 건 몰랐어요.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음악회를 한다고 오라고 하고, 남편이 하는 풍물패도 있고, 매주 화/목은 협동조합 활동이 있어요. 또 서울과 다르게 시골은 절기마다 행사가 있잖아요. 정월대보름이라고 달집 태우기도 하고, 모내기도 구경하러 갔다 오고 하다보면 생각보다 바빠요. 추수철에는 같이 모여 잔치도 하고, 함께 뭘 하는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주민자치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는 요가도 있고, 밴드 체조도 있고, 도자기, 목공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농촌 유학을 통해 송이 씨의 삶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요?

곡성에 와서 그런지, 이제 직장 출근을 안 해서 그런지, 살림을 많이 하게 된 게 좀 힘들어요. 그리고 애들이랑 있는 시간을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서울에서 애들을 돌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 돌봄 자체가 너무 버겁고, 애들을 어디에다 맡기든지 누가 봐주든지 어떻게든 해야 되는 일의 하나였어요. 지금은 애들이랑 산책도 하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낼 수 있어요. 애들이 이렇게 예쁜지도 처음 알았고요. 10년 넘게 키웠으면서도 여기 와서 애들이 더 많이 예뻐 보여요. 서울에서는 힘든 게 컸는데 여기 와서는 힘들긴 하지만 애들이 너무 예뻐 보이는 거. 그런 게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귀농·귀촌한 분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 보통 어떤 결심을 하고 내려오신 거잖아요. 저는 사실 그렇게 큰 고민을 하고 내려온 건 아니었는데 다들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되게 고민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저도 처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건지 생각하게 됐고, 아이들이랑 같이 지내는 것도 잘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못했었어요.


여기 와서 아이들이 한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가요?

가온이가 다슬기를 잡으러 한 번 냇가에 가면 안 나와요. 정말 깜깜해질 때까지 안 나오거든요. 전에는 그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는 줄도 몰랐고,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재밌어하는 아이인 줄도 몰랐어요. 체력이 좋은 가람이랑 달리 가온이는 자주 아프다고 하고, 힘들다고 하는 아이였는데 엄청 잘 노는 거예요. 그래서 ‘아 얘가 이렇게 놀 수도 있구나’라는 걸 새롭게 알았어요. 그럴 때 정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람이, 가온이는 서울에서 지낼 때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가람이 같은 경우에는 많이 밝아졌어요. 원래 성격이 수줍음도 많고 내성적인데 훨씬 활발해졌어요. 가끔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놀기도 하는데 거기 노래방 기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가람이가 거기서 노래를 하는 거예요.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정말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절도 할 수 있겠다, 곡성에 뼈를 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가람이가 정말 밝아졌고 잘 적응했어요. 자연환경이 예쁜 것도 마음에 든다고 하고요.


둘째인 가온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학교도 잘 다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학하니 선생님도 엄하고, 어린이집과 다르니까 서울에서는 매일 울면서 학교를 갔어요. 저는 출근을 해야 되는데 애는 안 가고 울지, 다녀와서 저녁 먹을 때부터 내일 학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던 애가 곡성에 오고 나서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학교도 잘 가고 있고, 선생님 생일파티도 해드리더라고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둘째 가온이

저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곡성에 계속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하죠. 학생 수가 너무 적으니까 수업하는 데 한계가 있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축구는 사람이 적어서 못한다거나. 그런데 장점도 있어요. 일단 아이들이 서로를 잘 아니까 오히려 개성대로 살 수 있고, 서로 다른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쟤는 원래 저런 아이라는 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쭉 같이 보니까 다른 게 인정이 되는 것 같아요.


전에 한 번 가람이한테 물어봤거든요. 서울 다시 안 가고 싶냐고. 그랬더니 안 가고 싶대요. 왜 안 가고 싶냐 했더니 학원 다니기 싫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지금 같은 이 기후 위기 시대에 정말 축복이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해요.

잘 살아남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드는 채용 공고를 보면 항상 근무지가 서울인 거예요. ‘근무지 곡성’으로 한 번 채용 공고를 내보는 게 꿈이에요. 저희는 처음에 1년 농촌 유학을 생각했는데, 와보니까 좋아서 5년으로 신청을 했어요. 5년이 지나면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갈 시점인데 서울로 다시 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지내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여기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할 수 없기는 해요. 서울에 가도 별달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마지막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농촌 유학을 추천하고 싶나요?

네, 추천하고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지 않더라도 1년 정도 휴식이 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좀 다른 이유로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으니까 지역에 사는 게 어떤건지 정말 몰랐거든요. 누구든지 지역에서 살아보고 느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서울이 전부인 줄 알았죠. 사실 내려오기 전까지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여기서 정말 많은 걸 알게 되어서, 농사짓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지역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지방 소멸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 말 교환학생을 가는 대신 곡성에 살기로 했을 때 친구들에게 농촌으로 유학을 왔다고 농담을 하던 게 생각난다. 곡성에서 학교를 다니진 않지만 지역살이에 대해, 마을 공동체에 대해, 농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분주했던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곡성으로 떠나온 송이 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부모도 알지 못했던 지역의 삶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송이 씨네 가족은 농촌 유학을 통해 자신만의 중심을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오고 싶다면?


모집 대상

전남 지역을 제외한 전국 초등학생


유학 운영 학교

죽곡초, 오산초, 삼기초


신청 방법

학기 시작 전 신청 기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신청서 제출(서울지역 학생은 재학 중인 학교로 제출)


문의처

061-260-0285

061-260-0283


👉 농촌 유학 가족의 이야기를 더 만나보세요!

아이를 위해 농촌 유학을 택한 새미 씨 이야기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송이 씨는 3년 전, 아이들과 함께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왔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달고 살던 아이와 씨름하던 송이 씨의 일상은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오고 나서부터 많이 달라졌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의 가방에서는 직접 기른 수박, 오이, 가지, 토마토가 나오고,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알고 지낸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학원에 가는 대신 집 근처 도서관 앞 냇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다슬기를 잡는다. 종종 들리는 여행지였던 곳에서 이제는 가족의 일상을 보내는 곳이 된 곡성에서 송이 씨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곡성에는 언제 왔나요?

2023년 8월에 왔어요. 서울에서 곡성에 온 지 3년 차에요. 첫째인 가람이는 5학년 때 와서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고, 둘째인 가온이는 1학년 때 와서 지금 3학년이에요. 처음에 왔을 때는 곡성 강빛마을에 살았고, 여기 석곡권역 농촌 유학 마을은 작년 12월 말에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서울과 곡성은 교육 환경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아이들은 서울에서 어떻게 지냈나요?

서울에서는 제가 일을 하느라 바빠서,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신경을 못 썼고 하교 후에 제가 퇴근하고 오기 전까지 비는 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했어요. 학원이랑 청소년 센터에 다녔는데 제가 6시 훨씬 넘어서 오니까 제가 오기 전에 애들은 이미 지쳐있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이 끝나면 근처에 사는 이모랑 할머니가 애들을 먼저 봐주셨어요. 저녁 밥을 먹으면 제가 데리고 오고. 그렇게 지냈었어요.


전에는 어떤 일을 했고, 곡성에 와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서울에서는 사무직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바쁜 시기에는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서는 탈핵 신문 사무국장을 1년 정도 하다가 지금은 인터뷰 기사 쓰는 일과 마을 활동가 인턴 과정, 청년 지원 활동가 멘토링 과정을 하고 있어요.


멘토링 과정을 하는 곳은 죽곡의 함께마을교육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곳이에요. 목요일에는 마을 빵집에서 같이 빵을 만들어서 팔고, 화요일에는 반찬 나눔이라고 혼자 계신 어르신들한테 반찬을 만들어서 배달하는 사업을 해요. 마을 학교 방과후수업도 하고, 조합에서 하는 일이 되게 많아요. 이번에 처음으로 시작한 성평등 사업도 담당해서 하고 있어요.

협동조합 농장에서 모종을 만들고 있는 송이 씨
협동조합 농장에서 모종을 만들고 있는 송이 씨
협동조합에서 만든 반찬을 어르신께 배달하고 있는 송이 씨
협동조합에서 만든 반찬을 어르신께 배달하고 있는 송이 씨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 살다가 농촌 유학을 오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예뻐서요. (웃음) 설명을 더 하자면,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곡성에 사는 분을 알게 됐어요. 한번 놀러 오라고 하시길래 코로나 시기에 애들을 데리고 곡성 침실습지에 갔었거든요. 갔는데 너무 예쁘고, 세상에 이런 데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 뒤로는 심심할 때마다 곡성에 왔어요. 


근데 그때 막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서울에서는 학교를 다 못 가고 있었어요. 큰 애는 전학을 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교를 1학기 내내 한 번도 못가다가 7월에 처음 간 거예요.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 마스크를 쓰고서요. 이렇게 학교를 다녀야 하나 싶었어요. 학교에 안 갈 때는 대부분은 화상 수업을 하고 EBS를 보는데 애들이 진짜 못 앉아 있어요. 집중하기도 힘들어하고요. 그런데 곡성에서는 다 학교를 간다는 거예요. 인구도 적고 감염도도 낮고 하니까. 그리고 거리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더라고요. 사람들이 하나로마트 갈 때 정도만 마스크를 쓰는 거예요. 너무 충격받아서 이럴 수도 있구나, 내려가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남편이 가자고 얘기해도 듣지도 않았는데, 농촌 유학을 가봐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첫째인 가람이를 계속 설득했는데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안 간다고 했었어요. 그러다 KBS에서 했던 <곡성 침공>이라는 농촌 유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드디어 승낙을 해줬어요. 보통 1학기에 농촌 유학을 오는데 마침 그때 저도 일을 그만뒀었고 타이밍이 맞아서 2학기에 왔어요. 남편은 서울에 있고 저희만 올 생각이었는데 남편도 그 해 가을 쯤에 내려왔어요.


곡성 생활은 잘 맞나요?

처음엔 모든 게 정말 좋았어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 한적함까지 마음에 쏙 들었죠. 차도 별로 없어 운전하기 편했고, 버스 타는 것도 좋았어요. 학교도 마음에 들었고요.


처음 학교에 갔을 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우주에 학교만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 살짝 무서웠는데, 학교 다녀온 가온이 가방에서 자꾸 신기한 게 나오는 거예요. 한번은 이만한 수박을 가져오지 않나, 오이, 가지, 토마토까지! 학교에서 텃밭 수업을 하는데, 거기서 가져온 거더라고요. 담임 선생님이 아니어도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서로를 다 아는 분위기도 참 좋았어요. 사람이 적다 보니 한적하면서도 다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죠. 


여기는 배스킨라빈스도 없고 그 외에도 없는 게 많은데 저는 하나도 안 불편해요. 어차피 안 사 먹고 배달 같은 것도 안 시키니까. 가게가 한 개씩만 있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죽곡면 소재지는 영화 세트장 같았어요. 여기는 약국도 한 개, 슈퍼도 한 개, 이발소, 파출소, 도서관 다 한 개씩만 있거든요. 지금도 좋긴 하지만, 요즘은 조금 무력감에 빠져 있어요. 또래가 없기도 하고, 전부터 관심 있던 환경 에너지 분야의 활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곡성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엔 막막하잖아요. 병원도 어디 가야 될지 모르고, 가스를 어디서 충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럴 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죽곡면은 마을 활동가들이 많고, 마을 프로그램도 많아서 거기 가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예상 못 했던 것 중 하나는 시골 생활은 여유롭고 한가로운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특히 젊은 사람이면 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바쁘게 지냈어요.


또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 김장을 같이 해도, 떡을 먹어도, 하나 더 주고 애들 좋아한다고 다 가져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동네에 아이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엄청 귀여움을 받아요. 이런 것도 상상 못 했던 일이에요. 서울에서랑 다르게 그냥 어린이라는 자체만으로, 뭘 하지 않고 걸어가기만 해도 예뻐해 주시니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죠. 그런 분위기 덕분에 적응을 잘했던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라고, 외지에서 와서 여기서 살아보려고 한다고 격려를 많이 해주신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이삿짐 업체를 알아보는데 아무리 알아봐도 없는 거예요. 순천 같은 도시에서 와야 되는데 그건 비용도 엄청 비싸더라고요. 근데 동네에서 해 주셨어요. 트럭 3대로 동네 형님들이 가구랑 짐을 옮기고 또 여성분들이 오셔서 다 넣어주시고 정리해 주셨어요. 이런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이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없어서 그렇다, 너도 이제 그 사람들이 필요할 때 도우면 되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상과 달리 곡성 생활이 많이 바쁘다고 했는데, 어떤 일로 바쁘나요?

죽곡면 사람들은 다 바빠요. 오기 전에 자연 환경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주민 프로그램이 많다는 건 몰랐어요.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음악회를 한다고 오라고 하고, 남편이 하는 풍물패도 있고, 매주 화/목은 협동조합 활동이 있어요. 또 서울과 다르게 시골은 절기마다 행사가 있잖아요. 정월대보름이라고 달집 태우기도 하고, 모내기도 구경하러 갔다 오고 하다보면 생각보다 바빠요. 추수철에는 같이 모여 잔치도 하고, 함께 뭘 하는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주민자치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는 요가도 있고, 밴드 체조도 있고, 도자기, 목공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농촌 유학을 통해 송이 씨의 삶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요?

곡성에 와서 그런지, 이제 직장 출근을 안 해서 그런지, 살림을 많이 하게 된 게 좀 힘들어요. 그리고 애들이랑 있는 시간을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서울에서 애들을 돌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 돌봄 자체가 너무 버겁고, 애들을 어디에다 맡기든지 누가 봐주든지 어떻게든 해야 되는 일의 하나였어요. 지금은 애들이랑 산책도 하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낼 수 있어요. 애들이 이렇게 예쁜지도 처음 알았고요. 10년 넘게 키웠으면서도 여기 와서 애들이 더 많이 예뻐 보여요. 서울에서는 힘든 게 컸는데 여기 와서는 힘들긴 하지만 애들이 너무 예뻐 보이는 거. 그런 게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귀농·귀촌한 분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 보통 어떤 결심을 하고 내려오신 거잖아요. 저는 사실 그렇게 큰 고민을 하고 내려온 건 아니었는데 다들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되게 고민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저도 처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건지 생각하게 됐고, 아이들이랑 같이 지내는 것도 잘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못했었어요.


여기 와서 아이들이 한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가요?

가온이가 다슬기를 잡으러 한 번 냇가에 가면 안 나와요. 정말 깜깜해질 때까지 안 나오거든요. 전에는 그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는 줄도 몰랐고,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재밌어하는 아이인 줄도 몰랐어요. 체력이 좋은 가람이랑 달리 가온이는 자주 아프다고 하고, 힘들다고 하는 아이였는데 엄청 잘 노는 거예요. 그래서 ‘아 얘가 이렇게 놀 수도 있구나’라는 걸 새롭게 알았어요. 그럴 때 정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람이, 가온이는 서울에서 지낼 때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가람이 같은 경우에는 많이 밝아졌어요. 원래 성격이 수줍음도 많고 내성적인데 훨씬 활발해졌어요. 가끔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놀기도 하는데 거기 노래방 기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가람이가 거기서 노래를 하는 거예요.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정말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절도 할 수 있겠다, 곡성에 뼈를 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가람이가 정말 밝아졌고 잘 적응했어요. 자연환경이 예쁜 것도 마음에 든다고 하고요.

둘째인 가온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학교도 잘 다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학하니 선생님도 엄하고, 어린이집과 다르니까 서울에서는 매일 울면서 학교를 갔어요. 저는 출근을 해야 되는데 애는 안 가고 울지, 다녀와서 저녁 먹을 때부터 내일 학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던 애가 곡성에 오고 나서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학교도 잘 가고 있고, 선생님 생일파티도 해드리더라고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둘째 가온이
집 근처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둘째 가온이

저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곡성에 계속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하죠. 학생 수가 너무 적으니까 수업하는 데 한계가 있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축구는 사람이 적어서 못한다거나. 그런데 장점도 있어요. 일단 아이들이 서로를 잘 아니까 오히려 개성대로 살 수 있고, 서로 다른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쟤는 원래 저런 아이라는 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쭉 같이 보니까 다른 게 인정이 되는 것 같아요.


전에 한 번 가람이한테 물어봤거든요. 서울 다시 안 가고 싶냐고. 그랬더니 안 가고 싶대요. 왜 안 가고 싶냐 했더니 학원 다니기 싫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지금 같은 이 기후 위기 시대에 정말 축복이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해요. 

잘 살아남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드는 채용 공고를 보면 항상 근무지가 서울인 거예요. ‘근무지 곡성’으로 한번 채용 공고를 내보는 게 꿈이에요. 저희는 처음에 1년 농촌 유학을 생각했는데, 와보니까 좋아서 5년으로 신청을 했어요. 5년이 지나면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갈 시점인데 서울로 다시 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지내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여기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할 수 없기는 해요. 서울에 가도 별달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마지막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농촌 유학을 추천하고 싶나요?

네, 추천하고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지 않더라도 1년 정도 휴식이 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좀 다른 이유로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으니까 지역에 사는 게 어떤건지 정말 몰랐거든요. 누구든지 지역에서 살아보고 느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서울이 전부인 줄 알았죠. 사실 내려오기 전까지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여기서 정말 많은 걸 알게 되어서, 농사짓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지역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지방 소멸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 말 교환학생을 가는 대신 곡성에 살기로 했을 때 친구들에게 농촌으로 유학을 왔다고 농담을 하던 게 생각난다. 곡성에서 학교를 다니진 않지만 지역 살이에 대해, 마을 공동체에 대해, 농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분주했던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곡성으로 떠나온 송이 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부모도 알지 못했던 지역의 삶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송이 씨네 가족은 농촌 유학을 통해 자신만의 중심을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곡성으로 농촌 유학을 오고 싶다면?

모집 대상

전남 지역을 제외한 전국 초등학생

유학 운영 학교

죽곡초, 오산초, 삼기초

신청 방법

학기 시작 전 신청 기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신청서 제출(서울지역 학생은 재학 중인 학교로 제출)

문의처

061-260-0285 / 061-260-0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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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협동조합이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