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24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곡성에 왔어요!

어쩌다보니 곡성에 정착한 에디터

‘나무’를 소개합니다

나무, 민조

 2025. 03. 24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곡성에 왔어요!

어쩌다보니 곡성에 정착한 에디터 ‘나무’를 소개합니다

나무, 민조

안녕하세요! 농담의 새로운 에디터 나무입니다. 올 한해 곡성 곳곳을 누비고 사람들을 만나며 곡성살이의 다양한 면을 보여드릴거에요.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죠?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조금은 대책없이 곡성으로 내려온 에디터 나무에 대해 셀프 인터뷰를 통해 보여드리려고 해요👏


자기소개 해주세요!

곡성살이 5개월 차, 농담의 에디터 나무입니다!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서 수원에서 자랐고, 서울에도 2년 정도 살았었어요. 지금은 짝꿍과 함께 곡성에 집을 구해서 살고 있어요. 작년까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휴학을 했으니 여행을 가자!' 하고 전라도에 여행을 왔다가 짝꿍도 만나고, 어쩌다보니 흘러 흘러 곡성까지 왔네요. 이럴 계획은 없었는데 곡성에 집도 생겼고 이렇게 농담 에디터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곡성을 알게 되었나요?

2020년 1월에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려고 했었어요. 혼자서 가는 첫 여행이라 들떠있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더라고요. 제가 가려던 말레이시아도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해서 결국 취소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대신 친구가 소개해준 공유공간이 있는 순천으로 여행을 갔어요. 순천 구도심에 ‘공유공간 너머’라는 곳이 있는데, 친구의 전 직장동료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을 나누고 싶어서 만든 곳이에요. 밥도 같이 해 먹을 수 있고, 모임 공간은 물론 숙소로도 쓸 수 있어요. 수원의 행궁동에 젠트리피케이션*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고 그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커먼즈**공동체 내에서의 공유자산, 공통-부, 공통재, 공유재, 공유 활동 자체 등, 공유공간에도 관심이 생겨서 조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요, 글로만 접하던 공유공간이 실제로도 잘 운영되고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장기 거주자이자 스태프인 분과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분이 곡성에도 비슷한 공유공간이 있다면서 ‘대유공간 이화서원’을 소개해줘서 처음으로 곡성에 오게 됐어요.


그렇게 이화서원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참여하고, 주역 강의도 들었어요. 그 때의 경험이 좋아서 여름방학 때 다시 곡성으로 돌아와 일주일 간 여행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대학을 졸업하면 수도권이 아니라 전라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디터 나무
에디터 나무

원래 계획과 다르게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곡성에서 지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년 여름방학 때 프랑스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토플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휴학을 결심했어요. 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많이 지치기도 했었고, 내가 뭘하고 싶은지 모르면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그래서 휴학하고 쉬면서 어떻게 살지 더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작년 9월에 전라도에서 짝꿍을 만나고, 짝꿍이 있는 곡성과 본가가 있는 수원을 오가며 지냈어요. 원래 6개월만 휴학하고 올해는 복학해서 교환학생도 가고 졸업을 최대한 빨리할 생각이었는데요, 복학을 미루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이러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다보니 곡성에 도착했네요:)


다른 곳이 아니라 곡성이었던 이유는? 곡성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곡성천 산책길이에요. 곡성역에서 쭉 걸어서 읍내에 있는 이화서원까지 걸어오는 길이 고즈넉해서 좋았어요. 이전 여행지였던 순천은 수원과 꽤 비슷해서 친숙했는데, 곡성은 낯설지만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읍내에 있는 아파트인데 바로 옆에 논밭이 있다는 것도 재밌었어요. 여백이 있는 공간들,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화서원
이화서원

이화서원은 어떤 곳인가요?

이화서원은 인문학 공동체에요. 6년 전 인문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동아시아 고전을 공부하는 공유공간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구성원도 늘고, 그만큼 다루는 분야도 더 확장되어서 어린이 캠프, 농사, 타로, 애니어그램, 드로잉 수업 등 다양한 강의가 열려요. 강의 공간인 동시에 서점이기도 하고, 숙소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읍내에 있는 고운아파트 1층, 2층에 두 공간을 쓰고 있는데 이화서원 카페에 숙소 신청만 하면 단기 혹은 장기로 머물 수 있어요. 저랑 짝꿍은 작년 9월부터 이화서원 2층에서 거의 3달 간 머물렀어요. 2020년에 짝꿍을 처음 알게 된 곳도 이화서원이에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공유공간이다보니 조금 신경쓸 것들이 있긴 했지만, 집을 구하기 전에 이화서원에서 지낼 수 있어서 곡성에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었어요.


곡성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곡성에 살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집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어렵기도 했어요. 익숙한 방식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집이 나오는 게 거의 없어서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어요. 이화서원 사람들, 짝꿍이 활동하는 영상동아리, 친한 낭만가옥 카페 사장님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집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다녔죠. 그랬더니 여기저기 연락이 왔어요.


근데 처음 봤던 두 곳은 조건이 안 맞아서 근처 모텔이나 펜션에 장기투숙을 할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러던 차에 카페 사장님이 집이 나왔다며 같은 동네 사는 이웃을 소개시켜주시고, 그 분이 비어있는 옆집을 소개해주셨어요. 가봤더니 읍내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서울에 사는 집주인이 별장으로 쓰려고 리모델링도 해서 깨끗한데다가 시골집에 흔치않게 풀옵션인 것까지 저희 상황에 딱 맞더라고요. 집을 보러갔던 그 날 바로 계약하자고 했어요. 그 뒤로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집을 고칠 때에도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나무네 곡성집
나무네 곡성집

곡성 읍내와 지금 지내는 곳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건 사람 수랑 교통수단, 자연환경이에요. 지금 지내는 마을에 100명도 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제가 지내는 동네는 실제로 사는 사람은 10명도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이사 온지 얼마 안됐어도 동네 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요.


읍내에서 지낼 때는 읍내 안에 필요한 게 다 있으니까 주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운전 면허가 있으면 좋겠다 싶긴 했는데 미루고 있다가 이사하고서 바로 근처 학원에 등록했어요. 친구가 안 타는 오토바이도 한 대 구했고요. 짝꿍한테 차가 있긴 한데 면허만 있지 아직 차를 몰 자신은 없어서 혼자 다닐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요. 걸을 일이 동네 산책할 때 밖에 없어서 운동량이 오히려 줄어든 것 같네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도 없고, 슈퍼도 없고, 식당도 없어요. 조금은 불편하지만 좋은 점이기도 해요. 편의점에서 술을 사오거나 간식을 사먹는 일이 확 줄었어요.


대나무가 많은 것도 좋아요. 종종 집에 있다가 잠깐 바람 쐬러 마당에 나가면,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춤추는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요.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어도 왠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더라고요. 근데 마을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너무 많이 번져서 약간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해요. 대나무든 뭐든 명과 암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에게 잘 맞는 환경을 선택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곡성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처음 곡성에 내려왔을 때에는 친구도 별로 없고 놀 데도 없어서 심심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자주 만나는 친구가 수원에 살 때보다 많이 생겼어요. 주변 사람들과 모임도 만들고, 장터도 나가고 있어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게 단점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큰 노력 없이도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 좋아요.


매주 수요일에는 이화서원에서 하는 수요밥상에 가는데요, 거기에 자주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화요섬진강이라는 글쓰기 모임도 만들었어요. 연말에 밥을 먹다가 내년에 뭘 하고 싶은지 돌아가며 얘기하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즉석에서 만들어졌답니다. 글쓰기 모임 이름은 ‘광주에 한강 작가가 있다면 곡성에는 섬진강이 있다!’는 의미에요.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같이 밴드를 할 친구들도 모아뒀어요.

화요섬진강 사람들
화요섬진강 사람들

장터에서는 원래 짝꿍이랑 같이 커피나 간단한 음식을 팔려고 했는데, 지금은 ‘나무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집에 잔뜩 쌓여있는 중고책들을 팔고 있어요. 테마를 잡아서 ‘도시’에 대한 코너, ‘만화책+철학서’ 세트도 만들어보고, 손님들에게 추천도 해드리면서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 제 책도 내고, 작은 책방도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올 줄 알았던 곡성에 일찍 왔는데,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에야 할 줄 알았던 책방도 시작하게 되어서 신기해요.


곡성 호미장에서는 짝꿍이 핸드드립 커피를 팔 때 타로카드를 혼자 가지고 놀려고 들고 나갔다가, 자율기부로 타로를 보고 카드를 해석해드리기도 했어요. 몇 시간 내내 이렇게 해도 되나, 하면서 진땀 흘리다가 지금은 아무래도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서 잠시 쉬는 중이에요. 단기 알바도 했었고, 장터 포스터 디자인이랑 뜨개질도 하고… 게으르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걸 하고 다녔네요!

나무책방
나무책방

수원에서 25년, 서울에서 2년 정도 살았던, 도시 생활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곡성 생활은 어떤가요?

'곡성에 살게 되면 이런 게 전과 다를 거고,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하고..'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열심히 했었어요. '다르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느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지내려하고 있어요. 인프라 차이가 크지만 처음부터 각오했던 만큼 적응이 어렵진 않았어요.


일상을 곡성에서 보내면서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건 인간관계에요. 수원이나 서울에서 살 때에는 이웃들이랑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서로 못본 척 하는 게 기본이고 인사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친구는 직장이나 학교, 모임에서 사귀었고요. 곡성 읍내에서 지낼 때에도 이화서원 식구들이랑은 가깝게 지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전이랑 비슷했는데, 읍내에서 지내다 면으로 이사오니 특히 이웃 관계가 많이 달라졌어요.


처음 이사왔을 때에는 집을 소개해주신 분이 도보 1분 거리에 사셔서 그 분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집에 쌀이나 야채는 있는지 물어보시더니 농사지은 건데 남았다고 하면서 무랑 배추, 당근을 합쳐서 한 5박스는 주셨던 것 같아요. 된장도 주시고, 찹쌀도 주시고. 덕분에 겨울에 겉절이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무나물도 해서 같이 나눠먹었어요. 윗집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갈 때는 카페 사장님이 주신 대봉을 들고 갔는데, 안 계셔서 강아지들이랑만 인사하고 두고 왔어요. 그러고서 다시 짝꿍이랑 인사하러 갔더니 김치가 너무 많다며 묵은지 한 통을 주시더라고요. 저희 집 맞은편 집에는 귀농하신 부부도 살고 계신데, 집에 찾아오셔서 같이 연말모임 하자고 초대도 해주셨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강아지 산책시키고 계실 때 마주쳐서 잠깐 인사 나눈 게 다였는데. 예상도 못한 일이라 많이 신기했어요. 다른 이웃 분들과는 윗동네 반상회랑 연초 마을총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반겨주시면서 마을회관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셨는데 아직은 낯을 좀 가리고 있답니다. 이웃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게 처음이다보니 조금은 낯설어요.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먼저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체력이 안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더라고요. 이웃이 소개해준 태극권 모임도 가고, 산책이랑 스트레칭도 자주 하려고 해요. 농사는 해보고 싶지만 본격적으로 농사를 하기엔 아는 게 없어서 작게 텃밭 정도만 하려고 해요. 같은 동네에 안 쓰는 밭을 무료로 빌려주신다는 분까지 있었는데요, 아쉽지만 일단 올해는 친구 농사일을 도우면서 조금씩 배워보려고요.


장터도 계속 나갈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곡성 읍내에서 했던 호미장, 낭만가옥 연말 바자회, 광주의 지구농장터 이렇게 3군데에 갔었어요. 올해는 구례 살레장에도 나가보고, 책 이외에 먹거리도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어느 장터에서 저를 보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6개월 전만해도 곡성에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흘러가듯 살다보면 그때도 생각지도 못한 선물같은 일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대체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지내지만 가끔은 ‘대학은 또 어쩌나’, ‘이대로 괜찮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에디터 일을 하게 된 것도 곡성과 더 친해지고, 여러분과도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기대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농담의 새로운 에디터 나무입니다. 올 한해 곡성 곳곳을 누비고 사람들을 만나며 곡성살이의 다양한 면을 보여드릴거에요.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죠?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조금은 대책없이 곡성으로 내려온 에디터 나무에 대해 셀프 인터뷰를 통해 보여드리려고 해요👏 


# 곡성에 오기까지 


자기소개 해주세요!

곡성살이 5개월 차, 농담의 에디터 나무입니다!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서 수원에서 자랐고, 서울에도 2년 정도 살았었어요. 지금은 짝꿍과 함께 곡성에 집을 구해서 살고 있어요. 작년까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휴학을 했으니 여행을 가자!' 하고 전라도에 여행을 왔다가 짝꿍도 만나고, 어쩌다보니 흘러 흘러 곡성까지 왔네요. 이럴 계획은 없었는데 곡성에 집도 생겼고 이렇게 농담 에디터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곡성을 알게 되었나요?

2020년 1월에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려고 했었어요. 혼자서 가는 첫 여행이라 들떠있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더라고요. 제가 가려던 말레이시아도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해서 결국 취소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대신 친구가 소개해준 공유공간이 있는 순천으로 여행을 갔어요. 순천 구도심에 ‘공유공간 너머’라는 곳이 있는데, 친구의 전 직장동료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을 나누고 싶어서 만든 곳이에요. 밥도 같이 해 먹을 수 있고, 모임 공간은 물론 숙소로도 쓸 수 있어요. 수원의 행궁동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걸 보고 그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커먼즈**, 공유공간에도 관심이 생겨서 조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요, 글로만 접하던 공유공간이 실제로도 잘 운영되고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장기 거주자이자 스태프인 분과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분이 곡성에도 비슷한 공유공간이 있다면서 ‘대유공간 이화서원’을 소개해줘서 처음으로 곡성에 오게 됐어요.


그렇게 이화서원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참여하고, 주역 강의도 들었어요. 그 때의 경험이 좋아서 여름방학 때 다시 곡성으로 돌아와 일주일 간 여행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대학을 졸업하면 수도권이 아니라 전라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젠트리피케이션 :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커먼즈 : 공동체 내에서의 공유자산, 공통-부, 공통재, 공유재, 공유 활동 자체 등

에디터 나무
에디터 나무

원래 계획과 다르게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곡성에서 지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년 여름방학 때 프랑스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토플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휴학을 결심했어요. 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많이 지치기도 했었고, 내가 뭘하고 싶은지 모르면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그래서 휴학하고 쉬면서 어떻게 살지 더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작년 9월에 전라도에서 짝꿍을 만나고, 짝꿍이 있는 곡성과 본가가 있는 수원을 오가며 지냈어요. 원래 6개월만 휴학하고 올해는 복학해서 교환학생도 가고 졸업을 최대한 빨리할 생각이었는데요, 복학을 미루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이러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다보니 곡성에 도착했네요:)


다른 곳이 아니라 곡성이었던 이유는? 곡성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곡성천 산책길이에요. 곡성역에서 쭉 걸어서 읍내에 있는 이화서원까지 걸어오는 길이 고즈넉해서 좋았어요. 이전 여행지였던 순천은 수원과 꽤 비슷해서 친숙했는데, 곡성은 낯설지만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읍내에 있는 아파트인데 바로 옆에 논밭이 있다는 것도 재밌었어요. 여백이 있는 공간들,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화서원
이화서원

# 곡성에서 살아가기 


이화서원은 어떤 곳인가요?

이화서원은 인문학 공동체에요. 6년 전 인문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동아시아 고전을 공부하는 공유공간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구성원도 늘고, 그만큼 다루는 분야도 더 확장되어서 어린이 캠프, 농사, 타로, 애니어그램, 드로잉 수업 등 다양한 강의가 열려요. 강의 공간인 동시에 서점이기도 하고, 숙소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읍내에 있는 고운아파트 1층, 2층에 두 공간을 쓰고 있는데 이화서원 카페에 숙소 신청만 하면 단기 혹은 장기로 머물 수 있어요. 저랑 짝꿍은 작년 9월부터 이화서원 2층에서 거의 3달 간 머물렀어요. 2020년에 짝꿍을 처음 알게 된 곳도 이화서원이에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공유공간이다보니 조금 신경쓸 것들이 있긴 했지만, 집을 구하기 전에 이화서원에서 지낼 수 있어서 곡성에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었어요.


곡성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곡성에 살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집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어렵기도 했어요. 익숙한 방식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집이 나오는 게 거의 없어서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어요. 이화서원 사람들, 짝꿍이 활동하는 영상동아리, 친한 낭만가옥 카페 사장님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집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다녔죠.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어요.


근데 처음 봤던 두 곳은 조건이 안 맞아서 근처 모텔이나 펜션에 장기투숙을 할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러던 차에 카페 사장님이 집이 나왔다며 같은 동네 사는 이웃을 소개시켜주시고, 그 분이 비어있는 옆집을 소개해주셨어요. 가봤더니 읍내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서울에 사는 집주인이 별장으로 쓰려고 리모델링도 해서 깨끗한데다가 시골집에 흔치않게 풀옵션인 것까지 저희 상황에 딱 맞더라고요. 집을 보러갔던 그 날 바로 계약하자고 했어요. 그 뒤로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집을 고칠 때에도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나무네 곡성집
나무네 곡성집

곡성 읍내와 지금 지내는 곳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건 사람 수랑 교통수단, 자연환경이에요. 지금 지내는 마을에 100명도 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제가 지내는 동네는 실제로 사는 사람은 10명도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이사 온지 얼마 안됐어도 동네 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요.


읍내에서 지낼 때는 읍내 안에 필요한 게 다 있으니까 주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운전 면허가 있으면 좋겠다 싶긴 했는데 미루고 있다가 이사하고서 바로 근처 학원에 등록했어요. 친구가 안 타는 오토바이도 한 대 구했고요. 짝꿍한테 차가 있긴 한데 면허만 있지 아직 차를 몰 자신은 없어서 혼자 다닐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요. 걸을 일이 동네 산책할 때 밖에 없어서 운동량이 오히려 줄어든 것 같네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도 없고, 슈퍼도 없고, 식당도 없어요. 조금은 불편하지만 좋은 점이기도 해요. 편의점에서 술을 사오거나 간식을 사먹는 일이 확 줄었어요.

 

대나무가 많은 것도 좋아요. 종종 집에 있다가 잠깐 바람 쐬러 마당에 나가면,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춤추는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요.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어도 왠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더라고요. 근데 마을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너무 많이 번져서 약간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고 해요. 대나무든 뭐든 명과 암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에게 잘 맞는 환경을 선택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곡성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처음 곡성에 내려왔을 때에는 친구도 별로 없고 놀 데도 없어서 심심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자주 만나는 친구가 수원에 살 때보다 많이 생겼어요. 주변 사람들과 모임도 만들고, 장터도 나가고 있어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게 단점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큰 노력 없이도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 좋아요.


매주 수요일에는 이화서원에서 하는 수요밥상에 가는데요, 거기에 자주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화요섬진강이라는 글쓰기 모임도 만들었어요. 연말에 밥을 먹다가 내년에 뭘 하고 싶은지 돌아가며 얘기하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즉석에서 만들어졌답니다. 글쓰기 모임 이름은 ‘광주에 한강 작가가 있다면 곡성에는 섬진강이 있다!’는 의미에요.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같이 밴드를 할 친구들도 모아뒀어요.

화요섬진강 사람들
화요섬진강 사람들

장터에서는 원래 짝꿍이랑 같이 커피나 간단한 음식을 팔려고 했는데, 지금은 ‘나무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집에 잔뜩 쌓여있는 중고책들을 팔고 있어요. 테마를 잡아서 ‘도시’에 대한 코너, ‘만화책+철학서’ 세트도 만들어보고, 손님들에게 추천도 해드리면서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 제 책도 내고, 작은 책방도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올 줄 알았던 곡성에 일찍 왔는데,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에야 할 줄 알았던 책방도 시작하게 되어서 신기해요.


곡성 호미장에서는 짝꿍이 핸드드립 커피를 팔 때 타로카드를 혼자 가지고 놀려고 들고 나갔다가, 자율기부로 타로를 보고 카드를 해석해드리기도 했어요. 몇 시간 내내 이렇게 해도 되나, 하면서 진땀 흘리다가 지금은 아무래도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서 잠시 쉬는 중이에요. 단기 알바도 했었고, 장터 포스터 디자인이랑 뜨개질도 하고… 게으르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걸 하고 다녔네요!

# 아직 곡성과 친해지는 중 


수원에서 25년, 서울에서 2년 정도 살았던, 도시 생활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곡성 생활은 어떤가요?

'곡성에 살게 되면 이런 게 전과 다를 거고,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하고..'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열심히 했었어요. '다르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느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지내려하고 있어요. 인프라 차이가 크지만 처음부터 각오했던 만큼 적응이 어렵진 않았어요.


일상을 곡성에서 보내면서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건 인간관계에요. 수원이나 서울에서 살 때에는 이웃들이랑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서로 못본 척 하는 게 기본이고 인사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친구는 직장이나 학교, 모임에서 사귀었고요. 곡성 읍내에서 지낼 때에도 이화서원 식구들이랑은 가깝게 지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전이랑 비슷했는데, 읍내에서 지내다 면으로 이사오니 특히 이웃 관계가 많이 달라졌어요.


처음 이사왔을 때에는 집을 소개해주신 분이 도보 1분 거리에 사셔서 그 분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집에 쌀이나 야채는 있는지 물어보시더니 농사지은 건데 남았다고 하면서 무랑 배추, 당근을 합쳐서 한 5박스는 주셨던 것 같아요. 된장도 주시고, 찹쌀도 주시고. 덕분에 겨울에 겉절이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무나물도 해서 같이 나눠먹었어요. 윗집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갈 때는 카페 사장님이 주신 대봉을 들고 갔는데, 안 계셔서 강아지들이랑만 인사하고 두고 왔어요. 그러고서 다시 짝꿍이랑 인사하러 갔더니 김치가 너무 많다며 묵은지 한 통을 주시더라고요. 저희 집 맞은편 집에는 귀농하신 부부도 살고 계신데, 집에 찾아오셔서 같이 연말모임 하자고 초대도 해주셨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강아지 산책시키고 계실 때 마주쳐서 잠깐 인사 나눈 게 다였는데. 예상도 못한 일이라 많이 신기했어요. 다른 이웃 분들과는 윗동네 반상회랑 연초 마을총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반겨주시면서 마을회관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셨는데 아직은 낯을 좀 가리고 있답니다. 이웃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게 처음이다보니 조금은 낯설어요.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먼저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체력이 안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더라고요. 이웃이 소개해준 태극권 모임도 가고, 산책이랑 스트레칭도 자주 하려고 해요. 농사는 해보고 싶지만 본격적으로 농사를 하기엔 아는 게 없어서 작게 텃밭 정도만 하려고 해요. 같은 동네에 안 쓰는 밭을 무료로 빌려주신다는 분까지 있었는데요, 아쉽지만 일단 올해는 친구 농사일을 도우면서 조금씩 배워보려고요.


장터도 계속 나갈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곡성 읍내에서 했던 호미장, 낭만가옥 연말 바자회, 광주의 지구농장터 이렇게 3군데에 갔었어요. 올해는 구례 살레장에도 나가보고, 책 이외에 먹거리도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어느 장터에서 저를 보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6개월 전만해도 곡성에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흘러가듯 살다보면 그때도 생각지도 못한 선물같은 일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대체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지내지만 가끔은 ‘대학은 또 어쩌나’, ‘이대로 괜찮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에디터 일을 하게 된 것도 곡성과 더 친해지고, 여러분과도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기대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청춘작당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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