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30

지역에서 영상제작자 &

교육자로 살아요

영상 제작과 영상 교육을 하는 프리랜서 승희 씨

핸내, 민조, 제리

 2024. 09. 30

지역에서 영상제작자 & 교육자로 살아요 

영상 제작과 영상 교육을 하는 프리랜서 승희 씨

핸내, 민조, 제리

곡성에서 ‘청년’, ‘예술인’, ‘프리랜서’를 찾고 있을 때 누군가 톰을 소개해 주었다. 여러 사람을 통해 접한 톰은 듣기만 해도 웃긴 사람, 편안하게 잘 대해주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만나보니 알겠다. 상대를 편하게 하는 기술은 그의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나온 여유인 듯하다. 환경이 바뀌어도 어디서든 편안하게 적응하는 사람. 지역에서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살아가기에 불안정할 수 있으나, 톰은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 그를 만나 영상 제작 프리랜서로 사는 삶을 들여다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귀촌 5년 차 영상 제작과 영상 교육을 하고 있는 김승희입니다. 톰이라고 불러주세요.


어쩌다 곡성에 정착하게 되었나요?

곡성에서 100일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에 정착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서울에서 영상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고 있을 때였어요. 우연히 ‘청춘작당’ 프로그램 공지를 보고 참여했어요. 딱히 서울을 벗어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정착하게 됐어요.


100일 살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독립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정착을 마음먹었을 때, '곡성에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나요?

곡성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사실 경제적인 영역은 어디에 살든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잖아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구할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해서 그런지, 사는 지역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100일 살이가 끝나기도 전에 집을 구했죠. 시골에는 직방, 다방에는 매물이 없어서 교차로 신문으로 구했어요. 한 10군데 돌아다니면서요. 덕분에 나름 저렴한 가격의 전셋집을 구했어요.


초반에 일자리는 어떻게 구했어요?

처음엔 100일 살이에서 함께 정착한 동기들과 일을 만들었어요. 무작정 재단과 군청에 찾아가 ‘저희 청년들이 이런 자원이 있는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하고 문을 두드렸어요. 결국 마을학교 지원사업을 따내서 학교에 예술 수업을 다니게 되었어요. 극작가, 사진작가, 배우, 영상 제작자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가능했어요. 뿐만 아니라 군 홍보 영상을 함께 기획, 제작하며 돈을 벌기도 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워크맨 같은 콘텐츠를 패러디해서 젊은 친구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팀 작업에 능숙하지 않은 5명이서 하다 보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결국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하다가,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영상 일을 하게 되었나요?

그렇죠. 이것저것 시도하며 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소개로 영상 일을 구했어요. 군청 주무관님이 제 영상 수업을 수강한 후에 부서에 필요한 영상을 의뢰한다든지, 학교 선생님이던 분이 학부모 영상 교육을 의뢰한다든지. 이런 경로로 일을 구했어요.


그러면 톰은 어떤 영상을 제작하나요?

주로 지자체 기관의 외주를 받아서 만들어요. 기관 홍보영상이나 행사 스케치,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곡성 국악전수관 발표회 스케치 영상을 만들었고요. 곡성군미래교육재단에서 지역 인물 인터뷰하는 콘텐츠도 제작했어요.


주로 지자체 기관의 외주 일을 하네요.

아무래도 기업체 외주는 많지 않다 보니,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지역에서 영상으로 먹고 살아가기엔, 각자가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톰이 찾은 자생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영상 교육을 하고 있어요. 곡성에 있는 중학교 방과후 수업에 참여해 유튜브 컨텐츠, 쇼츠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인근 지역인 광주에서는 민간단체에서 50-60대 중장년 세대에게 영상교육을 하고 있어요.


영상 제작과 교육은 또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영상 교육은 적성에 잘 맞나요?

잘 맞는 편이에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막상 해보니 재밌어요. 곡성 오기 전에 아동미술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교육이 낯설진 않아요. 미술교육은 유아를 주 대상으로 했다면, 영상교육은 10대부터 60대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연령대 별로 영상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가르쳐야 하는 내용도 달라요. 예를 들어 10대 학생들은 숏폼 만드는 걸 즐기고 익숙해하는 세대고요. 60대는 은퇴하고 여행을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저는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야 하고요. 수업을 준비하고 해내는 과정이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에요. 모르는 영역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게 보람차요.

아동미술 교육 일도 했군요. 영상 작업 일 외에도 다른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네요.

네, 맞아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는 아동미술 교육을 했고요. 두 번째는 인형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어요. 세 번째 회사에서는 피디를 했고요. 세 번의 회사 경험 끝에 프리랜서로 영상 일을 하다가 곡성으로 온 거예요.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요? 비슷한 분야이긴 해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보여요.

맞아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궁금증 해소도 빠른 편이고요. 어렸을 땐 만화가가 꿈이어서 만화애니메이션과로 입학했어요. 근데 막상 단편 만화 30페이지를 그리니깐 욕구가 해소 되어버렸죠. 그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당시에 영화과 수업도 들어보고, 국어국문과 수업도 들어봤어요. 거의 10여 년 동안 작은 욕구와 호기심을 그때그때 풀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그렇다면 영상 교육을 그만두게 된다면, 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개인 영상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때 샌드아트 기법과 특별한 사연을 엮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유튜브에 올렸는데 인기가 꽤 있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유튜브를 활용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고요.


경제적 자유라, 듣기만 해도 짜릿하네요. 프리랜서로서 경제적으로 불안함을 느끼나요?

걱정이 되긴 하지만, 크게 불안하진 않아요. 물론 올해는 잘 먹고 살았지만,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현실이긴 해요. 어떨 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못 벌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불안은 직장이 있든 없든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장 안정성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톰은 자기만의 일을 계속해서 찾아갈 것 같아요. 곡성에서 지금까지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요?

음, 특별히 불편한 게 없어서? 당장은 편안한 상태여서 딱히 다른 지역에 갈 생각이 없어요. 강력한 명분이 생긴다면 모를까. 집돌이라서 그런지 지금 생활이 서울 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주차난이 없다는 점과 저렴한 주거비요. 서울은 집값이 비싸서 부담스럽잖아요. 


그리고 최근에 ‘곡성이기 때문에 곡성에 귀촌한 건 아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강진에서 4박5일 살아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좋더라고요. 만약 100일 살이 때 만난 친구들을 다른 지역에서 만났더라면? 그 지역으로 갔을 거예요. 결국 곡성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곡성에 남게 된 거죠. 지역에 살면 살수록 연고가 생기고, 사람이 곧 지역에 머무는 이유가 되는 거죠.


사람 때문에 머문다는 말이 공감돼요. 그만큼 청년들이 하나, 둘 도시로 돌아갈 때 슬프지 않나요?

아쉽긴 하지만, 자기 갈 길 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죠. 응원하며 보내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어도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바뀌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 사람이 떠난다고 해서 크게 휘둘리거나 그러진 않아요.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곡성에 살며 아쉬운 점도 있죠?

맛집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네요. 그러다 보니 요리 실력이 좋아졌어요. ^^


마지막으로 톰은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궁금해요.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 저 산 뒤에 지나가는 구름처럼 살고 싶어요. 천천히 자기 일 하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로 말이에요. 묵묵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한다면 새로운 일도 해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며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곡성에서 ‘청년’, ‘예술인’, ‘프리랜서’를 찾고 있을 때 누군가 톰을 소개해 주었다. 여러 사람을 통해 접한 톰은 듣기만 해도 웃긴 사람, 편안하게 잘 대해주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만나보니 알겠다. 상대를 편하게 하는 기술은 그의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나온 여유인 듯하다. 환경이 바뀌어도 어디서든 편안하게 적응하는 사람. 지역에서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살아가기에 불안정할 수 있으나, 톰은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 그를 만나 영상 제작 프리랜서로 사는 삶을 들여다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귀촌 5년 차 영상 제작과 영상 교육을 하고 있는 김승희입니다. 톰이라고 불러주세요.


어쩌다 곡성에 정착하게 되었나요?

곡성에서 100일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에 정착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서울에서 영상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고 있을 때였어요. 우연히 ‘청춘작당’ 프로그램 공지를 보고 참여했어요. 딱히 서울을 벗어나고 싶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정착하게 됐어요.


100일 살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독립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정착을 마음먹었을 때, '곡성에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나요?

곡성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사실 경제적인 영역은 어디에 살든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잖아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구할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해서 그런지, 사는 지역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100일 살이가 끝나기도 전에 집을 구했죠. 시골에는 직방, 다방에는 매물이 없어서 교차로 신문으로 구했어요. 한 10군데 돌아다니면서요. 덕분에 나름 저렴한 가격의 전셋집을 구했어요.


초반에 일자리는 어떻게 구했어요?

처음엔 100일 살이에서 함께 정착한 동기들과 일을 만들었어요. 무작정 재단과 군청에 찾아가 ‘저희 청년들이 이런 자원이 있는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하고 문을 두드렸어요. 결국 마을학교 지원사업을 따내서 학교에 예술 수업을 다니게 되었어요. 극작가, 사진작가, 배우, 영상 제작자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가능했어요. 뿐만 아니라 군 홍보 영상을 함께 기획, 제작하며 돈을 벌기도 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워크맨 같은 콘텐츠를 패러디해서 젊은 친구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팀 작업에 능숙하지 않은 5명이서 하다 보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결국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하다가,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영상 일을 하게 되었나요?

그렇죠. 이것저것 시도하며 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의 소개로 영상 일을 구했어요. 군청 주무관님이 제 영상 수업을 수강한 후에 부서에 필요한 영상을 의뢰한다든지, 학교 선생님이던 분이 학부모 영상 교육을 의뢰한다든지. 이런 경로로 일을 구했어요.


그러면 톰은 어떤 영상을 제작하나요?

주로 지자체 기관의 외주를 받아서 만들어요. 기관 홍보영상이나 행사 스케치,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곡성 국악전수관 발표회 스케치 영상을 만들었고요. 곡성군미래교육재단에서 지역 인물을 인터뷰하는 콘텐츠도 제작했어요.


주로 지자체 기관의 외주 일을 하네요.

아무래도 기업체 외주는 많지 않다 보니,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지역에서 영상으로 먹고 살아가기엔, 각자가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톰이 찾은 자생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영상 교육을 하고 있어요. 곡성에 있는 중학교 방과후 수업에 참여해 유튜브 컨텐츠, 쇼츠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인근 지역인 광주에서는 민간단체에서 50-60대 중장년 세대에게 영상교육을 하고 있어요.


영상 제작과 교육은 또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영상 교육은 적성에 잘 맞나요?

잘 맞는 편이에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막상 해보니 재밌어요. 곡성 오기 전에 아동미술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교육이 낯설진 않아요. 미술교육은 유아를 주 대상으로 했다면, 영상교육은 10대부터 60대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연령대 별로 영상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가르쳐야 하는 내용도 달라요. 예를 들어 10대 학생들은 숏폼 만드는 걸 즐기고 익숙해하는 세대고요. 60대는 은퇴하고 여행을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저는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야 하고요. 수업을 준비하고 해내는 과정이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에요. 모르는 영역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게 보람차요.

아동미술 교육 일도 했군요. 영상 작업 일 외에도 다른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네요.

네, 맞아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는 아동미술 교육을 했고요. 두 번째는 인형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어요. 세 번째 회사에서는 피디를 했고요. 세 번의 회사 경험 끝에 프리랜서로 영상 일을 하다가 곡성으로 온 거예요.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요? 비슷한 분야이긴 해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보여요.

맞아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궁금증 해소도 빠른 편이고요. 어렸을 땐 만화가가 꿈이어서 만화애니메이션과로 입학했어요. 근데 막상 단편 만화 30페이지를 그리니깐 욕구가 해소 되어버렸죠. 그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당시에 영화과 수업도 들어보고, 국어국문과 수업도 들어봤어요. 거의 10여 년 동안 작은 욕구와 호기심을 그때 그때 풀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그렇다면 영상 교육을 그만두게 된다면, 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개인 영상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때 샌드아트 기법과 특별한 사연을 엮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유튜브에 올렸는데 인기가 꽤 있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유튜브를 활용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고요.


경제적 자유라, 듣기만 해도 짜릿하네요. 프리랜서로서 경제적으로 불안함을 느끼나요?

걱정이 되긴 하지만, 크게 불안하진 않아요. 물론 올해는 잘 먹고 살았지만,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현실이긴 해요. 어떨 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못 벌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불안은 직장이 있든 없든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장 안정성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톰은 자기만의 일을 계속해서 찾아갈 것 같아요. 곡성에서 지금까지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요?

음, 특별히 불편한 게 없어서? 당장은 편안한 상태여서 딱히 다른 지역에 갈 생각이 없어요. 강력한 명분이 생긴다면 모를까. 집돌이라서 그런지 지금 생활이 서울 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주차난이 없다는 점과 저렴한 주거비요. 서울은 집값이 비싸서 부담스럽잖아요.


그리고 최근에 ‘곡성이기 때문에 곡성에 귀촌한 건 아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강진에서 4박5일 살아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좋더라고요. 만약 100일 살이 때 만난 친구들을 다른 지역에서 만났더라면? 그 지역으로 갔을 거예요. 결국 곡성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곡성에 남게 된 거죠. 지역에 살면 살수록 연고가 생기고, 사람이 곧 지역에 머무는 이유가 되는 거죠.


사람 때문에 머문다는 말이 공감돼요. 그만큼 청년들이 하나, 둘 도시로 돌아갈 때 슬프지 않나요?

아쉽긴 하지만, 자기 갈 길 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죠. 응원하며 보내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어도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바뀌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 사람이 떠난다고 해서 크게 휘둘리거나 그러진 않아요.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곡성에 살며 아쉬운 점도 있죠?

맛집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네요. 그러다 보니 요리 실력이 좋아졌어요. ^^


마지막으로 톰은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궁금해요.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 저 산 뒤에 지나가는 구름처럼 살고 싶어요. 천천히 자기 일 하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로 말이에요. 묵묵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한다면 새로운 일도 해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며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요즘 나는 휘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곡성에서 계속 살아가는 게 맞을까, 안정적인 일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사람은 어디 없나.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톰은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편안하게 흘러간다. 주변 환경에 휘둘리기보다, 자기 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그의 단단한 마음을 닮고 싶기도 하다. 오늘 하루는 지나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그리고 편안하게 흘러가길 바라본다.

요즘 나는 휘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곡성에서 계속 살아가는 게 맞을까, 안정적인 일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사람은 어디 없나.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톰은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편안하게 흘러간다. 주변 환경에 휘둘리기보다, 자기 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그의 단단한 마음을 닮고 싶기도 하다. 오늘 하루는 지나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그리고 편안하게 흘러가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