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이다
오히려 취업을 했으면 이리 어렵지 않았을까? 올해 초, 나는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다. 최소한의 생계비는 에디터 일로 충당한다. 글 쓰는 일로 적당히 벌고, 농사지은 채소로 요리해 먹는 일상. 말로만 들으면, 참 평화롭다. 하지만 시골집에 입주한 날부터 위기는 찾아왔다. 비어있던 집에 들어간 터라 보수가 필요했다. 누수 문제로 3월 한 달 동안 차가운 물로 샤워하거나 목욕탕과 이웃집을 전전했다. 소통이 어려웠던 집주인과 지난한 대화 끝에 겨우 누수 문제를 해결했다. 와중에 이삿짐을 정리하고 일도 해야 하던 상황. 현실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때를 떠올리면 이따금 쓴 마음이 올라온다.
이제 뜨거운 물도 나오겠다, 내가 바라던 시골살이를 이룰 수 있을까? 곡성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대신 관심 있는 여러 활동에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이 시골살이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농사짓고 돈 벌고, 이웃들과 어울리며, 풍물과 요가하는 평화로운 삶을 꿈꿨다. 꿈이 컸던 걸까. 먹고 사는 일은 현실이다. 출퇴근하는 직장 없이 스스로 일과를 계획하고, 여러 일을 조화롭게 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해야할 일을 잔뜩 쌓아둔 채로 늦잠을 자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집에서는 늘어지기 십상이라, 전환과 집중을 위해 카페에 자주 간다. 서울에 살 땐,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카페가 널려있었다. 지금은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다. 즉흥성 99.9% 인간인 내게 도보 20분 거리의 버스정류장과 버스 시간을 맞추는 일, 이른 막차 시간은 카페 이용에 꽤나 큰 난관이다. 여전히 도시에서 살던 생활양식이 익숙한가 보다. 언제든 기다리면 버스가 곧잘 오던 정류장, 주변에 편의시설이 갖춰진 집.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왜 생활양식까지 바꿔가며 이곳에 살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