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5. 27

풍물로 인생의 활기를 찾았어요

곡성풍물단 젊은 부쇠 혜숙씨

핸내, 민조, 제리

 2024. 05. 27

풍물로 인생의 활기를 찾았어요

곡성풍물단 젊은 부쇠 혜숙씨

핸내, 민조, 제리

독자님들 주변에 장구 치고, 꽹과리 치는 사람이 있나요? 제가 도시에 살 땐, 풍물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요. 곡성에 오니 국악에 진심인 사람을 넘치게 만납니다. 서양악기만 배우며 자란 저는 웅장하고 깊은 국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저도 장구 치고, 태평소 부는 '풍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곡성에는 면 단위의 풍물단이 여럿 있어요. 또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등록된 '곡성죽동농악'도 있고요. 풍물로 행사를 여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여는 말을 통해 짐작하실 수 있겠죠? 꽹과리 치는 멋진 언니, 혜숙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곡성군 농악인 한마음대회*에서 혜숙씨를 처음 봤는데요. 와… 꽹과리 치는 혜숙씨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성 젊은이가 부쇠**를 하고 있다니!' 곡성에서 풍물 하는 여성 젊은이를 만나는 일은 드물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흥겹게 즐기던 기억이 납니다. 그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혜숙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곡성군 농악인 한마음대회 : 곡성 농악인의 화합 도모와 농악 발전을 위해 열리는 풍물 대회로, 각 면 단위의 풍물단이 참여한다.

**부쇠 : 풍물판을 이끄는 상쇠 다음으로, 꽹과리를 치며 판을 이끄는 사람이다.

곡성풍물단 연습실에서 만난 혜숙님


#혜숙씨와 곡성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곡성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찐 곡성인 김혜숙입니다. 20대에 3년 정도 서울에서 거주 했고, 그 외에는 계속 곡성에서 살았어요.


20대의 서울살이는 어땠나요?

서울에는 편리한 것도 많았지만, 복잡한 것도 많았어요. 출퇴근길에 차도 너무 많고, 마치 콧속에서 먼지가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재개발 지역에 있는 은행에서 근무했는데요. 제가 살던 재개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휘황찬란한 도시가 있었어요. 같은 서울인데 너무도 다른 모습인 거죠.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결론적으로 결혼하면서 고향인 곡성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도시에 살다가 곡성에 돌아왔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 됐어요. 지역이 정말 좁아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죠. 무언가 배우러 갔는데 '남편 누구야?'부터 물어보더라고요. 하필 남편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저희 부모님도 곡성 분이셔서 그런지, 한 다리만 건너면 정말 다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눈치를 보게 되고, 행동을 조심하게 됐어요. 제 모습대로 발산하기 보다 많이 억제했던 것 같아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곡성에 돌아와서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자연을 누리는 혜숙씨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이요. 어렸을 때, 섬진강 뚝방 근처에 살았는데요. 섬진강을 되게 좋아했어요. 여전히 좋아하고요. 섬진강을 보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런 게 바로 곡성의 장점 아닐까요? 어쩌면 자연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기본적인 요소 같아요. 어떤 자연환경에 노출됐느냐에 따라 사람의 특성도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곡성의 자연 속에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곡성에서 먹고 사는 일

곡성군미래교육재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재단을 소개해주세요.

곡성군미래교육재단(👉 곡성군미래교육재단 바로가기)은 ‘도시로 떠나보내는 교육이 아닌 지역의 시민으로 잘 커나갈 수 있는 교육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공교육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숲교육, 인공지능, 로봇 관련 미래산업융합교육 같은 프로그램이요. 부족한 교육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대상으로만 교육을 제공했는데, 현재는 평생교육으로 전 연령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요.


재단에서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 곡성세계장미축제 공연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요.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을 맡아 아이들과 선생님, 공무원들을 만나고 있고요. 주로 학교와 교육청 사이에서 소통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죠. 재단 자체가 지역사회와 공공기관을 매개하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농악 관련하여 지역문화유산 활성화 교육사업도 지원하고 있어요. 지역에 가치있는 무형문화재인 '곡성죽동농악'을 아이들에게 알림으로써, 문화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한 사업이에요.


#풍물 하며 흥겹게 살아가기

꼬깔 쓰고 소고 치는 혜숙씨

일도 취미도 공연과 관련되어 있네요.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풍물패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9년 전, 30대 중반에 시작했어요. 자녀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주변으로 시선을 넓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풍물단 단원 모집 현수막을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어떤 악기를 다루시나요?

저는 주로 꽹과리를 쳐요. 풍물패에서 부쇠를 맡고 있어요. 꽹과리 말고도 장구나 소고, 북도 쳐요. 꽹과리를 치게 된 계기는 젊다는 이유에서였어요. 꽹과리가 다른 악기에 비해 배우기가 어려운데요. 풍물패에 들어갔을 때, 젊어서 빨리 배울 것 같다고 제안 받아 치게 됐어요.

곡성풍물단 단체사진

혜숙씨가 속한 곡성풍물단을 소개해 주세요!

2014년에 창단한 풍물패입니다. 곡성읍 인근 마을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풍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환영입니다~! 초보자분들도 오시면 악기를 배울 수 있어요. 주 2회 곡성읍행정복지센터 2층에서 연습합니다. 평소에는 곡성풍물단장님과 더불어 회원들이 서로 서로 지도하며 배워요. 이따금 실력 향상을 위해 외부 선생님을 모셔 소고, 북 캠프를 열기도 한답니다.

곡성풍물단 연습중

풍물단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시나요?

당장 내일도 정읍에서 하는 황토현 전국 농악 경연대회에 나가요. 주로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데요. 정월대보름이면 지신밟기*를 하고, 읍민의 날, 면민의 날**에 참여해서 한바탕 놀다 와요. 작년에는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와 장미축제에서도 공연을 했어요.


*지신밟기 : 정월대보름에 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면서 한 해의 평안과 복을 비는 세시풍속이다.

**면민의 날 : 곡성에서는 봄이면 면 단위로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경품이 푸짐한 운동회 같기도, 노래자랑 대회 같기도 하다.

곡성풍물단 공연중

마을에서 하는 지신밟기처럼 과거에는 풍물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고 들었어요. 어릴 적 경험한 풍물이 있나요?

과거에는 마을마다 농악이 있었어요. 지신밟기를 할 때, 마을 사람들은 쌀도 내고,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내놨어요. 그것을 마을의 종잣돈처럼 모아서 마을 운영에 사용했죠. 저희 아버지도 마을굿*에서 징을 쳤어요.


*굿 : 굿, 농악, 풍물은 비슷한 개념이다


어르신 세대는 풍물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10살, 20살 이상 차이 나는 단원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른들과 잘 지내는 팁이 있을까요?

제가 음주가무를 좋아해서 그런가, 어르신들과 잘 놀아요. 어르신들 버스 타고 멀리 가면 얌전히 안 계셔요. 관광지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난리 나요. 저도 같이 호응하며 맞춰서 노는 거죠. 연습 때는 “잘하시는데? 그 정도면 훌륭하신대?”라고 피드백 하며 격려해요. 기분 좋은 말 한마디씩 건네는 거죠. 그리고 어르신들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고, 잘 챙겨드리려 해요. 근데 말이죠, 사실 어르신들이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거 아닐까 싶어요. 가끔 총무 일이 추진한 대로 안 될 때, 어르신들이 저를 토닥이면서 장난식으로 “총무 말 좀 잘 들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해주셔요.ㅎㅎ

단원들과 화기애애한 모습

풍물을 하며 힘들었던 때가 있나요?

초반에 악기 배울 때 힘들었어요. 장구 가락 ‘덩덩쿵덕쿵’만 배웠을 땐 재밌었어요. 근데 꾸밈음 ‘기’를 넣어서 ‘덩(기)덩(기)쿵(기)닥쿵(기)’로 치라는 거예요. ‘선수도 아니고 그냥 쉽게 치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었죠. 꽹과리도 마찬가지였어요. 꾸밈음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섬진강 앞에 주차 해놓고 연습을 많이 했죠. 악기는 배울 게 끝도 없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실력이 곡선처럼 향상될 것 같지만, 사실 계단처럼 올라간다고요. 정말 안 될 것 같던 가락도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되더라고요. 잠깐의 힘든 시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지고요. 물론 막히는 때를 또 맞이하겠지만요.


풍물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혜숙님의 삶을 바꿔놓았나요?

우선 즐겁고 재밌어요. 하나를 터득하면 새로 배울 게 또 나와요. 끝이 없으니깐 계속하고 싶고요. 그게 자극이 되어 더 잘하고 싶고, 꾸준히 하게 돼요.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기쁨이 있어요. 풍물판에서는 꽹과리, 장구, 북, 소고 등 악기를 다루는 사람과 더불어 깃발 드는 기수, 판의 흥을 돋우는 잡색 역할이 있어요. 각자의 매력도 다르고, 다 필요한 역할이에요. 풍물에서는 모든 이가 자기 역할을 할 때, 판이 완성됩니다.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더 드러나는 거죠.


풍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삶에 있어 풍물은 어떤 의미인가요?

엄청난 활력이죠. 풍물을 하기 전에는 스트레스로 몸이 아팠어요. 하지만 풍물을 하고부터 우울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몸이 회복되었어요. 몰입해서 악기를 치면 땀이 흠뻑 나고 에너지가 발산돼요.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더불어 농악을 통해 자연스레 공동체성을 배우고, 전보다 성숙해진 것 같아요. 풍물 판에서 모든 역할이 그러하듯, 사람도 각자의 고유성이 있으니 편견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둥둥둥 북의 가죽이 울릴 때마다 그 소리에 가슴이 같이 뛰었다. 가락마다 내 몸도 함께 했다. 한바탕 뛰고 나면 기분도 좋고 땀도 흠뻑. 그 기분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갔다. 농악 시작한 지 2년. 평생 먹어야 할 약을 끊었다. 2017년의 일이다. 내게 신명이 찾아와 지병까지 쫓아준 것은 아닐까 한다. 이후 농악에 더 빠질 수밖에 없었다. 농악은 나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내 표정은 세상 즐거움이다.(혜숙씨 자서전 ‘삶의 조각보' 중)” 


풍물인으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곡성풍물단이 올해 곡성군 대표로 전남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게 됐어요. 39명의 회원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맹연습 중입니다. 곡성풍물단이 곡성군 대표 풍물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여유 있고 여백 있는 삶을 살고자 해요. 꽉 채워진 음표가 아닌, 숨은 여백으로 농악 가락이 완성되는 것처럼요.

혜숙씨가 직접 만든 꽹과리 케이스
‘우리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쁨 좋다’

구독자님들 주변에 장구 치고, 꽹과리 치는 사람이 있나요? 제가 도시에 살 땐, 풍물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요. 곡성에 오니 국악에 진심인 사람을 넘치게 만납니다. 서양악기만 배우며 자란 저는 웅장하고 깊은 국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저도 장구 치고, 태평소 부는 '풍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곡성에는 면 단위의 풍물단이 여럿 있어요. 또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등록된 '곡성죽동농악'도 있고요. 풍물로 행사를 여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여는 말을 통해 짐작하실 수 있겠죠? 꽹과리 치는 멋진 언니, 혜숙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곡성군 농악인 한마음대회'*에서 혜숙씨를 처음 봤는데요. 와… 꽹과리 치는 혜숙씨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성 젊은이가 부쇠**를 하고 있다니!' 곡성에서 풍물 하는 여성 젊은이를 만나는 일은 드물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흥겹게 즐기던 기억이 납니다. 그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혜숙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곡성군 농악인 한마음대회 : 곡성 농악인의 화합 도모와 농악 발전을 위해 열리는 풍물 대회로, 각 면 단위의 풍물단이 참여한다.

**부쇠 : 풍물판을 이끄는 상쇠 다음으로, 꽹과리를 치며 판을 이끄는 사람이다.

곡성풍물단 연습실에서 만난 혜숙씨


#혜숙씨와 곡성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곡성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찐 곡성인 김혜숙입니다. 20대에 3년 정도 서울에서 거주 했고, 그 외에는 계속 곡성에서 살았어요.


20대의 서울살이는 어땠나요?

서울에는 편리한 것도 많았지만, 복잡한 것도 많았어요. 출퇴근길에 차도 너무 많고, 마치 콧속에서 먼지가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재개발 지역에 있는 은행에서 근무했는데요. 제가 살던 재개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휘황찬란한 도시가 있었어요. 같은 서울인데 너무도 다른 모습인 거죠.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결론적으로 결혼하면서 고향인 곡성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도시에 살다가 곡성에 돌아왔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 됐어요. 지역이 정말 좁아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죠. 무언가 배우러 갔는데 '남편 누구야?'부터 물어보더라고요. 하필 남편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저희 부모님도 곡성 분이셔서 그런지, 한 다리만 건너면 정말 다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눈치를 보게 되고, 행동을 조심하게 됐어요. 제 모습대로 발산하기 보다 많이 억제했던 것 같아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곡성에 돌아와서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자연을 누리는 혜숙씨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이요. 어렸을 때, 섬진강 뚝방 근처에 살았는데요. 섬진강을 되게 좋아했어요. 여전히 좋아하고요. 섬진강을 보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런 게 바로 곡성의 장점 아닐까요? 어쩌면 자연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기본적인 요소 같아요. 어떤 자연환경에 노출됐느냐에 따라 사람의 특성도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곡성의 자연 속에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곡성에서 먹고 사는 일

곡성군미래교육재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재단을 소개해주세요.

곡성군미래교육재단(👉 곡성군미래교육재단 바로가기)은 ‘도시로 떠나보내는 교육이 아닌 지역의 시민으로 잘 커나갈 수 있는 교육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공교육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숲교육, 인공지능, 로봇 관련 미래산업융합교육 같은 프로그램이요. 부족한 교육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대상으로만 교육을 제공했는데, 현재는 평생교육으로 전 연령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요.


재단에서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 곡성세계장미축제 공연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요.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을 맡아 아이들과 선생님, 공무원들을 만나고 있고요. 주로 학교와 교육청 사이에서 소통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죠. 재단 자체가 지역사회와 공공기관을 매개하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농악 관련하여 지역문화유산 활성화 교육사업도 지원하고 있어요. 지역에 가치있는 무형문화재인 '곡성죽동농악'을 아이들에게 알림으로써, 문화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한 사업이에요.

꼬깔 쓰고 소고 치는 혜숙씨

#풍물 하며 흥겹게 살아가기

일도 취미도 공연과 관련되어 있네요.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풍물패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9년 전, 30대 중반에 시작했어요. 자녀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주변으로 시선을 넓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풍물단 단원 모집 현수막을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어떤 악기를 다루시나요?

저는 주로 꽹과리를 쳐요. 풍물패에서 부쇠를 맡고 있어요. 꽹과리 말고도 장구나 소고, 북도 쳐요. 꽹과리를 치게 된 계기는 젊다는 이유에서였어요. 꽹과리가 다른 악기에 비해 배우기가 어려운데요. 풍물패에 들어갔을 때, 젊어서 빨리 배울 것 같다고 제안 받아 치게 됐어요.

곡성풍물단 단체사진

혜숙씨가 속한 곡성풍물단을 소개해 주세요!

2014년에 창단한 풍물패입니다. 곡성읍 인근 마을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풍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환영입니다~! 초보자분들도 오시면 악기를 배울 수 있어요. 주 2회 곡성읍행정복지센터 2층에서 연습합니다. 평소에는 곡성풍물단장님과 더불어 회원들이 서로 서로 지도하며 배워요. 이따금 실력 향상을 위해 외부 선생님을 모셔 소고, 북 캠프를 열기도 한답니다.

곡성풍물단 연습 중

풍물단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시나요?

당장 내일도 정읍에서 하는 황토현 전국 농악 경연대회에 나가요. 주로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데요. 정월대보름이면 지신밟기*를 하고, 읍민의 날, 면민의 날**에 참여해서 한바탕 놀다 와요. 작년에는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와 장미축제에서도 공연을 했어요.


*지신밟기 : 정월대보름에 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면서 한 해의 평안과 복을 비는 세시풍속이다.

**면민의 날 : 곡성에서는 봄이면 면 단위로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경품이 푸짐한 운동회 같기도, 노래자랑 대회 같기도 하다.

곡성풍물단 공연중

마을에서 하는 지신밟기처럼 과거에는 풍물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고 들었어요.

어릴 적 경험한 풍물이 있나요?
과거에는 마을마다 농악이 있었어요. 지신밟기를 할 때, 마을 사람들은 쌀도 내고,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내놨어요. 그것을 마을의 종잣돈처럼 모아서 마을 운영에 사용했죠. 저희 아버지도 마을굿
*에서 징을 쳤어요.


*굿 : 굿, 농악, 풍물은 비슷한 개념이다.


어르신 세대는 풍물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10살, 20살 이상 차이 나는 단원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른들과 잘 지내는 팁이 있을까요?
제가 음주가무를 좋아해서 그런가, 어르신들과 잘 놀아요. 어르신들 버스 타고 멀리 가면 얌전히 안 계셔요. 관광지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난리 나요. 저도 같이 호응하며 맞춰서 노는 거죠. 연습 때는 “잘하시는데? 그 정도면 훌륭하신대?”라고 피드백 하며 격려해요. 기분 좋은 말 한마디씩 건네는 거죠. 그리고 어르신들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고, 잘 챙겨드리려 해요. 근데 말이죠, 사실 어르신들이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거 아닐까 싶어요. 가끔 총무 일이 추진한 대로 안 될 때, 어르신들이 저를 토닥이면서 장난식으로 “총무 말 좀 잘 들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해주셔요.ㅎㅎ

단원들과 화기애애한 모습

풍물을 하며 힘들었던 때가 있나요?
초반에 악기 배울 때 힘들었어요. 장구 가락 ‘덩덩쿵덕쿵’만 배웠을 땐 재밌었어요. 근데 꾸밈음 ‘기’를 넣어서 ‘덩(기)덩(기)쿵(기)닥쿵(기)’로 치라는 거예요. ‘선수도 아니고 그냥 쉽게 치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었죠. 꽹과리도 마찬가지였어요. 꾸밈음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섬진강 앞에 주차 해놓고 연습을 많이 했죠. 악기는 배울 게 끝도 없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실력이 곡선처럼 향상될 것 같지만, 사실 계단처럼 올라간다고요. 정말 안 될 것 같던 가락도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되더라고요. 잠깐의 힘든 시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지고요. 물론 막히는 때를 또 맞이하겠지만요.


풍물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혜숙씨의 삶을 바꿔놓았나요?
우선 즐겁고 재밌어요. 하나를 터득하면 새로 배울 게 또 나와요. 끝이 없으니깐 계속하고 싶고요. 그게 자극이 되어 더 잘하고 싶고, 꾸준히 하게 돼요.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기쁨이 있어요. 풍물판에서는 꽹과리, 장구, 북, 소고 등 악기를 다루는 사람과 더불어 깃발 드는 기수, 판의 흥을 돋우는 잡색 역할이 있어요. 각자의 매력도 다르고, 다 필요한 역할이에요. 풍물에서는 모든 이가 자기 역할을 할 때, 판이 완성됩니다.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더 드러나는 거죠.


풍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삶에 있어 풍물은 어떤 의미인가요?
엄청난 활력이죠. 풍물을 하기 전에는 스트레스로 몸이 아팠어요. 하지만 풍물을 하고부터 우울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몸이 회복되었어요. 몰입해서 악기를 치면 땀이 흠뻑 나고 에너지가 발산돼요.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더불어 농악을 통해 자연스레 공동체성을 배우고, 전보다 성숙해진 것 같아요. 풍물 판에서 모든 역할이 그러하듯, 사람도 각자의 고유성이 있으니 편견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둥둥둥 북의 가죽이 울릴 때마다 그 소리에 가슴이 같이 뛰었다. 가락마다 내 몸도 함께 했다. 한바탕 뛰고 나면 기분도 좋고 땀도 흠뻑. 그 기분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갔다. 농악 시작한 지 2년. 평생 먹어야 할 약을 끊었다. 2017년의 일이다. 내게 신명이 찾아와 지병까지 쫓아준 것은 아닐까 한다. 이후 농악에 더 빠질 수밖에 없었다. 농악은 나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내 표정은 세상 즐거움이다.(혜숙씨 자서전 ‘삶의 조각보' 중)” 


풍물인으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곡성풍물단이 올해 곡성군 대표로 전남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게 됐어요. 39명의 회원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맹연습 중입니다. 곡성군 대표 풍물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여유 있고 여백 있는 삶을 살고자 해요. 꽉 채워진 음표가 아닌, 숨은 여백으로 농악 가락이 완성되는 것처럼요.

혜숙씨가 직접 만든 꽹과리 케이스 ‘우리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쁨 좋다’


풍물을 통해 삶을 배우고, 관계 맺는 혜숙씨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 말처럼 치며 판에서 노는 혜숙씨는 어느 때보다 반짝거리는데요. 풍물이 그에게 활력이 되었듯, 혜숙님 또한 누군가에게 풍물로 활력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끝없는 혜숙씨의 풍물 인생을 응원합니다!

nongdam@farm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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