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3

시골살이에도 진로 탐색이 필요해

에디터 핸내의 시골살이 적응기2

핸내, 민조

 2024. 12. 23

시골살이에도 진로 탐색이 필요해

 에디터 핸내의 시골살이 적응기2

핸내, 민조

New 에디터라며 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4년의 마지막 기사를 발행한다. 다들 어떤 한 해를 보냈을까? 본격 시골살이에 돌입한 나는 기존에 하던 일과는 아예 다른 분야인 에디터 일을 하게 됐고, 인생에서 상상해 본 적 없던 농사를 짓게 된다. 어쩌면 적응을 위한 어려움은 필연적이었다. 환경이 확 바뀐 만큼 진로 탐색이 필요했다. 그런 절차 없이 무작정 시골에 정착하기로 한 나는, 올 한 해 치열한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올 해의 마지막 기사는 셀프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시골살이에서 겪은 다사다난한 일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어떤 한 해를 보냈나요?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3월에 시골집으로 이사 온 후, 이불 속에만 파묻혀 지내던 시기가 있었어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도저히 미래가 안 그려지는 거예요. 무엇보다 오랜 기간 농사에 마음을 품고 귀농해 자기만의 활동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작아졌던 것 같아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한 해 동안 이것저것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니, 이제야 곡성에서의 미래가 좀 그려지네요. 저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즐거운 요즘이에요.


어떤 방법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나요?

저는 주변 사람들과 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기관이라 함은 ‘곡성군정신건강복지센터’인데요.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어요. 혼자서는 이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상담을 알아봤죠. 사설 업체는 비싸고, 근처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어요. 군민 누구든 마음이 힘들 때, 찾아가면 무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올해 농사짓는 이웃들 덕에 잘 먹고 살았어요. 제 삶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어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어려움이 많았던 반면, 시골살이의 즐거움도 분명히 있었겠죠?

네, 그렇죠.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수입 활동만 하니깐,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어요. 농사짓는 게 힘들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이웃들과 함께 논밭을 일궈 나가며 기뻤던 적도 많았어요. 자연과 가까이 살 수 있어서 평화로웠고요. 스스로 돌보는 일, 먹는 일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어서도 좋았어요. 더불어 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풍물을 취미로 갖게 되면서 더 재밌게 지낼 수 있었어요. 한 가지 일에만 치중되지 않고, 여러 가지 관심 분야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게 시골살이의 장점 아닐까요?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돌아가서 직장을 다니겠다고 다짐했어요. 주변에 자기 신념과 가치관이 뚜렷한 이웃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시골에 내려오는 게 다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깐요. 하지만 저는 시골 와서 더 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 저렇게 목표와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 귀촌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도시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도시에서 괜찮은 직장을 구해 돈을 벌고 바쁘게 사는 게, 오히려 이 나이대를 잘 보내는 게 아닐까 싶었죠.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지만요.


지금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나요?

‘사람마다 삶의 모양과 속도는 모두 다르다.’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저는 받아들이지 못했었죠.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교하다 보니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사람마다 삶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삶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러면 내년에도 곡성에서 살기로 한 걸까요?

네. 내년에 이사 갈 집도 구했고, 일도 구했답니다. 무작정 서울로 돌아간다고 한들, 제가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제게 중요한 건 어디에 사느냐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가 안정적으로 갖춰진 곡성에서 제 일상을 잘 꾸려가는 연습을 먼저 해보려고 해요.

올해 진로 탐색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을 살아가게 될 텐데, 진로 탐색 과정은 어떠했나요?

프리랜서 에디터를 시도한 것 자체가 진로 탐색의 일종이었어요.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어찌저찌 끝까지 왔네요. 일하며 ‘아, 나는 정말 프리랜서랑 안 맞는구나.’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제 삶에 더 유익하더라고요. 글을 쓰는 일보다는 이전처럼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예상치 않게 친구의 입원 생활 중 간병을 도맡아 하며, 규칙적으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사는 삶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에디터 일이나 농사, 요가, 간병, 모임 등 시골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진로 탐색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요?

분무기처럼 살고 싶어요. 시든 잎이 푸릇푸릇해지듯 사람들에게 활기와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올해 초에는 이웃들 앞에서 많이 울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내년에는 이곳 생활을 더 즐기는 방향으로 꾸려나가고 싶어요. 지금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내면서요.


마지막으로 곡성살이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곡성에 생각보다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이를테면 김탁환 작가님의 글쓰기 교실, 국악전수관 수업, 전남과학대 평생교육원, 청년센터 프로그램 등등. 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고, 배우는 장소가 되고요. 청년들이 모인 마을에서는 각자 욕구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고 있어요. 시골에서 심심하진 않나요? 질문하는 분들도 있던데, 저는 오히려 곡성에 와서 더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아직 어려움도 많지만, 그럼에도 같이 헤쳐나갈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에요. 귀농, 귀촌 지역을 고민하는 독자분들, 곡성 어떠세요?

New 에디터라며 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4년의 마지막 기사를 발행한다. 다들 어떤 한 해를 보냈을까? 본격 시골살이에 돌입한 나는 기존에 하던 일과는 아예 다른 분야인 에디터 일을 하게 됐고, 인생에서 상상해 본 적 없던 농사를 짓게 된다. 어쩌면 적응을 위한 어려움은 필연적이었다. 환경이 확 바뀐 만큼 진로 탐색이 필요했다. 그런 절차 없이 무작정 시골에 정착하기로 한 나는, 올 한 해 치열한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올 해의 마지막 기사는 셀프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시골살이에서 겪은 다사다난한 일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어떤 한 해를 보냈나요?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3월에 시골집으로 이사 온 후, 이불 속에만 파묻혀 지내던 시기가 있었어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도저히 미래가 안 그려지는 거예요. 무엇보다 오랜 기간 농사에 마음을 품고 귀농해 자기만의 활동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작아졌던 것 같아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한 해 동안 이것저것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니, 이제야 곡성에서의 미래가 좀 그려지네요. 저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즐거운 요즘이에요.


어떤 방법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나요?

저는 주변 사람들과 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기관이라 함은 ‘곡성군정신건강복지센터’인데요.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어요. 혼자서는 이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상담을 알아봤죠. 사설 업체는 비싸고, 근처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어요. 군민 누구든 마음이 힘들 때, 찾아가면 무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곡성 분들이 많이 이용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올해 농사짓는 이웃들 덕에 잘 먹고 살았어요. 제 삶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어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어려움이 많았던 반면, 시골살이의 즐거움도 분명히 있었겠죠?

네, 그렇죠.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수입 활동만 하니깐,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어요. 농사짓는 게 힘들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이웃들과 함께 논밭을 일궈 나가며 기뻤던 적도 많았어요. 자연과 가까이 살 수 있어서 평화로웠고요. 스스로 돌보는 일, 먹는 일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어서도 좋았어요. 더불어 도시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풍물을 취미로 갖게 되면서 더 재밌게 지낼 수 있었어요. 한 가지 일에만 치중되지 않고, 여러 가지 관심 분야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게 시골살이의 장점 아닐까요?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돌아가서 직장을 다니겠다고 다짐했어요. 주변에 자기 신념과 가치관이 뚜렷한 이웃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시골에 내려오는 게 다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깐요. 하지만 저는 시골 와서 더 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 저렇게 목표와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 귀촌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도시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도시에서 괜찮은 직장을 구해 돈을 벌고 바쁘게 사는 게, 오히려 이 나이대를 잘 보내는 게 아닐까 싶었죠.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지만요.


지금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나요?

‘사람마다 삶의 모양과 속도는 모두 다르다.’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저는 받아들이지 못했었죠.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교하다 보니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사람마다 삶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삶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러면 내년에도 곡성에서 살기로 한 걸까요?

네, 내년에 이사 갈 집도 구했고, 일도 구했답니다. 무작정 서울로 돌아간다고 한들, 제가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제게 중요한 건 어디에 사느냐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가 안정적으로 갖춰진 곡성에서 제 일상을 잘 꾸려가는 연습을 먼저 해보려고 해요.

올해 진로 탐색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을 살아가게 될 텐데, 진로 탐색 과정은 어떠했나요? 

프리랜서 에디터를 시도한 것 자체가 진로 탐색의 일종이었어요.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어찌저찌 끝까지 왔네요. 일하며 ‘아, 나는 정말 프리랜서랑 안 맞는구나.’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제 삶에 더 유익하더라고요. 글을 쓰는 일보다는 이전처럼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예상치 않게 친구의 입원 생활 중 간병을 도맡아 하며, 규칙적으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사는 삶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에디터 일이나 농사, 요가, 간병, 모임 등 시골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진로 탐색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요?

분무기처럼 살고 싶어요. 시든 잎이 푸릇푸릇해지듯 사람들에게 활기와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올해 초에는 이웃들 앞에서 많이 울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내년에는 이곳 생활을 더 즐기는 방향으로 꾸려나가고 싶어요. 지금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내면서요.


마지막으로 곡성살이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곡성에 생각보다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이를테면 김탁환 작가님의 글쓰기 교실, 국악전수관 수업, 전남과학대 평생교육원, 청년센터 프로그램 등등. 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고, 배우는 장소가 되고요. 청년들이 모인 마을에서는 각자 욕구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고 있어요. 시골에서 심심하진 않나요? 질문하는 분들도 있던데, 저는 오히려 곡성에 와서 더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아직 어려움도 많지만, 그럼에도 같이 헤쳐나갈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에요. 귀농, 귀촌 지역을 고민하는 독자분들, 곡성 어떠세요?


매거진 농담은 1, 2월 쉬어갑니다. 따뜻해진 3월에 다시 만나요!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