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04. 나는 곡성에서 산다

지은씨는 곡성에서 배우며 산다 

뚝딱뚝딱 시골 라이프, 내 손으로 만들어 가는 삶

신지원, 민조

 Interview 04. 나는 곡성에서 산다

지은씨는 곡성에서 배우며 산다

 뚝딱뚝딱 시골 라이프, 내 손으로 만들어 가는 삶

신지원, 민조

나는 곡성에 산다! 벌써 올해 마지막 인터뷰가 다가왔다. 초봄에 설레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추워진 날씨가 연말이 왔음을 말해준다. 아직은 이른 연말 인사지만 다들 올 한해 안녕하셨는지 인사를 건넨다. 아직 이루지 못한 연초 계획이 있다면 남은 한 달을 알차게 써먹어 보자. 30일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에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오늘 만난 지은씨는 곡성 판 헤르미온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갓생러다. 여느 직장인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때때로 야근에 시달리지만 퇴근 후, 주말 시간을 쪼개 각종 모임에 참여 중인 그녀! 좋은 사람들과 술자리 또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하니 지은씨의 시간은 48시간이 아닐까 싶다. 배우고 나누는 것에 열정적인 그녀와의 대화에 나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바쁘지만 알차고, 분주하지만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지은씨의 타임테이블이 궁금하다면? 이번 인터뷰를 정독하시라.


반가워요. 지은씨! 구독자분들께 소개 한 번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벌써 곡성에 산 지 6년 차가 된, 청소년 상담사 허지은입니다. 곡성에는 2018년도에 왔고요.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원래 고향은 전주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쭉 전주에 살다가 대학 때는 나주에서 지내고 지금은 곡성에 살고 있어요.


저희는 구면이죠? 😁

네. 그럼요. 영상 만들기 수업 들을 때 함께 했죠.

(지은씨와 나는 영상 만들기 클래스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먼저 만났다.)


수업 외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색다르네요. 수업 때 이런 질문은 안 드렸던 것 같아요.
곡성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둘 다 웃음)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놀러 와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기억은 잘 안 나요.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연관없이 살다가 제가 대학교를 전남에서 다녔거든요. 졸업 쯤에 취업할 만한 센터를 전남권에서 찾고 있었는데 그때 곡성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당시에 도에서 하는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인턴직을 할 수 있었어요. 저희 직무는 경력이 없으면 들어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필수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경력도 채워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근무하게 되면 경력 인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곡성에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처음 곡성에 왔을 때 어땠어요? 아무래도 전주와 나주는 도시잖아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주변에서 시골에서 어떻게 사냐, 시골은 좀 그렇지 않냐 하는 걱정이 더 많았어요. 저는 그런 걱정보다 일단 당장 살 집을 구하는 게 더 급했거든요. 첫 출근하는 기간에 맞춰서 집을 알아봤는데 당장 적당한 집이 없는 거예요. 읍내가 생각보다 월세가 비싸더라고요. 아니면 너무 시골집이거나. 전주 본가가 곡성에서 차로 가면 50분 정도 걸리거든요? 차라리 전주 가서 살까? 아니면 남원이 가까우니까 남원에 가서 지낼지 엄청나게 고민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2주 정도 나주에서 출퇴근했잖아요.

나주에서 곡성 출퇴근이면 엄청 힘들었겠어요.
그때는 차도 없을 때라 나주에서 버스 타고 광주 터미널에 도착해서 광주에서 곡성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어요. 퇴근할 때는 오후 7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도착 시간이 9시가 넘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죠. 아 직장과 집은 무조건 가까워야 한다!


듣기만 해도 힘든 것 같아요. 곡성에서 집 구하기는 힘들지 않았어요?
보통은 집 구할 때 부동산을 가잖아요. 근데 곡성은 부동산가서 원룸 구하기는 어렵고 교차로 같은 신문을 봐야 한다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알려주셨어요. 신문도 찾아보고 귀농 귀촌 센터도 가봤는데, 차가 없으니까 너무 외진 지역으로 가면 안 되고 무조건 읍내에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직장도 읍내에 있고요. 지금 사는 집이 세 번째 집인데, 지금 집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처음에는 군에서 운영하는 셰어 하우스에 살았다고 하던데.
네. 곡성에 청년 주거 정책으로 셰어하우스가 처음 생길 때였어요. 그때 같이 일하던 선생님 두 분과 아파트에 함께 살았죠. 최대 기간이 2년이어서 2년 딱 맞춰서 살고 나왔어요. 셰어하우스가 정말 좋았어요. 함께 사는 선생님들이 다 좋았어서. 근데 단점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맨날 하는 얘기가 일 얘기, 회사 얘기더라고요. 직장에서 보는 사람을 집에서도 또 봐야 하는 거죠. 그래도 월세가 워낙 저렴해서 2년 동안은 집세 걱정 없이 잘 지냈어요.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혼자 나와 사신 거군요.
이사 전부터 주택에 대한 걱정이 조금 있었어요. 살고 있는 지금도요. 일단 대부분 옵션이 없고요. 가전제품을 거의 다 사서 들어 갔죠. 또, 주택이다 보니 벌레 문제, 자잘하게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내가 씻어야 한다든가 분리수거를 내가 해야 한다든가 그런 게 손이 많이 가요. 저희집이 LPG 가스인데, 이런 게 너무 생소한 거예요. 도시가스 말고 다른 게 있다고? 했죠. 근데 또 살다 보니까 그럭저럭 살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집에 애정이 생겼어요. 셰어하우스에 살 때는 다 같이 사니까 집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거든요. 내 공간이 아니니까. 근데 지금 집은 혼자 산 지 2년 됐거든요? 혼자 책임지고 살다 보니까 내 공간이라는 애착이 있어요. 뭔가 더 아늑한 것 같고 위치도 마음에 들고요. 바로 앞이 경찰서라 안전하고 동네가 조용해서 새소리, 기차 소리도 들려요. 너무 운치 있죠? 밖에 작은 마당이 있어서 날이 좋으면 야외에서 뭐 구워 먹기도 하고, 마당에서 맥주 한 잔하고 하는 게 좋더라고요.


주택 살이가 만만치 않잖아요. 저도 주택 살아서 잘 알거든요.
그쵸. 난이도가 아주 높아요. 일단 벌레가 들어오면 누가 잡아줄 사람이 없잖아요. 내 손으로 보내줘야 하지. 또 저희집이 가스라고 했잖아요. 겨울에 난방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12월에 난방 틀고 온수를 쓰니까 일주일에 가스 한 통을 쓰더라고요. 한 통에 5만 원이거든요? 그럼 한 달에 20만 원! 미쳤죠. 그나마 월세가 저렴해서 다행이긴 하지만요. (정말 쉽지 않네요.) 네. 쉽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곡성에 사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교적 도시인 남원도 사실 차로는 가깝잖아요.
직장이 가까운 이유가 크긴 하지만, 저는 그게 참 좋아요. 아침에 일어날 때 햇살에 눈 뜨는 거. 정말 고요하잖아요. 새 소리 짹짹 나고. 맨날 회사 가고 일하고, 몸과 마음 다 바쁘게 사는데 뭔가 곡성에서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계절과 하늘과 별이나 이런 걸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아요.

정말 큰 장점이죠. 방향을 살짝 돌려서 지은씨 하시는 일도 궁금해요.

저는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라는 곳에서 근무해요. 전국에 지자체마다 있는 센터고요. 전국에 약 240개소 정도 있어요. 지역마다 대부분의 구마다 있는데, 예를 들면 어느 광역시에 구가 5개다 하면 5개의 센터가 있답니다. 여성가족부 산하에 있는 기관이어서 전국적으로 청소년들을 둔 가정과 청소년들을 위한 정서 상담과 관련 집단 프로그램, 캠프나 여러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끔 도움 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 예를 들어 자살 자해, 우울증, 교우 관계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죠. 생명존중 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도 하고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도 하고 있답니다.


곡성의 청소년들은 어떤가요? 우리 아이들 잘 자라고 있을까요?

귀엽죠. 확실히 도시에 비해서는 순박해요. 왜냐하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여기서는 나쁜 행동을 모델링 하기가 어렵잖아요. 아이들은 친구들의 행동을 잘 흡수하거든요. 도시 같은 경우에는 사람도 많고 집단도 많잖아요. 학원이나 학교도 많으니까 나쁜 행동들을 모델링하기도 쉽거든요. 근데 여기는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본 애들이 그대로 진학해요. 간혹 몇 명 정도 비행 행동을 하기는 해도 도시처럼 경악스러운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가끔 학교에 교육을 가면, 아이들에게 너 oo 초 나왔지? 하고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신기해해요. 읍내에 초등학교는 하나 밖에 없는데. 너무 귀엽죠? 그렇게 귀엽던 애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고 성인이 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곡성에 청소년 관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나요?

센터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곡성의 경우에는 군 단위 치고는 사람 수가 많아요. 시간제, 비상근직 선생님까지 포함하면 8명이 계셔요. 군 단위에서 8명이면 꽤 많이 근무하시는 거거든요? 곡성에 청소년 인구가 2,000명도 안 돼요. 보통 한 대학교에 재학생들이 몇천 명씩 다니는데, 곡성 청소년 인구가 한 캠퍼스 재학생 수보다 적은 거예요. 그런데도 청소년 관련 종사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지자체에서 예산이나 정책에 대해 관심도 많고 재단에 청소년팀이 아예 따로 있어요. 곡성에만 해도 읍내, 옥과, 석곡해서 3개소가 있거든요. 지역에서 청소년들에게 질적으로 높은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열일한 후에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마감주를 마십니다. (웃음) 퇴근하고 집에서 먹는 술이 그렇게 맛있어요. 저희 일이 야근도 있고, 야간 상담을 할 때가 있거든요. 야간 상담을 하면 오후 8시에 끝나요. 열일하고 집에 와서 만화도 보고 영화도 봐요. 집에 빔프로젝트가 있거든요. 빔 쏴서 맛있는 안주 하나 만들어서 술 한잔하면 🤣 정말 좋아요. 제가 고양이를 키우는데 안주 세팅해서 빔 틀고 고양이도 나오게 감성 사진도 좀 찍고요.


최고의 힐링이죠.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집에만 계시지는 않으시던데!
사실 주말에는 집에 있지 않아요. 전주에 가거나 남자친구가 대전에 있어서 대전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광주로 가거나 목포에 가거나 논산에 가거나. (전국구로 가시네요!) 집에 잘 안 붙어 있어요. 제 성향인데, 24시간 이상 뭔가 사면이 벽에 막힌 데에 있으면은 답답하고 화가 나요. 생산적이지 못한 하루를 보냈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곡성에서 느긋함과 여유를 배우고 있답니다.


곡성에서 직장 이외에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곡성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일 말고 여가 생활을 한 번 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목공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영상 수업도 그런 결심 끝에 수강한 거였고요.

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어떤 수업들인가요?
처음에는 잘 아는 대표님이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사람이 비었다, 참여하지 않겠냐? 추천해 주셔서 들어갔어요. 목공 수업은 안전 때문에 2인 1조로 들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옆 옆 건물에서 일하는 친구를 꼬셨죠. 친구와 함께 들으니까 피곤해도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내가 안 가면 친구가 수업을 못 들으니까요. 곡성에 온 지도 몇 년이 지나니까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나 봐요. 일 말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곤할 때는 아이고, 이것도 일이구나 싶을 때도 있는데 막상 가면 엄청 열심히 해요.


목공은 전에 두 개의 목공 프로그램을 참여했었어요. 기본적으로 도구를 다루고 목공은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수업 말고 목공 동아리에 참여 중이에요. 선생님이 딱 계신 수업이기보다는 동아리 사람들끼리 아는 걸 공유하고 서로 돕기도 하고요. 기계 다루는 것만 공방 강사님에게 배워서 각자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작업해요. 누구는 식탁을 만들고 누구는 의자를 만들고 자유롭게 만들어요. 그러다 서로 이거 뭘까요? 어떻게 하는 걸까요? 물으면서 알려주고요.


그렇군요. 민망하긴 하지만 모르는 척 물어볼게요. 영상 제작 수업은 어떠셨어요?

목공을 추천해 주셨던 대표님이 제가 목공을 하니까 목공 하는 걸 영상으로 만들어라 또 추천해 주셨어요. 영상 수업은 심지어 공짜였잖아요. 도시에서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학원에 가서 언제든 배우면 되지만 곡성은 그런 기회가 귀하거든요. 청년들 모임도 도시에서는 언제든 찾아가면 되는데 곡성에는 잘 없고요.


영상 수업이 있다는 걸 듣고, 영상 제작 방법을 배워두면 나중에 사업 결과 보고 대회 때 예쁘게 만들어서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면 좋다! 해보자! 했죠. 수업료도 공짜고 읍내에서 진행한 수업이라 운전해서 갈 필요도 없고 너무 좋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찍고 만드는 기술만 배우겠구나 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본격적인 수업이더라고요? (그쵸. 아주 열심히 수업했답니다) 처음 수업을 갔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는 다큐는 남극의 눈물이나 펭귄 나오는 이런 것 뿐인데.


하지만 막상 수업 들으면서 찍어 보니까  내가 기획해서 뭔가 결과물을 낸다는 게 참 재밌었어요. 평소에 고양이 사진만 많이 찍지 그거를 언제 영상으로 만들겠어요. 어렵기도 했지만 찍고 땡이었던 사진과 영상으로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게, 수업 참 잘 들었다, 뿌듯하다 싶어요.

무언가 하나를 하더라도 아주 제대로 하시는 것 같아요.
들었으면 뽕을 뽑아야죠. 목공 수업도 자격증까지 땄어요. 어떤 걸 하더라도 맥락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이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서 청소년들한테 목공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 영상도 내가 영상 편집을 배워두면은 요즘 애들 막 춤추고 틱톡, 유튜브 찍는 걸 같이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하다못해 상담을 진행하더라도 아이의 관심사를 알아야 하니까요. 항상 초점이 그렇게 가 있어요. 처음에는 이거를 배워서 나중에 일할 때 써먹어야겠다! 하는데, 막상 참여할 때는 일 생각 안 하고 엄청 즐기면서 배워요.


일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세요.
그런가 봐요. 막 의식하고 있진 않은데, 또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주제가 항상 일로 가 있어요. 어릴 때 진로를 결정할 때는 이왕이면 즐길 수 있는 걸 배워보고 싶었어요. 대학 가서 4년 동안 또 공부를 한다니까 좋아하는 걸 배우자 싶었죠. 생각해 보니까 제가 CSI나 크리미널 마인드같은 수사물을 좋아하더라고요. 심리 수사물 같은 거요. 그렇다고 경찰대에 갈 성적은 아니니까 그러면은 심리학과에 가자 결심했어요. 대학에서 심리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람 심리가 단순히 ‘이 사람이 지금 우울하다.’ ‘우울한 결과값 도출 끝!’이 아니라, 왜 우울할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을까 하는 걸 배워요. 계속 공부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 만약에 이 전공을 살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는 느낌이라 심리학 공부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공부와 일이 지금의 청소년 상담사까지 이어졌어요.


워낙 활동력도 있고 일에 대한 열정도 높으셔서 도시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사실 가족들도 그렇고 주변에서 언제까지 곡성에 있을 거냐고 물어요. 이제는 시 단위 아니면 광역시나 좀 큰 데 와야 되지 않겠냐 걱정하거든요. 큰 지역에 가면 일은 늘어나겠죠? 그런데도 제가 곡성에 있는 이유는, 굳이 살 이유가 없을 수 있지만 굳이 나갈 이유도 없다 예요. 이제 여기가 너무 편해요. 이미 적응도 했고 직장도 오래 다녀서 제가 가장 선임이거든요. 지금 제 나이가 20대인데 첫 직장에서 6년째 일하고 있어요. 이곳에 쏟은 에너지가 있는데 굳이 다른 곳에 가서 새로 적응하고 다시 시작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요. 지금은 차도 있어서 정 필요한 게 있으면 인근 도시로 나갈 수도 있고, 놀러도 잘 다니고요.

곡성 사람이 다 되셨네요. 그렇다면 곡성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청년으로 곡성에 살기 어떤가요?
일단 저는 직장에 한 12시간, 13시간씩 앉아 있으니까 심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거는 있죠. 포도가 먹고 싶은데, 일반 포도 말고 샤인머스캣 같은 외국 포도가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남원에 가서 사와야 한다는 거. 새벽 배송이 새벽 배송이 아니고 3일씩 걸리는 배송이라는 거? 근데 그런 것도 적응이 돼서 이제는 불편하진 않아요.


청년의 입장으로 얘기하자면, 곡성에도 청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근데 서로의 존재를 잘 몰라요. 그래서 소통할 청년을 찾아 헤매는데 근처에 있어도 모르고 살아요. 흩어져 있는 청년들이 소통할 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시골에 산다고 하면 놀 곳도 없고,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이 많잖아요.
흔히들 그 젊은 나이에 거기 시골에 놀 데도 없고 뭐 갈 데도 없고, 살 수 있겠냐? 하세요. 그러면 그 때마다 답변하는 게 있어요. 젊다고 매일 매일 놀지는 않잖아요. 직장 다니고 일하고 하는 시간이 더 길지. 요즘은 스마트기기도 워낙 잘돼있어서 영화를 보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보면 되고요. 곡성은 영화관 티켓 가격도 6,000원이라 다른 곳에서 한 편 볼 거, 두 편 볼 수 있거든요. 밀키트도 다 배송되고요. 정 없으면 인근 도시로 나가면 되고요. 사는데 걱정이 없답니다.


그렇죠. 사실 청년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데! 지은씨처럼 곡성에서의 삶을 계획 중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걱정은 찰나다! 시골 주택에서 어떻게 사냐, 춥고 불편하지 않냐 걱정하는데 그런 걱정은 정말 잠깐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보는 광경이랑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요. 생활하는 데 지칠 수 있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한 거는 어디 가나 똑같잖아요. 그런데 이 시골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에 위로를 받을 수 있죠. 엄청 바쁘고, 산만하고 부산스럽고, 정신없이 생활해도 자연은 늘 차분해요. 자연이 다 초록색이고 똑같지 않냐 해도, 그 색깔이 계절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거든요. 붕 떠 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는 여기가 최고다!  마음 속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서 좋아요.


지금 집주인 분이 가꾸는 텃밭이 있거든요. 자고 일어나면 집 창문 앞에 된장, 고추장, 옥수수 같은 게 막 놓여있어요. 문자로 ‘호박죽 드실래요?’ 물어보시거든요. 그럼 ‘좋죠!’ 해요. 막 걸어가다가 모르는 어르신인데 ‘아가씨 상추 먹을래?’ 하셔요. 사람들이 정감이 있어요. 시골 생활에 정 빼면 뭐가 남겠어요.

시골 생활에 용기가 되는 말씀인 것 같아요. 긍정뿜뿜 지은씨가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요?
영상 수업 들으면서 했던 생각인데 여기도 청년이 많이 있거든요. 20대, 30대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요. 그런데 서로가 존재를 모르고 서로가 곡성에서 활동하는 거를 몰랐잖아요. 저는 대부분 직장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많은데 영상 수업을 들으면서 저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청년들과 교류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왜 이제까지 이런 교류의 장이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왕 곡성에 온 거 잠깐 1-2년 일만 하고 가지 말고, 곡성이란 동네에 좋은 곳, 맛있는 곳, 마음이 치유되는 곳을 나누고 싶어요. 저는 이제야 그런 장소들이 점점 늘어가는데 다른 청년들이 그런 걸 경험해 보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리면 아쉽잖아요. ‘그냥 시골 불편해서 떠났어.’ 하는 마음으로 가지 않았으면 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청년 교류의 장이 있을 수 있으면 좋겠고, 만들고 싶고 참여하고 싶어요.


멋있어요! 저도 꼭 참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지은씨의 인터뷰가 벌써 올해 마지막 인터뷰예요.
지은씨에게 올 한해 어떠셨나요?
제 마음은 아직 3월인데 올 한 해도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구나 싶어요. 올해 일도 보람차게 하고 목공이랑 영상 수업처럼 일 말고 다른 분야도 도전해 봤네요. 한번 배웠다에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 가려고 하고 있고요. 올해는 특히 곡성에 정이 많이 들었던 한해였어요. 그게 사람이기도 했고 목공이나 영상처럼 기술적인 것이기도 했고요. 올해는 곡성에 와서 마냥 적응하기에만 바빴던 게 아니라,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한 해지 않았을까 해요.


알찬 한해를 보내셨군요. 내년 목표도 궁금해져요!
내년에는 올해 배운 목공과 영상을 살려봐야죠. 올해는 배웠으니까, 내년에는 기술을 살릴 수 있도록 해보고 싶어요. 직장에서는 선임으로서 올해 잘 못했던 걸 보완하고, 올해 부족하고 실수했던 것들을 내년에 만회하고 싶어요. 결국 일 얘기가 되네요? (웃음) 저 개인적으로 보자면 항상 쉬지 않고 달려만 왔는데 이제 여기서도 내 것들이 생겼어요.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빗방울이 예쁘게 떨어지네.’ ‘처마 빗소리가 좋네.’ ‘전이나 부쳐서 한 잔 먹을까.’ 이런 것들이요. 저 스스로에게도 여유를 주는 게 점점 가능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내년에 가능하다면 온전히 잘 쉬어봐야겠다 싶어요. 일 얘기 그만하고.


지은씨와의 대화는 시골 생활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새로움이 있었다. 이곳의 생활이라고 해서 왜 늘 따분하고 심심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살아도 우리가 젊디젊은 청년들인 건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도시를 떠나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귀촌 청년들의 특기가 아닌가. 올해를 마무리하며, 또 내년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귀촌 생활에 용기를 내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잘!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