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하기 위해 또다시 나를 방전시키는 움직임을 멈춰보았다. 때로는 그런 생각마저 잠시 내려둔다. 그러다 잠이 들면? 그것도 좋다. 새벽이면 옆집 닭들이 힘차게 깨워주니 조금 일찍 잠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시골집에서 잠드는 기분이 아늑해서, 어쩌면 이곳이 내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방전되었던 배터리에 깜빡깜빡 충전 불이 들어오고 있다.
느린 버스는, 버스보다 더 느린 할머니를 다 태우고 간다
시골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몇 대 없다. 그러나 마을버스는 고속도로 정체 구간보다 더 느리다. 장에서 보따리 가득 짐을 이고 오는 할머니도 기다려야 하고, 정류장에 내리면 집이 멀다는 할아버지를 가끔은 정류장을 지나쳐 마을 어귀에 내려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에 승객이 나 혼자인 날에는 기사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이다. 지하철 1호선에서만 노인들을 만나던 나는 이곳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귀엽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읍 사무소에서 가끔 ‘나는 모대, 모대.’ 하면서 서류 쓰기를 부탁하는 깜찍한 할머니를 만나는 날에는 ‘이리 주셔!’ 하고 오지랖을 부려본다. 아, 인류애 충전이다.
서류에 할머니 이름을 써드리고 화답으로 참말로 예쁘다는 말을 열 번 들었다. 집에 김치 있냐고, 김치 준다는 말은 애써 사양했다. 왜냐면 이미 냉장고에 옆집 할머니가 준 김치가 종류별로 가득이기 때문이다. 이 시골에도 고맙다는 표현을 김치로 대신 하는 모양이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자취생 입장에서는 김치 주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이다. 오고 또 오는 김치가 많아 우리 집 작은 냉장고도 가득 충전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