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는 (_) 하고 있다

시골에서 우리는 (충전)하고 있다

시골 생활 4년 차,
과연 이곳의 삶은 우리를 얼마만큼 충전시켰을까?

신지원, 민조

 [기획연재] 우리는 (_) 하고 있다

시골에서 우리는 (충전) 하고 있다

시골 생활 4년 차, 과연 이곳의 삶은 우리를 얼마만큼 충전시켰을까?

신지원, 민조

도시는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다. 그 안에서 우리도 그만큼 빠르게 소모된다. 29살, 처음 이 시골에 왔을 때 나는 말 그대로 burn out 🔥! 도시의 열기에 타올라서 거의 잿가루 수준의 기력이었다. 도피성 시골행은 과연 나를 얼마만큼 충전시켜 주었을까? 저녁 9시면 거의 모든 식당의 불이 꺼지는 이 근면성실한 시골에서 우리는 빛공해, 소음공해 없이 오직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눕는다. 이 고요함이 적응이 안 돼 한동안 잠을 못 이루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동차 배기음을 벗 삼아 잠드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생활이다. 시골 생활 4년 차, 과연 이곳의 삶은 우리를 얼마만큼 충전시켰을까?

함께 이곳에 정착한 친구들은 저마다 취미생활을 찾아 헤맸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꽤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지는 여느 도시 사람처럼 말이다. 나 또한 주말마다 등산을 가고, 평일 저녁에는 독서 모임을 열고, 점심마다 친구들을 모아 점심을 해 먹었다. 어떤 친구는 요가를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거실에 앉아 프랑스자수를 하느라 눈이 빠지게 바늘귀를 째려봤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제대로 ‘충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안고 시골에 내려왔으니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멋들어진 자아 성찰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SNS에 올릴 사진이 ‘식당이 문 닫아서 대충 라면 끓여 먹는다!’ 보다 ‘자연 속에서 요가 중’이 더 멋있어 보이잖아!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제대로 된 우리만의 ‘충전’ 방법을 찾았을까.


멍하니 바라봤을 때, 제대로 보이는 것


도시에서 나는 늘 무언가 또렷이 바라보기 위해 집중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를 다짐하며 일을 할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 쉬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느라 눈 깜박일 시간을 아끼고 있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았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곳에 와서는 잔뜩 당겨져 있던 초점을 풀고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물도 멍하니, 불도 멍하니, 숲도 멍하니. 물멍, 불멍, 숲멍 등등 각종 멍때리기에 매진해 본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 사진 찍기 바쁘던 섬진강에 백로가 그저 잘 어우러진 하나의 그림으로 보일 뿐이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벌레다! 새다! 고라니다! 하고 놀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 제자리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의 조임도 느슨하게 풀어본다.

‘충전’하기 위해 또다시 나를 방전시키는 움직임을 멈춰보았다. 때로는 그런 생각마저 잠시 내려둔다. 그러다 잠이 들면? 그것도 좋다. 새벽이면 옆집 닭들이 힘차게 깨워주니 조금 일찍 잠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시골집에서 잠드는 기분이 아늑해서, 어쩌면 이곳이 내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방전되었던 배터리에 깜빡깜빡 충전 불이 들어오고 있다.


느린 버스는, 버스보다 더 느린 할머니를 다 태우고 간다


시골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몇 대 없다. 그러나 마을버스는 고속도로 정체 구간보다 더 느리다. 장에서 보따리 가득 짐을 이고 오는 할머니도 기다려야 하고, 정류장에 내리면 집이 멀다는 할아버지를 가끔은 정류장을 지나쳐 마을 어귀에 내려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에 승객이 나 혼자인 날에는 기사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이다. 지하철 1호선에서만 노인들을 만나던 나는 이곳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귀엽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읍 사무소에서 가끔 ‘나는 모대, 모대.’ 하면서 서류 쓰기를 부탁하는 깜찍한 할머니를 만나는 날에는 ‘이리 주셔!’ 하고 오지랖을 부려본다. 아, 인류애 충전이다.


서류에 할머니 이름을 써드리고 화답으로 참말로 예쁘다는 말을 열 번 들었다. 집에 김치 있냐고, 김치 준다는 말은 애써 사양했다. 왜냐면 이미 냉장고에 옆집 할머니가 준 김치가 종류별로 가득이기 때문이다. 이 시골에도 고맙다는 표현을 김치로 대신 하는 모양이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자취생 입장에서는 김치 주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이다. 오고 또 오는 김치가 많아 우리 집 작은 냉장고도 가득 충전 완료다.

결국 나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임을 느낀다. 아무리 외딴 시골이어도 절대로 혼자 살 수는 없다. 도시에서 나는 동료들과 걸음 속도를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느려도 괜찮다고 함께 발걸음을 맞춰준다. 조금 느린 버스가, 냉장고의 김치가 내가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나를 방전시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무엇이 우리를 충전시키는가


사람마다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고요하게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누군가는 네온사인이 번쩍한 클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중요한 건 본인에게 맞는 충전기를 찾는 것.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아 다리 저리게 뛰거나 몸을 구길 필요도 없고, 기 빨려가며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좋다. 스스로 마음의 게이지를 잘 체크해서 정말 ‘충전’이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충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골에 사는 우리에게 이 느리지만 따뜻한 마을은 제법 잘 맞는 충전기 같다.

당신을 충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요? ‘농담’이라는 글로 만나는 우리 사이, 농담이 건네는 가벼운 인사와 한마디가 적게나마 당신을 충전시킬 수 있다면 그 사실로 큰 기쁨이자 또 하나의 ‘충전’이 될 것 같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