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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02. 나는 곡성에서 산다

찬아씨는 곡성에서

열정적으로 산다

 마을과 함께 그려나가는, 우리의 젊은 날을 기록하며

신지원, 민조

 Interview 02. 나는 곡성에서 산다

찬아씨는 곡성에서 열정적으로 산다

 마을과 함께 그려나가는, 빛나는 우리의 젊은 날을 기록하며

신지원, 민조

나는 곡성에 산다! 그 두 번째 만남으로 찬아씨를 만났다. 곡성에서도 작은 마을인 입면에서 활동 중인 찬아씨는 쉴 새 없이 날갯짓하는 병아리를 닮았다. 쉬는 시간마저 다양한 활동으로 바쁘게 채워가는 찬아씨의 일상을 부지런히 담아본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사람 정말 하늘에서 곡성에 내린 인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아이들부터 할머니들까지 찬아씨의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혹시 날개 잃은 천사가 아닐까 싶게 밝고 다정한 그녀에게 나마저 홀딱 빠져 버렸다는 사실!


찬아씨가 그려가는 만화에는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역을 따스한 온기로 물들여 가는 그녀와의 다정한 대화 속으로 함께 스며들어가 볼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찬아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곡성에는 22살, 대학생 때 처음 내려왔고요. 조선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를 졸업했어요. 학교 다닐 때 꿈도 없고 희망도 없던 시절에 (웃음) '잠깐 곡성에 벽화 그리러 내려올래?'라는 친구의 제안으로 꿈을 찾아 곡성으로 내려오게 된 웹툰 작가 김찬아입니다.


우선, 숙소에 고양이가 굉장히 많네요. 사람 집보다는 고양이 집 같아요.
제가 거주하는 이곳은 셰어 하우스인데요. 다행히 같이 사는 멤버들이 고양이를 다 좋아하고, 대부분 길냥이와 유기묘들이에요. 한두 마리씩 데려오다 보니까 이렇게 많아졌네요. 모두의 동의하에 임시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자유로운 집인 것 같아요. 현재 하시는 일이 궁금합니다.
매우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현재 '덕스텝'에서 활동 중인데요. 행사 준비나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수업, 영상 쪽 일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함께 활동하시는 다른 분들은 웹툰을 작업 중이시고요. 이후에는 저도 제 웹툰을 작업해보려고 해요.


‘덕스텝’이란 이름이 참 귀여워요. 어떤 단체일까요? 
'덕스텝'은 문화예술 교육 협동조합입니다. 음악 파트와 미술 파트,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뉘는데요. 음악 파트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셨던 분들로 구성되어 있고, 미술 파트에는 웹툰 전공인 친구들과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요. 아직 학생인 친구도 있고, 저 같은 귀촌 청년도 있고, 교수님도 계세요. 다양한 청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덕스텝'이란 이름처럼 빠르게만 가는 게 아니라, 오리걸음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발맞춰서 가자는 뜻이에요. 느릴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저희는 프로젝트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아까 말씀드린 웹툰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바로 옆이 도서관인데, 도서관에서 마을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수업과 마을 활동을 진행하기도 해요. 이제 막 열심히 활동하려고 사부작 사부작 중인 단체랍니다.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곡성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곡성에 처음 오게 된 건 5년, 본격적으로 귀촌하게 된 건 3년에서 4년 정도 됐을 거예요. '길작은도서관'을 운영하시는 관장님 따님이 제 대학교 동기예요. 그 친구가 현재 덕스텝 최고 이사장님이신 예림님인데, 사실 제가 대학 생활을 무척 힘들어했거든요. 적응하기도 힘들고, 요즘 청년들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꿈을 갖기도 어렵고, 일자리 찾기도 힘들고. 그런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파산이 났던 것 같아요. 인간관계 파산! 학점 파산! 통산 파산!


예림님은 그런 상태에서 방황하던 저를 이끌어 준 친구예요. 그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긴 했지만, 뭔가 제가 나쁜 길로 갈 때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좀 이 길로 가야지 하고 인도를 해준 친구죠. 그 친구의 권유로 곡성에 처음 오게 되었어요.


정말 끈끈한 관계겠어요. 그래도 귀촌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끈끈하다 못해 가족 이상의 관계예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살고 있기도 하고요. 형제죠 형제. 곡성에 처음 왔을 때, 친구의 권유도 있었지만 사실 여기가 좋아서 내려왔다기보다 뭔가 그냥 아픈 상태에서 내려왔어요. 휴양이 좀 필요했어요. 사실 그림도 안 그리고 싶어서 졸업하게 되면 그림 쪽으로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친구가 이거 뭐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벽에 낙서 한다고 생각하라 해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사실 벽화도 엄청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일단 한번 와보라고 해서 와서 그림 좀 그리니까, 그다음에는 마을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그림 가르치는 수업도 있는데 이런 것도 한번 해볼래? 하더라고요. 그때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해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먹을 것도 주고 (웃음) 오케이 괜찮네 했죠. 그때 숙소도 없었거든요? 저기 별관에 예림님이 살던 집이 있는데, 그냥 친구 집에 공짜로 얹혀살았어요.

그러다가 활동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본격적으로 곡성에 살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터질 무렵이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도시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시골에서 이때까지 활동했던 것처럼 교육도 하고 마을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 해서 그렇게 모이게 되었죠.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아이들 그림 가르치는 수업이나 할머니들께 그림 가르치는 수업을 했어요. 할머니들 같은 경우에는 6.25 전쟁 같은 옛날이야기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할머니들께서 시로 적으시면 저희가 옆에서 그림 그리는 활동을 했어요. 한 권의 그림책으로 묶어 자서전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거죠.


요즘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지금 '탐방오리'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요.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입니다. 전국에 계시는 웹툰 작가님과 그림 작가님들을 모집해서 곡성의 소상공인 업체인 맛집이나 관광지, 숙소 등을 함께 탐방하고요. 이후에 SNS 인스타툰으로 제작해서 홍보해 드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곡성 탐방 툰'을 검색 하시면 볼 수 있답니다. 현재 한 달에 2번 정도 진행해서 1기부터 총 8기까지 진행되었고, 9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에요. 11월에는 전시까지 열 예정입니다.

11월까지 스케줄이 벌써 다 찼겠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요. 말하면서도 소개하고 싶은 활동이 이-만큼이라. (다급) 아, 저희 유튜브 채널도 있답니다!


(웃음) 앞으로 준비 중인 활동도 있을까요?
지금은 새로운 창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원래 사용했던 카페를 리모델링해서 저희의 창업 아이템에 맞춰 운영해 볼 예정이에요. 굿즈도 판매하고요. 1년 정도 굿즈 카페를 운영하고, 자리가 잡히면 그로서리 마켓으로 확장해 보고자 해요.

*그로서리 마켓 : 다양한 컨셉으로 식료품과 잡화를 판매하는 마켓

웹툰 작가들의 카페라니 정말 기대돼요. 최근에는 마을 방송국을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네. 지원님(에디터)이 2회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주셨죠.


르는 척 물어봤는데 들켰네요. 마을 방송국은 어떤 활동인가요?

몇 달 전 곡성 사람들의 행복지수에 대한 주제로 토론이 있었어요. 어떤 토론이든 개선은 안 되고 '항상 이런 문제가 있다.' 로 끝나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고요. 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영상 편집을 조금 할 줄 아니까 마을 방송국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생각지도 않던 MC가 된 거예요. 이제 시작 단계여서 거창하게 뭘 하기보다는, 소소하게 곡성의 소통의 장으로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솔직 담백하게 곡성 청년들과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때는 제가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었잖아요. 찬아님 명 MC 던데요.
아휴, 아닙니다. 지원님이 출연하셨던 팟캐스트는 곡성에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송인데요. 지역사회의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나중에는 지역의 청소년들과 영상도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지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기획 중이에요. 몇 가지 아이디어로는 예술가들을 초대한다든지, 학교별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초대한다는지 그런 프로그램을 생각 중입니다.

찬아님은 지역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좀 위로가 되네요. 왜냐면 힘든 것도 되게 많았어요. 회사에서 근무했을 때도 그렇고, 마을 활동도 그렇고. 젊은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 친해지려면 제가 노력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었죠. 사실 제가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할머니들하고도 그림 수업할 때, 할머니들은 새로운 거에 도전하는 걸 정말 무서워하세요. 국민학교도 안 나오셨잖아요. 그런 분들이 많으신데 그림 그려보자고 하니까, 우울증 걸리신 분들도 많으셔서 '아니야 나 이런 거 못해.' 하시면서 수업 시간 되면 막 도망도 가시고요. 저희가 마을 회관에 가서 수업 했었는데, 그 시간대에 분명 신발이 많았는데 수업만 시작하면 신발이 없어져요. 아무튼 그런 어려움들이 있어서 사실 진행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지금이야 마음이 맞춰지고 저희가 하고 싶은 게 좀 명확해졌지만, 5년 동안 했던 고민이 엄청나죠. '이제 우리가 뭘 할까?' '여기서 이런 카페를 열어도 될까, 어떤 콘셉트로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될까?' 활동에 대한 분석 기간도 필요하고 협동조합 인원들끼리 마음이 또 맞아야 하고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쉽지만은 않았어요.


곡성에 오기 전 찬아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고향이 어디신가요?

고향은 정읍입니다. 정읍에 19살까지 있었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가 광주여서 광주에서 자취를 잠깐 했어요. 근데 대학교 1학년 때 적응을 잘 못해서 휴학하고 서울로 가게 됐어요. 그러고 서울에도 1-2년 정도 있었어요. 저 진짜 왔다 갔다 많이 했네요.


서울에 갔을 때는 뭔가 다양한 걸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가로 데뷔를 하려면 견문이 넓어야 한다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시골에서 생활했잖아요. 정읍이 그렇게 크진 않거든요. 그래서 서울 가서 알바도 많이 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웃음) 많이 놀았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놀았고요. 지금은 술을 안 먹지만 그때는 술도 먹고. 그때는 미술 하면 유럽 여행을 한 번 가줘야지 하고 친구들과 유럽 여행도 가고요. 

도시 생활을 즐기다 곡성에 처음 내려왔을 때 첫 이미지가 어땠어요?

처음 곡성에 왔을 때, 여기 입면 도서관에 먼저 왔었는데요. 지금이야 이렇게 좀 반짝반짝하지만, 그때는 도서관도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여기 와서 처음 본 게 사실 마을 아이들이었거든요. 다문화 아이들도 만났고요. 아무래도 다른 곳에 비해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까 시골의 아이들은 이런 느낌이구나 했어요. 정말 솔직히 말해서, 좀 짠했어요. 사실 정말 짠했어요. 각 가정마다 사연도 있고, 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시골이니까요.


저는 도서관에 선생님으로 여기 온 거잖아요. 근데 힘들었던 제 어릴 적과 비슷한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이들만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저도 어릴 적에 집에 문제가 있었거든요. 근데 이 아이들을 보니까, 이 친구들도 학교 끝나면 갈 곳이 없고 밖으로 방랑자처럼 돌고 돌겠구나. 그래서 이런 애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나도 해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죠.

아이들과 진심으로 교감을 하셨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쉽지는 않았어요. 특히 아이들은 예민한 게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끼고 같이 활동하고 자주 만났어요. 수업 외에도 마을 산책할 때 같이 하기도 하고, 축구 선수가 꿈인 친구랑 축구도 하고요. 축구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함께 하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은 저도 그때 어떻게 그렇게 했지 싶어요. 돈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애들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 돌아보면, 나와 같은 아픔이 있어서 그래서 가능했겠다 싶어요. 제가 잘나가는 사업가거나 잘난 사람이었더라면 사실 안 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냥 좀 낙후된 시골 지역에 이런 거 봉사하는 사람도 있네 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좀 망가진 누더기 같은 삶이었고, 그러니까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 쉬는 시간에는 뭘 하시나요?
여가시간이요? (한참의 사이)


제일 쉬운 질문인데 망설이시네요.

너무 일만 하고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보니까 사람마다 취미가 있더라고요. 저는 몰랐어요. 왜냐면 저는 시간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하고 뭐하지 생각하거나, 아이들이 선생님 저랑 이거 해요, 저거해요 하거든요. 아니면 다른 일정들을 소화하거나 갑자기 텃밭을 관리해야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지내오다 보니 사실 저만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여가, 취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요.


아, 운동은 해야겠다 싶어서 1시간씩 걷고 있어요. 여기 청년들하고 목적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나름의 운동을 하고 있네요. 또, 영상 찍는 걸 좋아해서 업로드는 못 하고 있지만 아이들하고 같이 자주 영상을 찍고 있어요. 아이들도 찍어주고, 애들이 찍으면 모델도 해주고요. 사실 이건 일이긴 해요. 취미는 아니고, 일이죠. 아이들이 비즈공예를 해서 팔찌 같은 걸 만드는데 함께 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결과물이 예뻐서 굿즈 카페에서 판매를 해볼까 싶어요.

아이들 사랑에 일등이신 것 같아요. 이렇게 여가 생활 즐길 틈도 없지만, 곡성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선 견문이 확실히 넓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좀 다양한 세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웹툰 작가로 데뷔했었더라면 조금 뻔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 한들 여러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 배우는 게 크더라고요. 농촌에는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고, 농촌 분들은 이렇게 활동하시네, 할머니 세대 이야기들이 있구나 배워요. 중년분들하고도 대화를 나눌 그런 기회가 정말 많았거든요. 곡성 와서 작가분들도 많이 만났었고, 회사 근무도 했었고, 정치인, 작가, 연예인 등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났네요. 그러다 보니까 이전의 좁은 시야에서 조금 더 다양한 쪽으로 뻗어나가지 않았나 싶어요.


혹시 찬아님처럼 귀촌을 꿈꾸고 있는 청년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내가 왜 귀촌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탐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귀촌을 선택한 이유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거든요. 단순히 쉬려고 오는 건지 아니면 귀촌해서 뭔가를 정말 이루고 싶어서 오는 건지에 따라서 방향이 갈릴 것 같아요. 귀촌을 한다면 어느 공동체에서 생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조사를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곡성이 연고지도 아니었는데 친구 추천으로 와서 도서관 활동이 너무 즐거워서 귀촌을 하게 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그런 걸 미리 조사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정말 그래서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렇게 좋은 곳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막상 귀촌했는데 텃세가 심한 지역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좋은 공동체가 있는 지역으로 가라, 그리고 일기를 쓰는 연습을, 이왕 온 김에 글을 좀 써봐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찬아님의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요?
꿈이라, 꿈은 하나 있어요. 대안 학교 선생님이 돼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그런 예술학교를 만들어 보고 싶고, 그곳에서 선생님으로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또, 청년 분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올해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관심 있으시면, 저랑 좀 친해지고 싶으신 분들은 유튜브에 살짝 댓글 달아주셔도 되고요. 인스타에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지역과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찬아씨를 보며, 역시 귀촌 4년 차인 나의 귀촌 생활을 되돌아본다. 지금 서 있는 그곳에서 가장 행복할 것. 나는 처음 곡성에 내려왔던 그날의 다짐처럼 살고 있었을까. 찬아씨가 그려갈 마을과 그녀의 완성작을 기대하며, 우리의 그림도 부디 온기 넘치는 빛깔로 칠해지기를 기도해 본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