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01. 나는 곡성에서 산다

유진씨는 곡성에서 재밌게 산다

 ENFP 그 자체, 시골에서 핵인싸로 살기 어렵지 않아요

신지원, 민조

 Interview 01. 나는 곡성에서 산다

유진씨는 곡성에서 재미있게 산다

 ENFP 그 자체, 시골에서 핵인싸로 살기 어렵지 않아요

신지원, 민조

나는 곡성에 산다! 그 첫 번째 만남으로 유진씨를 만났다. 숲 교육 전문 기업 ‘시소’에서 근무 중인 유진씨는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밝고 맑고 경쾌한 청년이었다.


유진씨와 첫 만남은 1년 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같이 살던 친구가 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유진씨라고 엄청 밝고 재밌는 친구 있는데 인사나 할래?” 그렇게 나는 자다 깬 몰골로, 잠옷에 패딩 하나 걸치고 집 앞에서 그녀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한 눈에도 인싸의 기운이 흘러넘치던 유진씨는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술 한잔해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시골에서도 도전적인 삶을 사는 청년을 찾고자 했을 때 자연스레 유진씨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곡성 토박이인 유진씨가 전하는 곡성 생활의 꿀팁은 별책부록! 결국 인터뷰가 끝나고 맥주를 달릴 수 밖에 없던 경쾌한 대화 속으로 빠져보자.


반가워요! 유진씨 소개를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이유진이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루비고요. 1살 때 곡성으로 내려와서 29살 평생을 곡성에 살고 있어요. 곡성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웃음)


별명이 예뻐요. ‘루비’는 어떤 뜻일까요?
제가 ‘시소’라는 기업에 근무하는데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여서 서로 닉네임으로 부르더라고요.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7월생이어서 탄생석인 ‘루비’로 짓게 되었어요. 엄청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어요.


곡성에서 평생 살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우선, 저는 곡성 읍내에 ‘학정리’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어요. ‘학정리’는 삼인봉이라는 동악산 봉우리 바로 밑에 첫 번째 동네예요. 저희 마을이 정말 예쁘거든요.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엄청나게 큰 느티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가 계절마다 색이 다르거든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나무예요. 또 저희 마을 특징이 담벼락이 전부 돌담이에요. 이거는 진짜 와서 보셔야 해요! 정말 예쁘거든요.

 

이렇게 예쁜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오빠가 둘인데, 첫째 오빠는 결혼했고 작은오빠는 광주에 살아요. 이제 두 돌 된 조카가 있는데, 예뻐 죽겠어요. 사진 보실래요? 저도 닮았고, 저희 가족을 한 부분씩 다 닮았어요. (유진씨의 귀여운 조카 사진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토박이로서의 곡성에서 삶이 궁금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동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학창 시절 내내 편의점 일을 도왔어요. 한 자리에서 오래 운영하다 보니,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정말. 그러다 보니, 한 다리도 안 건너도 될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아서 약간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예의 있어야 하고, 인사 잘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어릴 적에는 그게 부담되기도 했거든요? 근데 나이 먹고 보니까 오히려 그 점이 참 좋아요. 덕분에 여러 사람과 잘 지내는 밝은 성격을 갖기도 했고 제가 인사도 잘했거든요. (웃음) 그게 지금은 복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아요. 어르신분들이 되게 예뻐해 주세요.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인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게 참 좋네요. 학창시절은 어땠어요?
초, 중, 고, 대학교까지 곡성에서 나왔는데요. 일단 정말 사방팔방을 다 돌아다녔어요. 시골에서는 놀거리가 귀하잖아요. 그래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열심히 놀러 다녔어요. 성인 되자마자 면허를 따서 엄마 차 끌고 친구들을 태워서 근교도 놀러 다니고, 가끔 멀리까지 여행도 갔어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차가 생겨서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여기저기를 다니기 시작했죠.

정말 핵인싸인 것 같아요. 에너지가 대단해요!
사실 곡성 사람들이 저를 전부 인싸라고 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핵인싸까지는 아니거든요. 사람을 많이 만나기는 하는데, 그게 인싸인 걸까요? 저는 그저 사람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사람을 안 가리거든요.


우리는 그걸 인싸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아무리 밝은 성격이라도 한 곳에서 오래 살기가 가끔 힘들기도 했을텐데요.
그렇죠. 그래서 몇 번 다른 도시로 도망간 적도 있어요. 광주에서도 잠깐, 대전에서도 아주 잠깐 살았어요. 그때는 곡성이 지겨웠다고 해야 할까요. 도망치듯이 갔다가 금방 돌아오고, 다시 도망치고 했던 시절도 있어요.


도시 생활은 어땠어요? 
처음에는 도시에서 뭔가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일단 아는 사람도 없고 도시에서 많이 외로웠었던 것 같아요. 광주에 있을 때는 친구들도 있었고, 아는 언니도 있고 했지만, 그 안에서 늘 외롭고 되게 많이 아팠었어요. 온갖 질병에 다 걸리고 그랬어요. 일자리도 안 구해지고. 아빠가 곡성으로 돌아오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다시 오긴 했는데 얼마 안 있다가 대전으로 도망쳤어요. 대전을 택한 이유가 아예 연고가 없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정말 친구가 아예 없는 거예요. 저는 사람 좋아하잖아요. 여기서 어떡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두세 달 있다가 다시 곡성으로 돌아왔어요.


우리는 (같은 ENFP) 친구가 있어야 사는 사람이잖아요. 공감해요. 그렇게 곡성으로 돌아와서는 어땠어요?
2018-19년쯤이었는데,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정말 우연히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부터 유독 화려한 액세서리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보관할 액세서리 함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보관함을 사려고 막 검색하고 있었는데, 찾다 보니까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또 취향대로 만들어야지 하고 찾아보는데, 이럴 거면 액세서리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버리자! 하게 된 거죠. 바로 도매사이트를 뒤져서 부자재를 한 20만 원어치 샀어요. 액세서리를 잔뜩 만들어서 저도 차고, 친구들도 선물해 주고 했어요. 정식으로 배워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도화지 잘라다가 꽂아서 선물하곤 했는데, 받은 친구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친구들이 소질 있는 것 같다고, 장사해 보라고 (웃음) 블로그나 SNS에 팔아보라고 응원해 줬는데, 당시에는 요즘 실력 있는 사람들 많은데 내가 어떻게 장사를 하나 싶어서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옆에 사람들이 정말 응원을 많이 해줘서 용기 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막상 사업으로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해요. 처음 도전해 보는 사업은 어땠나요?
그때가 정말 바쁜 시기였거든요. 부모님이 편의점을 정리하시고, 치킨집을 차리셨을 때였어요. 곡성에는 배달 아르바이트 할 인력이 정말 없어요. 오빠들도 다 객지로 나갔고, 제가 배달 일까지 해야 했을 때였어요. 낮에는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저녁에는 부모님을 도와서 치킨집 일을 하고, 배달일 잠깐 없을 때는 액세서리 만들고. 주말에는 만든 거 팔러 나가고요. 카페나 치킨집 쉬는 날에는 서울 동대문으로 도매 물품 사러 발품 팔러 갔다 오고요. 엄청 바쁘게 살았죠. 다행히 액세서리 사업이 잘됐어요. 아버지가 매장을 내보자고 하시기도 했어요. 대학교 축제 부스도 나가고요. 곡성에 뚝방마켓이라고 야외 플리마켓이 있거든요? 거기도 주말에 나가서 판매하고요.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았어요.


말로만 들어도 엄청난 스케줄이네요.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신 거예요?
액세서리 사업이 입소문을 타서 다른 지역에서 스카웃 제의도 왔었어요. 담양, 나주, 순천같이 시장이 큰 마켓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모든 일을 제가 혼자 다 하다 보니까 점점 감당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제작도 혼자, 촬영도 혼자, 모델도 혼자, 택배도 혼자, 포장도 혼자! 마켓도 혼자 나가고, 동대문에 물건 떼러도 혼자 가고. 아무래도 규모가 커지니까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기는 어려웠어요. 차라리 아버지 말씀대로 매장을 내서, 직원도 쓸까 했는데 제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일단 한곳에 안주하는 건 살짝 접기로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잘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또 금방 새롭고 재밌는 일들을 만났어요.


보통 시골에 산다고 하면 여유 있고 한적한 생활을 상상하잖아요. 유진씨는 어느 도시 사람보다 바쁘고 열정적으로 생활하시는 것 같아요. 곡성에서 또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직장도 다녔어요. 어린이집에서도 근무하고, 제가 전공이 언어치료라서 언어 재활센터에서도 근무했었고요. 저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어린이집이랑 센터에서 일할 때 너무 좋았어요. 아이들은 천사 같아요. 너무 예뻐요. 센터 다닐 때는 아무래도 아픈 아이들이 다니니까 부모님들이 조금 예민하기도 하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도 당연히 전부 이해되더라고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 지금은 ‘시소’에서 근무하신다고 들었어요. ‘시소’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시소’는 수목 관리와 숲 교육을 하는 곳이에요. 계속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좋기는 했지만, 체력적으로는 지쳐있었거든요. 그래서 막연하게 자연에서 일하고 싶다, 숲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람한테 지쳐 있었나 봐요. 그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소’ 직원 모집 공고를 봤어요. 한번 읽어보고 와, 이런 곳도 있네 하고 넘어갔는데, 다른 사이트에서 ‘시소’ 공고가 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지원해야 한다! 싶어서 지원했고, 작년 8월에 입사해서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소’에 지원할 때, 지원서 제목에 ‘아이디어 뱅크’라고 썼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 그 제목 때문에 뽑힌 게 아닐까 생각해요. (웃음)


‘시소’에서는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신가요?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SNS나 유튜브 채널 운영도 하고요. 촬영도 직접 나가요. 마케팅 관련 업무 전반을 맡고 있어요. 다른 분들이 숲 교육 수업을 하시거나, 현장에서 일할 때 제가 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맡고 계시네요. 유진씨는 그럼 쉬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등산도 하고요. 친구들도 만나고, 혼자 있을 때는 카페가서 좋아하는 책을 필사도 해요. 친구들이 전주에도 있고, 천안에도 있고 광주에도 있고, 아무튼 대부분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요. 그래서 제가 항상 바쁜가봐요. 퇴근하고 나서도 사람을 계속 만나거든요. 저는 사람 만나는게 너무 재밌어요. 꼭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그냥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좋아요.


가끔 혼자 있을 때도 물론 필요하긴 해요. 저도 충전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요. 물론 저녁쯤 돼서 친구들한테 전화 오면 다시 나가기는 하지만요.

짧았지만 도시 생활도 경험해 보셨잖아요. 곡성에서의 삶과 비교해 보자면 어땠나요?
일단 도시는 숨 막혔어요. 항상 바쁘고, 건물이 빼곡하고 차도 너무 많고요. 여기 시골에서는 건물 자체가 낮고, 길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도시에서는 핸드폰 보고 빨리 가기 바빴거든요. 도시에서는 어떻게 살까? 싶을 때도 있어요. 도시에서 건물 숲을 본다면, 여기서는 진짜 숲을 봐요.


정말 좋은 말 같아요. ‘진짜 숲을 본다.’ 유진씨는 곡성에서도 바쁘게 지내잖아요. 그런데도 도시가 주는 바쁨과 이곳에서 바쁨이 다르게 느껴지나 봐요.
도시에서 바쁨은 코가 막혀요. 공기가 코가 막힙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 어쨌든, 시골이라 하면 굉장히 여유롭고 이런 것만 생각하시는데, 여기서도 충분히 바쁘게 지내거든요? 그런데 하루를 삼등분 했을 때, 8시간 일하고, 8시간 자고, 나머지 8시간이 있다고 나눠보면요. 도시에서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하는데 2시간이 사라져요. 밖에서 친구랑 밥이라도 먹으려 하면 또 이동하고 기다리고 하는데 2시간이 사라지고요. 나를 위한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예요. 근데 여기 시골에서는 일단 출퇴근 시간이라는 게 없어요. 있어 봐야 30분 내외? 불필요하게 사라지는 시간이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여가 시간이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자유로워요. 사실 도시 친구들은 딱 그 도시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서울을 벗어나면 다 시골이고 깡촌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오히려 여기 시골 친구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고, 더 많이 놀러 다녀서 시야가 더 넓다고 해야 할까요.


냉정하게 말해서, 시골 생활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귀촌 생활을 추천한다? 안 한다, 말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운전할 수 있으면 추천합니다. 그런데 운전을 잘 못해도 요즘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요. 버스도 인근 지역으로 다 다니고, 전주나 익산도 기차 타면 바로 가고요. 곡성은 특히 산간 지역이거든요? 산에 폭 안긴 안정감을 준다니까요. 정말로.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요. 일단 물가도 싸요. 도시에서 집 매매는 상상도 못 하잖아요. 여기는 젊은 나이에도 내 집 마련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목표에 따라 사는 형태가 다르겠지만. 오히려 저는 여기 시골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럼 정리해서, 유진씨는 이런 이유에서 곡성에 산다! 를 써보자면요?
친구들이 보면 가식이라고 놀릴 것 같긴 한데, 일단 첫 번째로, 사람이 좋아서. 두 번째로 자연이 좋아서. 세 번째는 돈 쓸 일이 많이 없어서? (웃음) 거창한 이유 다 치우고 저는 곡성이 좋아서 삽니다!


최고의 이유네요. 혹시 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긍정적인 말을 잔뜩 해줄 거예요. 괜찮아! 겁먹지 마! 곡성 좋아!


마지막으로 에너지 넘치는 유진씨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꿈꾸는 목표가 있어요.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이 뭘까? 뭘 하고 싶을까를 노트에 적어본 적이 있어요. 다 적으니까 50개도 넘더라고요. 그 많은 것 중에 정말 이루고 싶은 것들만 남기고 하나씩 지워보니까, ‘자랑스러운 딸 되기’,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 되기’ 딱 두 가지가 남더라고요. 두 개 중에 고민하다가, 제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랑스러운 딸도 될 거야 싶었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저 또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긴 인터뷰 내내 기분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유진씨 덕분에 나 또한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싫고 불편한 것 천지인 세상에, 온통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만 말해주며 웃는 그녀의 삶이 꼭 행복한 동화 한 편을 들은 기분이라, 유진씨의 밝음이 모두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람 좋아하는 그녀의 행복한 곡성 생활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며, 누구보다 에너지 있게 일상을 보내는 유진씨에게 즐거운 만남을 선사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보낸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