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도 (_) 할 수 있다!

시골에서 우리도 (설렐) 수 있다

산에 들에 꽃이 피네, 마음에는 설렘이 피네

신지원, 민조

 [기획연재] 우리도 (_) 할 수 있다

시골에서 우리도 (설렐) 수 있다

산에 들에 꽃이 피네, 마음에는 설렘이 피네

신지원, 민조

부쩍 따뜻했던 날씨에 성격 급한 봄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렸다. 이 좋은 계절에 나들이 한번 안가면 왠지 짠한 사람 취급을 받는지라 부지런히 약속을 잡아본다. 산으로, 들로 꽃구경을 다니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봄이 주는 이 찰나의 아름다움은 비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어색한 표정으로 꽃나무 아래서 브이를 하고 선 모습으로 카메라 속에 남았을 것이다. 바야흐로 황급한 벚꽃 엔딩이다.

계절마다 느껴지는 감정을 정해 본다면, 봄은 단연 설렘 아닐까? 한 해의 시작이자, 왠지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 올해는 작년과 다를 것 같다는 설렘, 성적도 오르고 주식도 오르고 월급도 오르겠지 하는 그런 설렘! 합법적으로 작년의 모든 과오와 실망을 리셋할 수 있는 계절이라 할 수 있겠다.


시골에 산다고 하면 ‘거기서 뭐 하고 놀아요?····.’ 질문을 수백 번 받은 젊은 귀촌민으로서 이 시골에도 똑같이 봄이 오고 설렘이 온다고 외쳐본다. 석촌 호수를 걷고, 단대 호수를 걷는 낭만과 논두렁을 걸으며 맞이하는 봄은 공평하게 아름답다. 다만, 봄을 즐기는 방법은 조금 다를 수 있겠다. 과연 시골 사는 우리는 이 봄에 무엇을 하며 설렐 수 있을까?


벚꽃만 봄꽃이 아니랍니다


곡성의 벚꽃은 아름답다. 예쁘다. 향기롭다. 하지만 도시보다 자연에 몇 발짝 가까운 이곳에는 벚꽃 말고도 수많은 봄꽃이 핀다. 도시보다 좀 더 다양한 봄이 피어난다. 산수유와 매화가 벚꽃보다 조금 먼저 봄을 몰고 왔다. 내가 곡성에 처음 왔을 때 도시보다 이곳의 봄을 더 반갑게 느낀 것은, 봄과 나의 거리가 도시보다 가깝기 때문이었다. 이 시골에는 어디를 가도 봄이 있다. 어디를 가나 꽃이 피고 싹이 자라고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누가 심어둔 봄만 보다가, 봄의 원산지로 초대받은 기분이다.

곡성의 대표적인 나들이 명소인 야외플리마켓 ‘뚝방마켓’에 봄꽃이 활짝 피었다. 읍내 어디서든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멀리 걸음 하지 않아도 봄 소풍을 즐길 수 있다. 뚝방 천변을 따라서 가지를 뻗은 꽃나무가 저절로 카메라를 들게 한다. 늘 지하철을 타고 지하로 출퇴근하던 삶을 살다가, 흙을 밟고 꽃길 사이로 지나려니 이 봄이 그저 황송하다.

주말 아침, 읍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의 야생 녹차밭으로 체험을 다녀왔다. 산 밑으로는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산 중턱에는 푸르디푸른 녹차밭이 그야말로 알록달록한 세상을 이뤘다. 이곳 다원은 인위적인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녹차밭인데, 몇 바구니 가득 찻잎을 따도 괜찮다. 녹차밭 사장님 말씀으로는 뒤돌면 자라고, 하늘 한번 보면 또 자라있다고 하신다. 아, 힘차고 씩씩한 녹차로구나.

길목마다 눈인사를 보내는 친구들


곡성은 길에 사는 동물 친구들에게 대단히 친화적인 마을이다. ‘브레멘 음악대’처럼 자기 친구들과 놀고 있는 길고양이, 강아지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길냥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식당들도 참 많다. 어느 곳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적어도 아직은 평화롭다. 하여, 오늘도 빵집 앞에 벌러덩 누워있는 치즈냥이에게 어렵지 않게 눈인사를 보낼 수 있다.

곡성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작은 글 공부방을 운영했다. 오가는 손님보다 차 한잔 마시러 오는 친구들이 더 많아 1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의 공부방을 찾는 뻔뻔한 친구가 하나가 또 있었다. 바로, 길고양이 ‘땅콩이’. 매일 가게 문 앞에서 문을 열라고 호통을 치는데, 이 친구 덕분에 맘 편하게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땅콩이’는 수컷 고양이었는데, 내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면 옆에 누워 남자친구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길가까지 따라 나와 내 퇴근길을 배웅해 주었다. 성격도 좋고 넉살도 좋은 이 친구는 공부방이 문을 닫자 옆 가게 사장님에게 간택되어 예쁨을 받는 중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길 끝에서 또 어떤 동물 친구들을 만날까. 오늘은 내 무릎에 올라와 줄까? 머리를 쓰다듬게 해줄까? 가방에 츄르 하나 챙겨왔는데 잘 먹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산책하는 걸음이 설렌다.


이곳의 설렘은 한 발짝 뒤에서 보아야 아름답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이 작은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은 한 발짝 뒤에서 보아야 아름답다. 꺾어서 화병에 둔 꽃보다, 멀리 산 귀퉁이에 무심하게 핀 들꽃에서 진짜 봄을 느낀다. 길냥이 친구가 내 무릎에 올라와 주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건강하게만 오래도록 함께 살아주기를 바라는 존중을 배운다. 시골에 사는 우리가 느끼는 설렘은 이 마을과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에서 온다. 애써 만들지 않아도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가운데 우리의 설렘이 있다.

nongdam@farmnd.co.kr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 협동조합이 함께 만듭니다. 

농담은 곡성군과 팜앤디가 만들어갑니다.